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종교적인 함의를 끌어들이지 않고서도 죽음이라는 소재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분야이다. 죽음이 지니는 이미지가 어두워서 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리고 우리는 죽음이라는 추상에 파묻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누구나 피해갈 수 없지만 누구나 진지하고 집요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거부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요 근래에 우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많은 정신적 유산이 그 신비함을 고수하지 못하고 여지없이 발가벗겨지고 있는 현실을 살고 있다.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린다거나 소설을 쓴다는 이야기를 접하면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분야들이 우리가 만든 어떤 존재들에 의해서 침략당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느끼는 것도 지나친 과민은 아닌 듯하다. 우리가 보지 못하고 우리가 절대로 완전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는 인간에게 꼭 필요하다. 그런 공백을 우리의 선의와 우리의 선함으로 채워나가야 하는 순간이 있게 마련인데 요즈음에는 그런 여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소설이 그저 흥미로운 판타지소설이나 아니면 그저 킬링타임을 위한 팝콘소설로 취급받는 것을 나는 막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작가가 이 소설을 그렇게 썼기 때문이다. 재미를 위해서 대신 죽음의 육중한 문제의식을 내다 팔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다루는 죽음과 문학 그리고 인류의 위기라고 하는 소재는 서로 연관을 맺으면서 보다 높은 차원의 이해를 위해서 자신들의 비밀을 조금 양보하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 쓴 약이 당의정으로 만들어져 몸에 들어가 우리의 병을 치유해주는 것처럼 나는 이 소설이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