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만이 남을 놀라게 만드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라야 감동도 배가된다. 의미심장한 이야기는 의미를 심장에 꽂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의미를 재음미하게 만들 수 있다. 나는 자전거 타기 그램드슬램을 달성한 후 나 자신만의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자전거 타고 문학관을 찾아가는 특별한 여정을 시작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탐색하며 문학관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자전거 타는 즐거움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오직 자신의 힘으로 페달을 밟아야만 자전거가 나아가는 것처럼 홀로 고뇌하며 위대한 작품을 남겨 어둠을 밝힌 작가와의 만남은 또 다른 내 삶의 전환기(轉換器)요 충전기(充電器)이며 세탁기(洗濯機)이고 보자기이자 소나기로 다가왔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위대한 지성들의 관련 문헌들에 대한 탐독의 즐거움은 내 삶을 탐지하게 하고 격동케 하며 나를 생채기 내어 성숙하게 하며 나의 고유한 삶에 온기를 불어넣는 따뜻한 햇볕이다. 김삿갓은 양반의 신분을 버리고 방랑하는 삶을 선택한 조선후기의 방랑시인이다. 그는 한시(漢詩)의 전형적인 주제와 틀에서 벗어나 민중의 삶을 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자유로운 형식의 시를 썼던 천재시인이기도 하다. 김삿갓은 당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그는 스스로 성(姓)만 말할 뿐 이름은 밝히지 않아 정체를 숨겼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삿갓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연유로 김삿갓(金笠)이라 불렀다.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金炳淵 1807~1863)으로 자(子)는 성심(性深) 호(號)는 난고(蘭皐)이고 ‘립(笠) 삿갓’은 방랑할 때 사용한 이름이다. 조선의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 가문의 자손으로 태어났으나 순조 11년(1811) 할아버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을 막지 못하고 항복하면서 집안이 몰락하자 조상이 큰 죄를 지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자손이라는 멸시를 피해 어머니와 함께 영월 삼옥리에 정착하였다. 김병연은 과거에 급제하여 가문을 일으키고자 학업에 정진하였지만 20세 무렵 과거를 포기하고 영월을 떠나 방랑을 시작하였다. 김삿갓의 방랑은 김익순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긴 ‘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 죄통우천(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 가산 군수 정시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우러러 논하고 하늘에 닿은 김익순의 죄를 탄하다)이라는 주제의 시와 관련 있다고 알려져 있다. 김삿갓의 방랑은 철종 14년(1863)에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에서 5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면서 끝이 난다. 이후 아들 익균이 김삿갓의 묘를 영월(하동면 와석리 노루목)로 이장 하였다. 영월은 김삿갓의 방랑의 시작지이자 종착지가 되었다. 김삿갓으로 인해 2009년 하동면이 김삿갓면으로 개칭되었으며 매년 9월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김삿갓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시간을 내어 자전거를 타고 영월 와석리의 김삿갓 문학관으로 방랑을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