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살, 7년 차 회사원
보디빌딩의 세계에서 ‘여성다움’과 싸우다
이다혜 작가 추천
스바루문학상 가작 수상, 아쿠타가와상 후보
동네 헬스장의 ‘스미스 머신’을 벗삼아 웨이트트레이닝에 몰두하는 7년 차 회사원. 좀더 체계적으로 단련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보디빌딩 대회에 도전하지만 주위 상황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여성의 몸이 가지는 젠더성, 현대사회의 루키즘과 페미니즘을 참신한 관점으로 재해석한 1991년생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 45회 스바루 문학상 가작을 수상하고 같은 해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다.
스물아홉 살, 7년 차 회사원, 신참 보디빌더
싸움의 상대는 태닝, 제모, 피어싱, 12센티미터 하이힐
주인공 U노는 ‘하드보일드한’ 회사 생활 7년 차인 스물아홉 살 여성. 퇴근 후 회사와 집 사이에 있는 헬스장에 들러 정해둔 루틴을 수행하고 다음날까지 이어지는 근육통을 불러오는 것이 일상의 낙이다. PT도 받지 않고 마땅한 동료도 없이 헬스장에 한 대뿐인 스미스 머신을 벗삼아 일 년 넘게 홀로 묵묵히 트레이닝한 덕에 보디빌딩계의 유명인 O시마의 눈에 들고, 자신이 옆 동네에 새로 개업하는 헬스장으로 옮겨 보디빌딩 여자 부문, 지금은 피지크라는 명칭으로 바뀐 BB대회에 출전해보라는 권유를 받는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예전에 다니던 동네 헬스장과는 비교하기 힘든 전문적인 시설과 공통의 목표를 지닌 열정적인 회원들에게 고무되어 도전을 결심한 U노. 그러나 그저 신체를 체계적으로 단련해 원하는 경지에 이르고 싶다는 순진하고 순수했던 동기와 달리, 대회를 향한 준비에는 예상치 못한 복병들이 난무한다. 무대에서 필수 액세서리인 커다란 피어스를 달기 위해 난생처음 귀를 뚫고, 전문 숍을 순회하며 태닝과 제모를 하고, 스팽글이 달린 현란한 색깔의 비키니를 구입하고, 규율 상한선인 12센티미터 하이힐에 익숙해져야 한다. 워킹과 포즈를 지도하는 코치이자 미스 유니버스 대회 출신 E토에게서는 좀더 활짝 웃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제 눈에는 완벽해 보이기만 하는 트레이너 T이도 대회 날이 다가올수록 체중 감량에 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겉모습은 머릿속에 그리던 이상의 육체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다른 생명체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겁 없이 도전을 결심했던 당시의 내가 원했던 것은 과연 이것이었을까? 이윽고 다가온 결전의 날, U노는 내면의 질문을 마주하고 온전히 자신만의 결단을 내린다.
“다른 생명체가 되고 싶다.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고, 누구에게도 동정받지 않는,
초연한 생명체가 되고 싶다.”
크로스핏의 유행과 퍼스널트레이닝의 대중적 확산, SNS상에서의 보디프로필 열기를 동시에 찾아볼 수 있는 지금 『나의 친구, 스미스』의 주인공 U노가 겪는 아이러니에 공감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실제로 이 년가량 헬스장을 다니는 사이 전문적으로 신체를 단련하는 보디빌딩, 피지크 선수들을 관찰하며 이 작품을 구상했다는 작가는 소설에서 U노를 대회 도전으로 이끄는 O시마의 결정적인 대사, “여기서 훈련하면 다른 생명체가 될 거야”라는 말에 방점을 찍는다.
“처음에는 ‘남자처럼 되고 싶다’ ‘여자답지 않게 되고 싶다’는 표현을 생각했지만, 결국 ‘다른 생명체가 되고 싶다’는 비유가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일상생활에서 남자 아니면 여자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무언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북아사히 인터뷰에서)
여성스러움이란, 아름다움이란 원래 무엇이었을까?
일상 속 젠더에 대한 의문에 도전하는 야심찬 데뷔작
젠더와 몸에 대한 담화가 여느 때보다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경직되어 있는 현대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느끼는 의문을 담아낸 소설의 주제는 주인공의 직장과 가족의 반응에서 보다 또렷이 드러난다. 대회 준비를 위해 머리를 기르고 식단을 관리하는 U노에게 동료들은 ‘남자친구가 생겼나보다’ ‘여자들은 힘들겠다’며 스스럼없이 말하고,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보디빌딩 대회 중계를 본 어머니는 “너도 저렇게 울룩불룩해지는 건 아니지?”라고 염려한다. 미용이나 패션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주인공은 단순히 강인해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도전한 대회 준비 과정에서 새로운 세계를 접한다. 혼란과 깨달음을 반복하는 U노의 시점을 통해 우리 역시 아름다움과 강인함에 대한 본능적인 열망, 보여지는 것으로서의 젠더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