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Prologue
바우길을 걸으면 강릉이 보인다
도시인에게 강릉은 로망이다. ‘강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경포해변과 대관령, 커피거리다. 사람들은 강릉에서 맛집과 호텔, 바다 풍경만 보고 돌아간다. 국내외 유명 도시를 다녀온 자에게 무엇을 보고 왔느냐고 물어보면 스마트 폰에 저장한 몇 장의 사진을 보여준다. 도시의 겉모습만 보고 온 것이다. 강릉 바우길을 걷기 전까지는 나도 그랬다.
2018년 7월 강릉과 인연을 맺고 틈틈이 경포호수와 남대천, 해송숲길을 걸었다. 걷다보니 문득 ‘강릉의 속살’이 보고 싶었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지만, 퇴근 후 밥 먹고 술 먹는 일이 고작이었다. 아쉬웠다. 강릉 바우길은 두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해 주었다. 강릉 바우길은 강릉의 산과 숲, 호수와 바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요, 강릉이 낳은 인물과 유적지를 아우르는 전통과 역사의 길이다. 대관령 옛길부터 안반데기에 이르는 전체 17구간 230여 km에 이르는 자연친화적인 길이다.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과 더불어 한국의 3대 명품 길로 알려져 있다.
2019년 초 ‘강릉 바우길 걷기’ 계획을 알렸다. 자율적이라고 했지만 반강제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다. 목적이 순수하고 의지가 굳으면 함께하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세 사람만 모여도 간다. 비용은 N분의 1이다. 들고 나는 건 자유다”라고 했다. 함께하는 자가 차츰 늘어났다. 걷고 난 후 답사기를 썼다. 걷기 전에 공부하고, 걸으면서 관찰하고, 걷고 난 후 글을 썼다. 역사자료와 유적지를 살폈고 서적을 펼쳤다.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강릉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나는 길을 걸을 때마다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과 그 지역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과 동행했다. 그들은 마을의 과거와 현재를 알려주었고, 자신들이 살아온 파란 많고 굴곡진 삶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책에는 살아오면서 한 번도 꽃피어 보지 못한 자들의 상처와 눈물자국이 군데군데 담겨있다.
답사기는 우정사업본부 사내게시판에 17회 연재하였다. 전국에 강릉 바우길을 알리고 강릉의 구석구석을 알뜰하게 보여주었다. 강릉 사람들은 바우길을 걸으면서 강릉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고 했고, “한 직장에 있으면서도 바쁘다는 이유로 데면데면했던 동료와도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했다.
2019년 말 강릉 바우길 사무국장 이기호 선생을 만났다. 그는 소설가 이순원 선생과 함께 강릉 바우길을 개척한 산악인이다. 그는 “제주 올레길은 여행기와 답사기가 수두룩한데 강릉 바우길은 책이 부족하다. 답사기를 책으로 펴내어 바우길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함께 했던 우체국 바우회 회원들의 격려도 큰 힘이 되었다.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분들이 격려와 도움을 주셨다. 어떤 분은 댓글로, 어떤 분은 전화로, 어떤 분은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으로 마음을 데워 주었다. 강릉우체국 바우회를 이끌었던 김성호, 조기완, 홍동호 주무관의 헌신은 잊을 수 없다. 덕담과 너털웃음, 흔쾌한 자료제공으로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던 이기호 선생의 응원은 보약과 비타민이었다. 디자인과 편집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북갤러리 최길주 대표의 노고가 없었더라면 한 권의 책으로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1년 6개월여 회임(懷妊) 기간을 거쳐 어렵사리 태어난 활자를 세상으로 보낸다. 강릉 여행을 꿈꾸는 자들이 맑고 고운 눈으로 사람과 풍경을 관찰하고, 보이는 것 이면에 스며있는 인문과 역사의 시간을 상상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0년 짙푸른 유월
파도치는 강릉 해변이 바라보이는 커피숍에서
김영식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