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아이들, 원인 모를 화재, 한밤중의 폭발… …
이탈리아의 셜록 홈스 vs. ‘악덕이 곧 미덕’ 뉴욕 마피아
세계 최고의 형사,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경악스러운 범죄 기록!
과연 검은손의 저주는 깨질 수 있을까?
한국의 조직폭력배, 이탈리아의 마피아, 일본의 야쿠자, 중국의 삼합회, 멕시코의 카르텔…… 세계의 범죄 조직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인류사의 그림자로 자리해왔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는 법. 악을 행하는 세력과 악을 처단하는 세력 간의 전투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내러티브 논픽션 작가 스테판 탈티는 『블랙 핸드』에서 범죄와의 전쟁에 일생을 건 한 영웅의 숭고한 희생과 그의 일대기를 훌륭하게 복원해냈다. 이 책은 20세기 초 뉴욕에서 대규모 갈취, 암살, 아동 납치, 폭탄 테러를 일삼은 악명 높은 범죄 조직 ‘검은손 협회’와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형사 페트로시노의 대결을 그렸다. 페트로시노는 뛰어난 기억력과 감쪽같은 변장술을 갖추었으며 바이올린과 오페라를 사랑해 ‘이탈리아의 셜록 홈스’라 불렸다. 한 편의 누아르 영화 같은 삶을 산 페트로시노. 이탈리아계 이민자 출신으로 피해자도, 동료 경찰도, 이탈리아 동포와 미국 시민도 협조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오직 자신의 신념과 선택에 따라 외로운 싸움을 감행한 형사의 활약상이 펼쳐진다.
“전 아무것도 몰라요! 아무것도 할 얘기 없어요!”
거대한 공포가 도시를 집어삼키다
검은손 협회(The Black Hand Society)는 뉴욕 마피아의 전신으로, 유사한 범죄 방식을 공유하는 군소 갱 집단을 일컫는 말이다. 아이들을 납치해서 돈을 요구하고 돈을 내지 않으면 건물을 폭파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검은손은 초창기 이탈리아계 이민자를 타깃으로 범행을 벌이다 활동 영역을 차츰 넓혀 뉴욕의 모든 시민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도시 전체가 집단 공황에 사로잡혔다.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 술집 주인이 문 앞에 ‘이 가게는 주인이 가족 상을 당해 문을 닫습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걸어놓고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까지 5백 달러를 내놓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편지를 받았는데, 그만한 돈이 없었기에 목을 매 자살한 것이다.
검은손 수사는 이탈리아 남부 지방의 보수적인 문화와 무정부주의적 성향 탓에 난항을 겪었다. 납치 아동의 부모는 범죄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는 행동 강령인 ‘오메르타’라는 계율에 따라 상납금을 바치고 아이를 돌려받았다. 법정에서 증언을 철회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남편을 잃은 아내가 법정에서 남편은 살해당하지 않았다고 증언하며 아예 사망했다는 사실까지 부인했다. 한편 검은손 갱단 두목을 지목하려던 증인은 방청객이 보낸 ‘죽음 신호’를 보고 얼어붙어 더는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검은손은 경찰 수사를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며 나날이 세를 늘려갔다. 이를 저지할 수 있는 인물은 단 한 사람, 페트로시노 형사였다.
경찰관의 구두를 닦던 십대 소년이
뉴욕 시경 최초의 이탈리아계 이민자 형사가 되기까지
주세페 미카엘 파스콸레 페트로시노는 이탈리아 캄파니아주 파둘라에서 1860년 8월 30일에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빈곤과 실정이 들끓는 고향을 떠나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러나 이민 후발주자였던 이탈리아인은 기존 서유럽계 이민자가 부리는 텃세를 한몸에 받아야 했다. 미국인은 그들을 ‘데이고(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출신을 경멸적으로 칭하는 말)’ 혹은 ‘와프(without papers, 즉 신분증명서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 ‘기니(이탈리아인을 아프리카 서해안 기니에서 납치해온 노예에 빗댄 차별적 멸칭)’라고 부르며 배척했다.
페트로시노는 여느 이탈리아계 이민자와 달랐다. 가난의 늪에서 벗어나 뉴욕에서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경찰청 앞에서 구두닦이 일을 하다가 뛰어난 능력과 수완으로 뉴욕 시경 산하 위생국에서 환경미화원 일자리를 얻었고, 스카우트를 받아 뉴욕 시경의 일원으로 발탁됐다. 뉴욕 시경 최초의 이탈리아계 이민자 형사가 되었고, ‘신비의 6인조’라고 불린 검은손 전담 수사반을 신설해 반장을 맡았으며, 미국에서 이탈리아인 최초로 경위가 되었다.
암흑의 시대를 빛낸 불세출의 인재
페트로시노 형사의 전설적 일대기
페트로시노의 천직은 범죄 수사였다. 사건에 관한 온갖 세부사항은 물론이고 이탈리아계 범죄자 수천 명의 이름과 얼굴 생김새, 생년월일 및 신체 치수, 출신지 배경, 습관, 기소된 죄명 따위를 모조리 외우고 다녔다. 위장술에 능해 하루 1달러 버는 막노동자나 조직폭력배, 위생국 공무원 혹은 가톨릭 사제로 자유자재로 변신했고, 변장한 채로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이탈리아의 셜록 홈스”라는 별명답게 오페라를 즐겨 들었으며 바이올린 연주 솜씨도 수준급이었다. 뉴욕 타임스는 그를 “세계 최고의 이탈리아계 형사”라 칭했다.
천재적인 자질을 갖춘 형사였지만 페트로시노는 여전히 아웃사이더였다. 이탈리아 이민자 사회에서 ‘비로’, 즉 경찰이 된다는 것은 동포를 등돌리고 자신의 입신양명만 추구하는 불명예 행위였다. 뉴욕 시경 소속 동료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를 적대했으며, 조롱과 비난을 퍼부었다. 상사들은 이탈리아계 이민자를 괴롭히는 검은손 수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페트로시노와 수사반을 이용했다. 범죄자에게 신원이 노출되어 협박을 받는 위험부담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페트로시노는 불평하는 법이 없었다. 과학적인 수사 기법을 도입하고, 뉴욕 갱단과 이탈리아 범죄 조직 간의 연계를 차단하기 위해 이탈리아까지 파견되기도 했으며, 공동의 안위를 수호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대부가 되었다”. 남다른 집념과 끈기로 검은손을 추적한 그의 업적은 불멸의 신화로 남아 언제까지고 기억될 것이다.
이 책은 근대 미국의 생활사를 역사적 사료에 근거해 서술한 역작이기도 하다. 이제 막 미국의 정체성이 생기던 시기인 1900년대 초, 산업화가 한창 진행중인 도시의 곳곳을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묘사했다. “세계의 절반을 담은 대도시” 뉴욕의 거리거리를 메웠던, 다양한 민족적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의 생활상도 엿볼 수 있다. 책 앞에는 실존 인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 자료를 화보로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