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의 부활을 꿈꾸며” 한계를 넘어선 거장의 색다른 연작
위험천만한 트릭에 기꺼이 몸을 맡기는 여성 그리고 눈속임으로 관객을 탄복시키던 쇼맨의 마술쇼를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수많은 관객의 예리한 눈, 이성 그리고 감성까지 마비시키는 매력적인 쇼
맨십에서 착안해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로운 캐릭터가 탄생했다. 대학교수, 형사를 주인공으로 통상 이삼
년에 한 편씩 시리즈 신간을 발표하던 작가가 한국 독자들에게 일여 년 만에 신간을 소개하는 이례적인
일이 일어났다. ‘블랙 쇼맨’ 시리즈가 바로 그것, 이번 신간은 작가가 코로나19 이후 침체된 도서 시장
과 미스터리의 부흥을 위한 염원을 담아 쓴 단편을 엮었다. 과거 잘나가던 마술사 가미오 다케시, 지금
은 도쿄 후미진 골목에 있는 술집에서 바텐더를 하면서 손님들을 응대하던 그가 다시 한번 사건 해결을
위해 나선다. 참을 수 없는 존재를 향해 날리는 최선의 반격
가족의 스토킹을 멈추고 싶은 미망인, 평생을 함께할 상대로 오늘 저녁 처음 만난 사람을 감별해달라
는 손님, 죽어버린 연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 죽은 남편의 유산을 물 쓰듯 한다는 비
난을 받을까 봐, 돈만 밝히는 속내를 간파당할까 봐,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사랑했었다는 과거가
들춰질까 봐 이들은 자신을 옭아매고 있다. 실상 자신을 갉아먹는 현실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원해 돈에
의해서든, 사랑을 이뤄서든 각자의 인생에 새로운 출구를 찾지만, 주위 시선이 여전히 매서워 번번이 망
설일 뿐이다. 견딜 수 없다면 태세를 전환하는 게 상책. 다시 태어나고 싶을 만큼 간절한 이들의 열망에
화답하기 위해 다케시가 등판한다. 짐짓 타인의 사정에는 관심 없다는 듯 손님을 응대하지만, 절망에 빠
진 이들이 보내는 SOS를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차리고 물심양면 도와준다. 그는 각종 칵테일을 능숙하
게 만들어 이들에게 내어주며 위로하는 것은 물론, 화려한 손짓 하나로 결말을 바꿔치기하고, 생면부지
의 사람이 꾸민 음모를 밝혀낼 정도로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다. 속도감 있게 수수께끼를 해결하며 속임
수는 속임수로 갚아주는 다케시의 일침에 이야기의 재미는 한껏 달아오른다.
오직 히가시노 게이고만 구현할 수 있는 세계
1985년 데뷔해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베스트셀러 작가’의 자리를 지켜온 만큼 히가시노 게이고가 구
축해온 입지는 독보적이다. 그의 공식 출간 기록을 보면 단 한 해도 쉬지 않고, 서너 편의 책을 써왔다
고 할 정도의 많은 작품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그의 새 원고를 받기 위해 일본 출판계 담당자들은 지금
도 순서를 정해 기다리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그의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판권 경쟁이 치열
하다. 매년 스스로 전성기를 갱신한다고 할 만큼 변함없이 독자들의 성원을 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본격 미스터리를 비롯해 서스펜스, SF 심지어 감동적인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에도 능통한 그는 ‘과연
한 사람이 쓰는 게 맞는가’ 의문이 들 정도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색다른 방식으로 집필해왔다. 문장
은 명료하고, 속도감 있게 읽히되, 절대 결말을 예측할 수 없게끔 촘촘히 조형해온 그의 작품 세계는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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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사이에 일어나는 각종 촌극에 천착한다는 점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선과 악을 엄정한 도덕적 잣대
로 판별하는 데서 벗어나,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비극의 원형을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내는 데에 능통한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분량은 가볍지만, 전혀 가볍지 않은 주제 의식을 담아 살인이 일어나지 않아도
크고 작은 일들에 휘말리는 인간의 일상사를 특별하게 풀어내는 그의 필력에 독자들은 어김없이 탄복하
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