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 소개
기묘한 울림을 주며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를 예견한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 단편 4선
“나는 「변신」을 읽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_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콜롬비아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어떤 사회학적, 정치학적 성찰도 말해 줄 수 없었던 (우리 세기에 입증된 그대로의) 인간 조건을 우리에게 말해 줄 수 있었다.”
- 밀란 쿤데라(체코 작가)
“주제와 배경은 장편과 단편이 본질적으로 같다. 이야기의 진행이나 심리적 침투는 다르다. 이런 면에서 카프카의 단편들이 장편들보다 우수하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아르헨티나 작가)
무소속성과 혼종적 경계인을 그려 낸, 카프카의 대표 단편 출간
「변신」, 「굴」, 「학술원 보고」, 「단식예술가」
후세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며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중 네 작품을 선정하여 아르테에서 출간했다. 번역은 인천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목승숙이 맡았다. 현재 한국카프카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너무도 다양한 층위와 의미로 읽히는 카프카의 작품들을 정확하면서도 원문의 내용과 표현을 그대로 살려내려고 공들여 우리말로 옮겼다.
나는 문학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다른 그 무엇도 아니고 다른 그 무엇도 될 수 없다.(프란츠 카프카)
카프카는 우리가 익히 알듯이 체코계 유대인으로 독일어로 글을 쓴 독일어권 작가다. 자수성가하여 아들 또한 그렇게 자라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평범한 체코의 학교가 아닌 소수의 사람들만 입학하는 독일식 학교를 다녔으며 법률을 전공했다. 이러한 그의 성장 과정과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를 체코인도 유대인도, 독일인도 아닌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무소속성, 혼종적 경계인’으로 만들었다. 그는 평생 보험공단에서 일하며 퇴근 후에 글을 썼다.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회사에서 근무하고, 퇴근 후 초저녁까지 잠을 잔 뒤 밤늦게까지 자신이 원하는 글쓰기를 했다. 그의 미사여구 없는 간결하고 정밀하며 무미건조한 문체는 문어체 투의 프라하 독일어의 영향이다.
이러한 그의 생활은 작품 곳곳에 녹아 있어서, 독자들은 그의 글을 읽으면서 1883년에 태어난 카프카가 마치 21세기 오늘 여기에 살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출근을 해야 하는데 벌레로 변해 있고, 나만의 굴(세계)을 구축해 놓았는데 너무도 불안하고, 원하지 않는 이주를 하여 낯선 곳에서 원숭이가 된 기분으로 적응하려 애쓰며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 내야 하고, 나의 생각과 삶의 방식이 인정받지 못하는 이 세계와의 불화,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몰이해 등이 그의 작품 속에서 특유의 메타포를 통해 너무도 섬세하고 절절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그려진다.
현실과 비현실, 일상적인 것과 비일상적인 것, 진지함과 유머
카프카의 소설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현실의 세계를 이야기하며, 일상적인 일들에서 조금씩 뒤틀리는 비일상을 표현하고, 자못 진지한 가운데서도 한자락의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굴」은 ‘건축’, ‘건축물’로도 번역되는 카프카의 미완성 단편으로, 카프카가 평생을 살았던 프라하를 의미하기도 한다. 오소리 혹은 다른 동물일 수도 있는 동물이 땅 밑에 자기만의 굴을 파는 이야기다. 적의 침입을 잘 막아 내는 동시에 유사시에 탈출하기도 용이해야 하며, 먹이를 비축해 두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도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이 동물건축가는 이리저리 분주히 다닌다. 어쩌다 자신의 먹이를 쌓아 놓은 성곽 광장을 보며 흐뭇해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보이지 않는 적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으로 안절부절한다. 그것은 잠시의 안정과 끊임없는 불안 속을 헤메이는 현대인을 닮았다.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레고르 잠자는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라는 강렬한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변신』은 첫 문장의 힘을 이야기의 끝까지 밀고 나간다. 가족 부양을 책임지고 있던 그레고르 잠자라는 영업사원에게 일어난 변화가 그 자신과 가족 사이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오는지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어떤 사건이나 사고에 따른 미묘하고도 씁쓸한 관계의 변화를 생각해 보게 된다.
「학술원 보고」는 아프리카 골드코스트 해안에서 잡혀 온 원숭이가 유럽 사회에 적응해 온 5년의 과정과 소회를 학술원에서 보고하는 형식의 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빨간 피터의 고백〉이라는 연극으로 인기를 얻기도 했다. 지구의 주인처럼 행세하고 있는 인간 세계와 문명에 대한 비판이 곳곳에 서려 있으며, 동시에 동화된 원숭이로서 다른 원숭이에 대해 느끼는 우월감 등도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은 “동화된 유대인에 대한 가장 천재적인 풍자”로 평가받는다.
「단식예술가」의 소재인 단식공연은 19세기와 20세기의 ‘세기 전환기’에 유럽과 미국의 대도시에서 성행했던 오락 공연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단식과 예술가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데, 그 당시에는 우리나 유리 상자에 갇힌 채 일정 기간 단식하는 퍼포먼스를 벌였고, 이 공연은 사업 수완이 있는 공연 매니저에 의해 대대적으로 선전되며 신문과 잡지의 지면을 장식했다고 한다. 단식을 자신의 예술로 승화해 내려고 하는 예술가와 이를 상업적으로만 활용하려는 매니저,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 등이 그려진다. 카프카가 죽기 전까지 교정을 보며 애착을 보인 작품이라고 한다.
카프카의 삶과 작품에 대해 옮긴이는 이렇게 말했다.
