영어고전1014 플라톤의 알키비아데스 I·II(English Classics1014 Alcibiades I·II by Plato)

플라톤 | 테마여행신문 TTN Theme Travel News Korea | 2023년 03월 31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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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 플라톤의 알키비아데스 I·II(Alcibiades I·II by Plato)는 플라톤(Plato, BC427?~BC347?)의 중기 대화편(Plato's Middle Dialogues)에 속하는 작품으로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Socrates, BC470?~BC399)와 아테네의 저명한 정치가이자 장군 알키비아데스(Alcibiades, BC450~BC404)가 나눈 대화록으로, 퍼스트 알키비아데스(Alcibiades I by Plato)와 세컨드 알키비아데스(Alcibiades II by Plato)의 합본입니다. 향연(심포지엄)(Symposium by Plato)은 하나의 근원적인 화두에 대한 탐구를 위해 상대방에게 질문하고, 이를 반박하며 검증해 나가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Socratic Dialog)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과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문학여행을! B

▶ "For no man can have the smallest advantage or success in the world without the help of God and fortune."("어떤 사람도 신과 재산의 도움 없이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이점이나 성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 퍼스트 알키비아데스(Alcibiades I by Plato)는 소크라테스와 잘생긴 외모, 매력, 야망으로 유명한 아테네의 젊은 정치가 알키비아데스 사이의 대화를 엮은 작품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에게 진정으로 정치에서 탁월하고 고결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기 지식을 얻어야 한다고 설득하려고 시도합니다. 작품은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고 그의 지도를 요청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에게 다른 사람을 이끌기 전에 먼저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자신에 대한 지식에 대해 질문합니다. 일련의 질문을 통해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성격, 욕망 및 동기에 대한 알키비아데스의 무지를 폭로하는데...?!

▷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에게 진정한 지혜와 탁월함은 자신을 이해하고 그 이해에 따라 행동하는 데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배를 알아야 하는 조종사와 바람을 알아야 하는 선원의 비유를 사용하여 요점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의 조언을 거부하고 자신과 자신의 이익을 이미 알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묘사함으로써 이를 증명하도록 그에게 도전하지만 알키비아데스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대신 그는 자신의 목표와 욕망에 대한 혼란과 불확실성을 드러내는데...?!

▷ "True knowledge is the knowledge of the eternal and the divine."("진정한 지식은 영원하고 신성한 지식입니다.") : 알키비아데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그가 자기 지식을 얻도록 돕기 위한 노력을 계속합니다. 그는 진정한 탁월함은 자신의 본성과 일치하는 삶에서 비롯되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기 지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알키비아데스에게 자기 지식이 없으면 자신의 열정과 욕망에 이끌려 길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경고합니다. 대화는 알키비아데스가 자신의 본성과 목표에 대해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자기 지식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끝납니다.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지혜와 탁월함을 추구하는 데 계속해서 그와 함께 일할 것이라고 말하고 대화는 두 사람이 아테네로 떠나는 것으로 끝납니다.

▶ 세컨드 알키비아데스(Alcibiades II by Plato)는 기도의 본질과 인간과 신의 관계를 탐구하는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의 대화록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저명한 정치가이자 장군인 알키비아데스를 만나 ‘제대로 기도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구합니다. 알키비아데스는 그를 만나 자신의 기도를 무시하고 그를 길을 잃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신들에 대한 불만을 드러냅니다. 소크라테스는 기도가 단순히 무언가를 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지식과 지혜를 구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하며, 알키비아데스가 자신의 진정한 욕망과 그것이 신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이해하기 위해 자기 성찰과 성찰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합니다.

