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철학(哲學)은 정신문명(精神文明)을 대표(代表)하고,
과학(科學)은 물질문명(物質文明)을 대표(代表)한다.
새해 인사(人事)로서 가장 보편적(普遍的)인 것은, ‘새해 복(福) 많이 받으세요’일 것이다. 전작(前作)에서, 새해에 대(對)해서는 거론(擧論)하였고, 그러한 새해를 맞으면, 상호(相互) 복(福)을 많이 받으라고 기원(祈願)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福)은, 어느 누구에게나 좋은 것임을, 쉬이 인식(認識)할 수 있다. 그런데 복(福)이라는 것이, 과연(果然) 무엇일까.
‘복 복(福)’은, ‘보일 시(示)’와 ‘가득할 복(?)’이 결합(結合)된 문자(文字)이다. 시(示)라는 것은, 신(神)에게 보이기 위(爲)해, 희생제물(犧牲祭物)을 올려서 차려둔, 제사상(祭祀床)을 의미(意味)한다. 시(示)라는 글자는, 그런 제사상(祭祀床) 모양(模樣)을 상형(象形)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제사상(祭祀床) 옆에서, 가득한 것은 ‘술병’이다. 복(?)이라는 글자가 술병 모양(模樣)을 상형(象形)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술병에 술이 가득하기 때문에, 복(福)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술병을 가득 채울 만큼, 정성(精誠)을 다해 술을 빚어, 그 가득한 술병으로써, 신(神)에게 술을 따라서 바친다는 뜻이다. 그렇게 신(神)에게 술을 따르면서, 기원(祈願)하는 그 무엇, 그것이 바로 복(福)이다. 그래서 흔히 복(福)을 기원(祈願)하는 상황(狀況)을, 기복(祈福)이라고 표현(表現)하는 것이다.
기원(祈願)하는 그 무엇은, 그 어떤 것이라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새해를 맞아서, 사냥이 잘 되게 해달라거나, 농사(農事)가 잘 되게 해달라거나... 등(等), 온갖 희망사항(希望事項)을 기원(祈願)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만약(萬若) 그 희망사항(希望事項)이 실현(實現)되면, 실제(實際)로 복(福)을 받는 것이 된다. 아울러 복(福)은, 단지(但只) 받는 것만이 아니라, 동시적(同時的)으로 기원(祈願)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복(福)은, 자아(自我)가 복(福)을 받는 것이기도 하며, 타자(他者)의 복(福)을 기원(祈願)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새해에 복(福) 많이 받으라면서, 덕담(德談) 삼아 인사(人事)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갸륵한 마음인가. 나만의 복(福)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너만의 복(福)을 바라는 것도 아니며, 서로가 서로에게 복(福)을 기원(祈願)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복(福)을 기원할 때, 현대인(現代人)들은 흔히 행복(幸福) 개념(槪念)과 오버랩(overlap)될 것이다. 복(福)을 받는다는 것은, 행복(幸福)해지는 것이라고 인식(認識)하기 때문인데, 그릇된 바 없는 인식(認識)이지만, 철학적(哲學的)으로 타당(妥當)한 해석(解釋)은 아니다.
따라서 향후(向後) 주역정의(周易正義) 번역작업(飜譯作業)을 진행(進行)하는 과정(過程)에서, 동서양철학(東西洋哲學)의 다양(多樣)한 행복론(幸福論)에 대(對)해서는, 지속적(持續的)으로 설명(說明)토록 할 것이다. 어쩌면 동서양문명(東西洋文明)에서, 철학(哲學)이라는 학문(學問)은, 인간존재(人間存在)의 행복(幸福)을 목적(目的)하며, 태동(胎動)하였다고 해도 과언(過言)은 아니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