반유대주의, 서부 유대인과 동부 유대인 간의 반목, 민족주의, 사회주의가 교차하던 프라하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카프카는 ‘사이에 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과 온정주의로 인해 타자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 영향으로 동물은 그의 작품에서 자주 타자의 메타포로 기능한다. 그리하여 정확한 설명이나 해석을 담지 않고 비유적 언어를 즐겨 쓴 카프카의 작품은 시공간을 망라하는 보편적 층위, 시대 밀착적 층위, 자전적 층위 등 다양한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다의적 해석을 허용한다. 이처럼 카프카의 동물 또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인종적 차원과 결부되며 인간 내지는 문명과 거리를 둔 자연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라는 긍정적 함의에서부터 소외되고 격리된 인간,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받는 인간, 동물로 비하되는 타 인종, 존재 의미를 인정받지 못하는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비유로 읽히며 해석을 발굴하는 기쁨을 선사해 왔다.”
◎ 책 속으로
“삶의 정점에 이른 지금에도 나는 한시도 평온한 시간을 누릴 수 없다. 어두운 이끼가 낀 바로 그 자리에서 나는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존재이며, 탐욕스러운 코로 그 주위를 킁킁대며 쉴 새 없이 냄새를 맡는 꿈을 자주 꾼다.”(「굴」 중)
“나는 내가 자유롭게 생활하도록 정해져 그렇게 살도록 내맡겨진 존재가 아니라 내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며, 끝없이 여기서 사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내가 원하고 이곳 생활에 지쳤을 때 초청을 거역할 수 없을 누군가가 나를 자신에게로 부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굴」 중)
“ 커다란 굴은 무방비 상태로 저기에 있고, 나는 더 이상 애송이 견습생이 아니라 노년의 건축가다. 그리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는 남은 힘조차 말을 듣지 않는다. ”(「굴」 중)
“어느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레고르 잠자는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변신」 중)
“ 이 작은 빨간 사과들은 감전된 듯이 바닥 위를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서로 부딪쳤다. 살짝 던진 사과 하나가 그레고르의 등을 스쳤지만 상처를 입히지는 않고 미끄러져 떨어졌다. 이와 반대로 연이어 날아온 사과 하나가 그레고르의 등에 확실히 박혀 버렸다.”(「변신」 중)
“그레고르는 조금 더 앞으로 기어 나갔고, 가능한 한 여동생과 시선을 마주치려고 바닥에 머리를 바싹 갖다 댔다. 음악이 그에게 이렇게나 감동을 주는데, 그가 동물이라니? 마치 그에게 갈망하던 미지의 양식에 이르는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변신」 중)
“존경하는 학술원 회원 여러분! 영광스럽게도 여러분들은 제게 예전 원숭이 시절의 삶에 관해 학술원에 보고해 달라고 요청해 주셨습니다.”(「학술원 보고」 중)
“한 발은 뺨에 맞았습니다. 가볍게 스치기만 했는데 털이 싹 밀린 커다란 빨간 흉터가 남게 되었습니다. 이 상처로 인해 전혀 맞지도 않을뿐더러 확실히 어느 원숭이에게서 빌려 온 빨간 페터라는 이름이 제게 붙었습니다”(「학술원 보고」 중)
“ 한번은 어느 마음 좋은 사람이 단식예술가를 가엾게 여겨서 슬픈 이유가 단식 때문일 것이라고 그에게 설명하려 들자, 한창 단식 중이던 그가 분노를 터뜨리며 짐승처럼 우리를 흔들기 시작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단식예술가」 중)
“왜냐하면 제가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믿어 주세요. 그것을 찾았더라면 이목을 끌지도 않았을 것이고 당신이나 다른 사람들처럼 배불리 먹었을 겁니다.”(「단식예술가」 중)
또 다른 세계로 가는 문학의 길 ‘클래식 라이브러리’ 시리즈에 대하여
클래식 라이브러리는 아르테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세계문학 시리즈로, 이에 앞서 문학과 철학과 예술의 거장의 자취를 찾아가는 기행 평전 시리즈로 호평을 받고 있는 ‘클래식 클라우드’의 명성을 잇는 또 하나의 야심 찬 시도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공간’을 통한 거장과의 만남을 위한 것이라면, 그 형제 격인 클래식 라이브러리 시리즈는 ‘작품’을 통해 거장의 숨결을 느껴 보기 위한 것이다. 이로써 거장을 만나는 세 개의 다리, 즉 ‘공간’과 ‘작품’과 ‘생애’가 비로소 놓이게 된 셈이다.
시중에는 이미 많은 종류의 세계문학 시리즈가 있지만, 아르테에서는 우리 시대 젊은 독자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해당 작가나 작품에 대한 전문가급 역자에 의한 공들인 번역은 물론이고, 고전 하면 으레 떠오르기 마련인 무겁고 진중한 느낌에서 탈피하여 젊고 산뜻한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웠다. 번역의 질적 측면으로 보나, 그것을 담고 있는 그릇의 외관으로 보나 클래식 라이브러리는 오늘날 젊은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약 5년간의 준비 끝에 2023년 봄과 함께 첫선을 보인 『슬픔이여 안녕』(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평온한 삶』(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윤진 옮김), 『자기만의 방』(버지니아 울프 지음, 안시열 옮김), 『워더링 하이츠』(에밀리 브론테 지음, 윤교찬 옮김)를 시작으로 아르테에서는 『변신』, 『1984』에 이어 『인간 실격』, 『월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등 올 한 해 총 19종의 세계문학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