▷ "For there is a danger that the soul should fall from the divine and become human, and the body likewise from the human and become bestial."("영혼은 신에게서 떨어져 인간이 되고 몸도 마찬가지로 인간에게서 떨어져 짐승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에게 신과 그 본성에 대한 지식에 대해 질문합니다. 알키비아데스는 그들이 강력하고 신비한 존재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그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고 인정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신에 대한 진정한 지식은 신의 지혜, 선함, 정의와 같은 본성과 속성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며 알키비아데스가 이 지식을 얻고 신과 더 깊은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철학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합니다. 대화가 진행됨에 따라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에게 자신의 욕망과 그것을 성취하는 데 있어 신의 역할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도록 도전합니다. 그는 알키비아데스의 많은 욕망이 진정으로 자신의 것이 아니라 사회 및 문화와 같은 외부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합니다. 소크라테스는 피상적이고 덧없는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삶을 사는 데서 진정한 행복과 성취감이 온다고 주장하는데...?!

▷ "But this I know, that I am at this moment not wise, but that I am able to speak words of wisdom."("그러나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지금 지혜롭지 못하여도 지혜의 말을 할 줄 아는 줄을 아노라.") : 소크라테스는 기도 실천에서 겸손과 자기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개인이 자신의 한계와 불완전함을 인식하고 지혜와 미덕의 추구를 통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그는 또한 신을 개인의 이익이나 만족을 위한 단순한 도구로 취급하기보다는 신에 대한 경외심과 경외심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결국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의 조언을 따르고 철학적 탐구와 영적 성장의 삶을 추구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데...?! 자신과 신과의 관계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추구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필수적임을 시사하며 작품이 마무리됩니다.

▶ 스승 소크라테스를 위한 찬가, 플라톤의 대화편(Plato's Dialogues) : 부유한 부모를 둔 플라톤은 당시 아테네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비극 경연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직접 비극을 집필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디오니소스 극장 앞에서 자신만의 문답법으로 아테네 시민들에게 깨달음을 전달하는 소크라테스를 만났고, 이는 청년 플라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급기야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워 버린 후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입문하였으며, 훗날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30여 편의 ‘플라톤의 대화편’을 통해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였습니다. 이는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승 플라톤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철학을 다듬어 간 것과는 대조되는 대목입니다.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을 만나기 전에 꾸었다는 ‘백조 꿈’ 일화도 유명합니다. 그는 어느 날 무릎에 앉혀 놓았던 백조가 갑자가 하늘로 날아가 버리는 꿈을 꾸었는데……. 플라톤을 만나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아니, 자네가 바로 그 백조로군!!

▶ APPENDIX I. It seems impossible to separate by any exact line the genuine writings of Plato from the spurious. The only external evidence to them which is of much value is that of Aristotle; for the Alexandrian catalogues of a century later include manifest forgeries. Even the value of the Aristotelian authority is a good deal impaired by the uncertainty concerning the date and authorship of the writings which are ascribed to him. And several of the citations of Aristotle omit the name of Plato, and some of them omit the name of the dialogue from which they are taken.

▷ 부록 I. 플라톤의 진짜 저작물과 가짜 저작물을 정확한 선으로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들에게 매우 가치 있는 유일한 외부 증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증거입니다. 한 세기 후의 알렉산드리아 목록에는 명백한 위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의 가치조차도 그에게 귀속되는 저술의 날짜와 저자에 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상당히 손상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용문 중 몇몇은 플라톤의 이름을 생략하고, 그 중 일부는 그들이 인용한 대화의 이름을 생략합니다.

▶ APPENDIX II. The Second Alcibiades shows that the difficulties about prayer which have perplexed Christian theologians were not unknown among the followers of Plato. The Eryxias was doubted by the ancients themselves: yet it may claim the distinction of being, among all Greek or Roman writings, the one which anticipates in the most striking manner the modern science of political economy and gives an abstract form to some of its principal doctrines.

▷ 부록 II. 두 번째 알키비아데스는 기독교 신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했던 기도의 어려움이 플라톤 추종자들 사이에서 알려지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고대인들은 에릭시아스를 의심했지만, 모든 그리스 또는 로마의 저술 중에서 정치 경제학의 현대 과학을 가장 눈에 띄는 방식으로 예측하고 주요 교리 중 일부에 추상적인 형태를 부여하는 것의 구별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저자소개

▶ 플라톤(Plato, BC427?~BC347?)

