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식이 전하는 아주 색다른 도시 이야기
이번엔 도시 이야기다. 누군가는 이 책을 손에 들고 “또?”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공학 박사 출신의 소설가로 TV에도 종종 얼굴을 내비치며 대중에게 제법 친숙해진 곽재식 작가는 놀라운 집필 속도로도 유명하다. SNS에서는 이른바 ‘곽재식 속도(작가의 글쓰기 속도를 측정하는 단위로, 1곽재식 속도는 6개월에 단편 4개를 집필하는 속도를 말함)’라는 말이 밈처럼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곽재식 작가의 행보를 가만히 지켜보면 단순히 책을 빠르게 많이 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폭넓은 이야깃거리를 신속하고 탁월하게 글로 구현해 낸다는 점에 더 감탄하게 된다.
그런 곽재식 작가가 이번에는 도시를 소재로 꺼내 들었다. 『곽재식의 도시 탐구』는 우리나라 전국 팔도에서 10개의 도시를 선정하여 그곳의 유래와 역사, 상징과 특산품, 그리고 연관된 과학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책은 마치 여행하듯이 도시의 면면을 요리조리 들여다보면서 호기심을 느끼게 하는 모든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작가가 실제 한국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방랑자처럼 여행했던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며 집필했기에 그 느낌은 더욱 생생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호기심을 풀어 나가며, 이야기는 점차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되어 간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아주 색다른 도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꼬리를 놓치지 않고 잘 따라가다 보면, 작가의 호기심이 시작되는 순간과 폭넓은 상상력의 원천을 조금쯤은 엿볼 수 있게 된다.
도시를 탐구하는 과학자의 호기심
이 책 『곽재식의 도시 탐구』는 우리나라 도시에서 발견한 궁금증을 과학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오랜 과거의 흔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서 도시의 역사와 유래를 이해하고, 특산품을 살펴보면서 과학기술이 도시를 얼마나 발전시켰는지 확인해 보기도 한다. 작가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이야깃거리를 캐내기에 과학기술만큼 좋은 도구가 없다”고 말한다.
불을 이용하면서부터 인류는 사회를 이루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불이라는 화학 반응을 개발한 이를 두고 인류 최초의 화학자라고 한다면, 우리는 화학자의 후손인 것이다. 게다가 산업이 발달한 현대의 도시는 과학기술과 연관을 맺으며 성장하고 있기에, 도시를 탐구할 때 과학만큼 적절한 것이 또 없다.
과학은 우리가 미처 눈여겨보지 않았던 사물과 현상을 흥미로운 화제로 전환하는 데도 탁월한 수단이다. 찰보리빵 이야기를 보면서 경주를 대표하는 음식을 소개하려는 건가 싶다가, 보리가 쌀보다 맛없다고 느껴지는 이유와 품종 개량 방식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식이다. 전주에 과연 공작이 살았을까? 하는 물음은 공작의 깃털 색이 화려한 이유와 부채를 만드는 뛰어난 기술로 이어진다. 경주의 대숲을 배경으로 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로 시작해서 대나무의 영양번식과 화분 고고학으로 전개되는 설명은 흥미진진하다.
재생 에너지를 사용할 때 꼭 필요한 배터리 생산 시설과 기온에 민감한 두꺼비의 집단 서식지가 있는 청주를 이야기하면서, “청주에는 기후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두꺼비도 있고 배터리도 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지극히 과학자다운 시선이 엿보인다. 또한, 곳곳에 나무가 울창한 지금의 모습과는 달리 조선 시대에만 해도 한반도는 나무가 부족한 민둥산이 익숙한 풍경이었다는 이야기는 놀랍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수원에서 새로운 나무의 품종을 개발하고, 그 나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심고 기르는 방법을 연구하며 평생을 보낸 학자들 덕분에 지금 나무숲이 우거진 풍경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과학기술이 자연환경을 해친다고 여기기 쉬운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숨겨진 이야기를 찾는 소설가의 상상력
작가는 도시를 둘러보다가 떠오르는 호기심을 과학으로 파헤치고, 그래도 알 수 없는 부분이 생길 때는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그 간극을 메운다. 예를 들어, 저자는 속초의 울산바위에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그걸 해결하기 위한 시작은 흔히 알려진 전설을 상기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위가 움직였다는 유사한 전설을 언급하기도 하고, 떠오르는 지식을 하나둘 꺼내기도 한다. 그다음 생각한다. 그 전설에 근거는 있을까? 이제부터는 화강암, 공룡능선, 쥐라기 시대, 마그마, 대보조산운동에 관한 과학적인 설명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전설로 자리 잡은 과정에 상상력을 살짝 끼얹는다. 결대로 갈라진 화강암의 모습이 울타리 같다고 했던 것이 전해지고 또 전해져서 결국 울산바위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상상이다.
여수의 비파형 동검을 언급하면서는 청동 검사가 활약했을지 모를 먼 과거의 이야기를 눈에 보이듯 설명하고, 부산 금정산에 올라 물고기 모양 외계인의 존재에 관해 떠올려 보기도 한다. 몇몇 상상은 아주 그럴듯하고, 몇몇 상상은 기발하며 흥미롭다.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를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소설가다운 면모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같은 도시에서 떠올린 소재라는 공통점을 빼면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을 보면, 과연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이 책은 과학자 곽재식과 소설가 곽재식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라고 말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과학자 곽재식과 소설가 곽재식에 관해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인 것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