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 <워싱턴 포스트> <굿 하우스키핑> NPR 선정 올해의 책(2013)
퓰리처상 수상 작가라는 화려한 수식어보다 사람을 통해 삶을 말하는 작가라는 따뜻한 수식어가 더욱 잘 어울리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첫 장편소설인 『에이미와 이저벨』부터 최근작『내 이름은 루시 바턴』까지 독자와 평단이 스트라우트의 작품에 꾸준한 애정과 신뢰를 보내온 이유 역시 그가 삶의 박동이 느껴지는 문장을 통해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따뜻하고 믿음직한 이야기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출간되는 『버지스 형제』는 스트라우트가 『올리브 키터리지』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후 2013년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공유하고 있지만 이후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중년의 삼 남매가 고향 마을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건을 계기로 다시 모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작품에서 스트라우트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포함해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인간 내면의 탐구에 더해 그 인간들이 발을 딛고 몸을 부딪으며 살아가는 사회로, 세상으로 시야를 넓힌다. 『버지스 형제』는 미국 사회에 뿌리박힌 계급 문제와 더불어, 2006년 메인 주 루이스턴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소말리족 난민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차별 의식과 편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온전히 마음을 줄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마음에서 내칠 수도 없는 결함 있는 인물들을 통해, 타자에게 저지르는 폭력이 악의적인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 자신을 포함해 평범한 ‘우리’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스트라우트 소설이 언제나 그랬듯, 『버지스 형제』가 던지는 비판의 밑바닥에는 각자의 한계 안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 대한 온기 어린 시선이, 삶을 긍정하는 희망의 목소리가 깔려 있다.
익숙한 풍경 위에 도드라진 낯선 얼굴들과
익숙한 얼굴 위에 드리워진 낯선 그림자.
그해 겨울, 우리는 서로에게 타인이었다.
버지스 집안의 삼 남매 짐, 밥, 수전은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바로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것. 아버지는 어린 삼 남매를 태운 차를 언덕 위에 놓고 잠시 아래로 내려갔다가 밥이 장난을 치다 페달을 밟는 바람에 굴러내려간 차에 치여 목숨을 잃는다. 이것이 공식적인 사건의 전말이었고, 짐이 여덟 살, 쌍둥이인 밥과 수전이 네 살 때의 일이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시절의 일이지만 그날 이후 가슴속에 씻지 못할 죄책감을 품게 된 밥은 자존감 낮고 소심한 사람으로 자라고, 짐의 상습적인 구박과 모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잘생기고 똑똑한데다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는 짐은 맏이로서 집안의 가장이자 해결사 역할을 도맡는다. 그러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고향인 메인 주의 작은 마을 셜리폴스를 벗어나고 싶어하던 버지스 형제는 도망치듯 뉴욕으로 떠나고 수전만 고향에 남는다.
그리고 현재 중년이 된 삼 남매는 각자 너무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짐은 부유한 집안 출신의 아내 헬렌과 함께 뉴욕에 살면서 거대 로펌의 유명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반면 밥은 변호사를 그만두고 법률구조협회 항소부에서 사건 기록을 검토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아내 팸과도 이혼한 상태다. 수전은 남편과 이혼한 뒤에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홀로 열아홉 살 아들 재커리를 키우며 살고 있다. 짐과 밥은 어느 날 수전의 다급한 전화를 받는다. 재커리가 마을의 소말리족 난민 공동체가 신성시하는 이슬람교 사원에 잘린 돼지 머리를 던져넣었다는 것이다. 재커리의 행동이 증오범죄로 규정되면서 이 사건은 전국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재커리는 연방 검찰에게 기소당할 위기에 처한다. 짐과 밥은 조카를 돕기 위해 수년 만에 고향 셜리폴스로 향하지만 사태는 예상과 다르게 계속 악화되기만 하고, 오랜만에 만난 남매와 주변 가족들 간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일어난다. 급기야 심리적으로 막다른 길에 몰린 짐은 밥의 인생을 뒤흔들어놓을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삶과 삶이 충돌하는 복잡하고 미묘한 순간들,
그 저변에 깔린 계급과 차별을 이야기하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고. 저는 언제나 계급에 대해 이야기해왔습니다. 제 모든 작품을 통해서요.” _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소설의 중심에는 크게 두 가지 갈등이 있다. 소말리족 난민들과 메인 주 셜리폴스 주민들 간의 갈등. 그리고 버지스 가족 내의 갈등. 전자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충돌이고, 후자는 개인과 개인의 사적인 충돌이라는 점에서 일견 둘은 아주 다른 종류의 갈등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설은 사적인 갈등처럼 보였던 버지스 가족의 충돌 뒤에 숨겨진 지극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며 계급적인 분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버지스 가족 간의 충돌은 단순히 개인과 개인의 충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방식 간의, 삶과 삶의 충돌이다.
다른 삶을 상상하는 일,
이해와 공감의 도구로서 문학의 힘
“작가로서 제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선’이나 ‘악’이 아니라 인간 경험의 모호함과 우리 삶의 한결같은 불완전함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이 인간다움(humanness)이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그것이 제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 _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스트라우트는 소설이라는 매체가 타인을 이해하고 마음을 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소설 읽기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고, 낯선 이의 삶을 상상하고 그곳에 발을 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독서란 ‘이해’를 전제로 하는 활동이다. 스트라우트는 인물의 복잡 미묘한 심리를 놀랍도록 생생하고 탁월하게 느려내는 작가다. 우리는 그의 소설을 읽으며 다양한 인물들이 품고 있는 비밀과 욕망의 문앞에, 그들 내면의 문간에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한동안 그 인물의 내면에 들어가 있다보면 책을 덮어도 우리의 일부가 어딘가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버지스 형제』에도 역시 서로 다른 입장에 놓인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스트라우트는 그들의 입장과 심리를 끈질기면서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소설이 던지는 메시지를 생각하면 이는 마치 소설에 등장하는 어느 누구도 독자에게 타자로서 남겨두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작가는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소말리족 남성을 제대로 그려내기 위해 몇 년에 걸쳐 난민들을 조사하고 취재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 이유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그저 타자로 남게 될 것 같아서였다”고 밝혔다.
외부적인 사건보다 인물의 심리묘사에 소설의 대부분을 할애하던 이전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버지스 형제』는 분명 스트라우트의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결을 보여준다. 그러나 책장을 덮고 나서 밀려드는 감정은 한결같다. 그 감정은 역시나, 여전히, 스트라우트의 작품은 따뜻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을 통해 스트라우트가 하는 일은 현실의 차갑고 단단한 땅에 소설이라는 따뜻한 씨앗을 심는 것이다. 그 씨앗이 독자의 마음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멀리 뻗어나가 우리 모두를 조금 더 가까이 묶어줄 수 있기를, 더 따뜻하게 감싸안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