▶ 플라톤주의(Platonism)의 창시자, 플라톤(Plato, BC427?~BC347?) : 고대 그리스 아테네 출신의 철학자, 플라톤의 본명은 아리스토클레스(Aristocles)로, ‘넓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체구가 건장한 플라톤은 당대 그리스의 전통에 따라 육체적인 운동을 즐겼고, 레슬링 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힘 또한 탁월했기에, 그의 널찍한 어깨는 넓다(Plato)는 칭호를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는 플라톤주의(Platonism)를 창시한 사상가로도 잘 알려져 있으나, 당대 그리스를 넘어서 현재까지 ‘서양 철학의 거두’라 꼽히는 소크라테스(Socrates, BC470?~BC399)의 제자인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384~BC322)의 스승이란 점으로도 간과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아니,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가 사제 관계라니!!

▷ 독배마저도 담담하게 받아들인 소크라테스가 우매한 배심원들의 투표로 인해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이한 것을 목도한 플라톤의 나이는 불과 28세. 청년 플라톤은 스승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는 아테네를 떠나 지중해를 떠돌며 각지의 철학자를 만나는 고행을 시작합니다. 그리스 메가라(Megara), 리비아 키레네(Cyrene),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Isola di Sicilia)……. 젊은 시절의 고행은 플라톤이 자신만의 철학을 완성할 수 있도록 숙성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번외적으로 소크라테스의 유언은 악법도 법이다(Dura lex sed lex)가 아니라,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빚진 닭 한 마리를 대신 갚아 달라.(Pay it back for the chicken you owe Asclepius.)’였습니다. 다만 실정법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소크라테스의 유언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 서양 최초 고등 교육 기관(the first institution of higher learning in the Western world) 아카데메이아(Akad?me??) 설립자 : 플라톤(Plato)의 업적으로 수많은 대화편을 통해 그리스 철학의 토대를 다진 것 외에도, 서양 최초 고등 교육 기관(the first institution of higher learning in the Western world) 아카데메이아(Akad?me??)를 설립한 것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금이야 각종 재단과 종교 기관이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교육 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너무나 흔하지만, 당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한 명의 사상가가 독자적인 교육 기관을 설립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였을 것입니다. 플라톤은 설립자이기 이전에, 철학자이자 사상가로써 스스로 다양한 책을 집필하였고 전국에서 몰려든 학생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사상을 완성해 나갔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아카데메이아(Akad?me??)는 오늘날 대학교(Academy)의 원형으로 여겨질 만큼 유서 깊은 교육 기관으로, 유스티니아누스 1세 또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Flavius Petrus Sabbatius Iustinianus, AD482~AD565)가 비기독교 학교의 폐쇄를 명령한 서기 529년까지 무려 900여 년간 존속하였습니다. 아카데메이아란 이름은 그리스·로마신화의 영웅 아카데무스(Academus) 혹은 그의 이름을 가진 아테네 시민의 이름을 따 붙인 것입니다.

▶ 단돈 20미나(Twenty Minas) 노예로 팔린 대학자 : 플라톤의 생애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으로, 그가 살아생전 수차례 방문한 시칠리아 섬의 통치자 디오니시우스(Dionysius)의 명예 의해 노예로 팔린 것입니다. 현재로 치면 존경받는 대학교 총장이 정치 권력자에 의해 파면은 물론이거니와, 감옥에 갇힌 격이지요. 다행스럽게도 플라톤을 알아본 키레네 철학자(Cyrenaic philosopher) 아니케리스(Anniceris)의 도움으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아니케리스(Anniceris)가 지불한 금액은 단돈 20미나(Twenty Minas)! 부유한 집안의 자제로 태어난 플라톤으로써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플라톤은 당대 최고의 사상가이긴 했으나, 정치 권력자와의 사이는 썩 좋지 않아 자신의 재능을 정계에서 펼친 경험은 거의 없습니다. 중국 최고의 사상가 공자의 일생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네요.

