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가장 오래된 강박관념인 여성의 쾌락을
은밀하게 해부한 작품.” _ 라우라 에스키벨
기발한 상상력과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아르헨티나 작가 페데리코 안다아시의 첫 장편소설이자 대표작으로, 실존 인물인 16세기 최고의 해부학자 마테오 콜롬보의 독특하면서도 위험한 ‘발견’을 그린 소설이다. 여성의 사랑과 쾌락을 지배하는 작은 신체기관인 클리토리스를 발견하게 된 과정과, 악마에게 힘을 실어주는 발견을 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에 회부된 해부학자의 이야기가 긴박감 있게 펼쳐진다. 안다아시는 해부학, 종교, 인문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통해 역사를 재해석, 재생산해내고, 해부학자의 발견을 ‘이단’으로 규정한 가톨릭 권력을 조롱함으로써 중세의 음울하고 폐쇄적인 도덕관념과 종교적 금기, 인간의 무지에 예리한 메스를 들이댄다. 이 작품은 1997년 스페인에서 출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3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올랐다.
여성의 몸에서 발견한 천국과 지옥의 열쇠,
위대한 ‘발견’인가, 불경스러운 ‘이단’인가?
소설은 “오, 나의 아메리카여, 나의 달콤한 신대륙이여!”라는 감탄문으로 시작된다. 해부학자 마테오 콜롬보는 자신이 발견한 실체를 성이 같은 탐험가가 찾아낸 ‘아메리카’에 비견했다. 탐험가의 ‘아메리카’에 비하면 해부학자의 아메리카는 한량없이 작고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지만 한층 도발적이다. 그것은 모든 남자가 한번쯤 꿈꾸는 것으로, 여자의 마음을 여는 마술의 열쇠이며 여성의 변덕스러운 의지를 정복하는 도구이다. 해부학자는 자신의 아메리카에 ‘비너스의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그것이 바로 ‘클리토리스’이다.
마테오 콜롬보의 발견은 두 여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가 흠모했던 베네치아의 고급 창녀 모나 소피아와의 만남을 계기로 여성의 마음을 얻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고, 성녀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정결하고 신심이 깊은 젊은 미망인 이네스 데 토레몰리노스의 몸에서 그 방법을 찾아냈다. 그녀의 두 다리 사이에서 여자의 사랑과 쾌락을 지배하는 작은 기관을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해부학자의 발견은 악마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가톨릭 신앙에 심각한 혼란을 가져올 수 있을 만한 대사건이었다. 결국 마테오 콜롬보는 이단죄, 위증죄, 신성모독죄, 미신 숭배죄, 악마 숭배죄로 종교재판에 회부된다.
『해부학자』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마테오 콜롬보의 발견과 그것을 기록한 책 『해부학에 관해』에 대한 교회의 격렬한 반응과 종교재판정에서 행한 마테오의 변론이다. 이 변론에서 안다아시는 르네상스 시대를 꿰뚫는 방대한 지식과 내공을 과감하게 선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체에 대한 인식과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음경에 대한 언급과 더불어 다양한 과학적 지식이 펼쳐지고, 여자의 육체에 대한 해부학적 설명이 형이상학적인 교리와 연결된다. 또한 마테오 콜롬보를 내세워 중세의 서슬 퍼런 종교 권력에 도전함으로써 가톨릭교회의 폐쇄적인 도덕관념과 비합리성, 인간의 무지를 조롱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