▶ 스승 소크라테스를 위한 찬가, 플라톤의 대화편(Plato's Dialogues) : 부유한 부모를 둔 플라톤은 당시 아테네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비극 경연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직접 비극을 집필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디오니소스 극장 앞에서 자신만의 문답법으로 아테네 시민들에게 깨달음을 전달하는 소크라테스를 만났고, 이는 청년 플라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급기야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워 버린 후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입문하였으며, 훗날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30여 편의 ‘플라톤의 대화편’을 통해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였습니다. 이는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승 플라톤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철학을 다듬어 간 것과는 대조되는 대목입니다.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을 만나기 전에 꾸었다는 백조 꿈 일화도 유명합니다. 무릎에 앉혀 놓았던 백조가 갑자가 하늘로 날아가 버리는 꿈을 꾸었는데……. 플라톤을 만나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아니, 자네가 바로 그 백조로군!!

▶ 철학자 플라톤의 사랑?!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 : 육체적 사랑 에로스와 대비되는 정신적인 사랑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는 이름 그대로 ‘플라톤의 사랑’입니다. 아니 철학자 플라톤의 사랑이라니?! 플라톤은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사랑은 ‘신의 사랑’이라 주장하였고, 후대의 이탈리아 철학자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 1433~1499)가 플라톤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최초로 사용하였습니다. 이후 수많은 문학가들이 마르실리오 피치노의 신조어를 확대재생산하면서 대중들에게 친숙해 졌습니다. 17세기 영국에서는 윌리엄 데버넌트(William Davenant, 1606~1668)가 플라토닉 연인들(The Platonick Lovers, 1635)이란 희곡을 발표하였습니다. 윌리엄 데버넌트가 자신의 후원자 헨리 제르민(Henry Jermyn, 1605~1684)에게 헌정한 플라토닉 연인들 1635는 풍자가 섞인 코미디 장르로 1635년 블랙프라이어스 극장(Blackfriars Theatre)에서 초연하였습니다.

▶ 플라톤의 다면체, 정다면체(正多面體, Platonic Solid) : ‘플라톤의 다면체’란 의미의 정다면체는 ‘볼록 다면체 중에서 모든 면이 합동인 정다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꼭짓점에서 만나는 면의 개수가 같은 도형’을 의미합니다. 정사면체부터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그리고 정이십면체까지 5종류가 존재합니다. 정다면체에 대한 연구는 플라톤 이전에도 있었으나, 그가 티마이오스(Timaeus)를 통해 다면체를 자연의 원소와 연결하여 묘사함으로써 플라톤의 다면체(Platonic Solid)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 그리스 스카이 TV(Skai TV) 위대한 그리스인 100인(100 Greatest Greeks, 2009) 9위! : 그리스 스카이 TV는 2008년 4월부터 한 달간 자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방송을 통해 위대한 그리스인 100인(100 Greatest Greeks, 2009)을 생방송 토론과 투표를 통해 선정하였습니다. 1위는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BC356~BC323)을 비롯해 소크라테스(Socrates, BC470?~BC399) 5위,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384~BC322) 6위, 플라톤 9위, 페리클레스(Perikles, BC495?~BC429) 10위 등 우리에게 친숙한 역사 속의 인물과 그리스 철학자가 상위권에 대거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내과의사 게오르요스 파파니콜라우(George Papanicolaou, 1883~1962), 그리스 독립전쟁의 지휘관 테오도루스 콜로코트로니스(Theodoros Kolokotronis, 1770~1843), 그리스 대통령 콘스탄티누스 카라만리스(Konstantinos Karamanlis, 1907~1998), 총리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Eleftherios Venizelos, 1864~1936), 그리스의 초대 대통령 요안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Ioannis Kapodistrias, 1776~1831) 등 우리에게 낯선 현대인도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목차소개

-목차(Index)-
▶ 프롤로그(Prologue).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영어고전(English Classics) 1,999선을 읽어야 하는 7가지 이유
▶ 14가지 키워드로 읽는 플라톤(Plato, BC427?~BC347?)
01. “서양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It consists of a series of footnotes to Plato.)” ft.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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