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를 잇는 아르헨티나 최고의 작가 리카르도 피글리아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아르헨티나 작가 리카르도 피글리아는 라틴아메리카에 불어온 거대한 역사적 변환 가운데서 작품 활동을 전개했다. 페론주의자였던 아버지로 인해 페론주의가 아르헨티나 사회에 남긴 깊은 상흔을 목격하며 성장했고,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1960년대에는 쿠바 혁명으로 라틴아메리카 전체가 변혁의 소용돌이로 휘말려 들어가던 때였다. 또한 1970~80년대에는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군사 정권의 독재 아래 신음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서 피글리아는 문학이 사회적 투쟁에 개입해야 한다는 동시대 작가들과는 달리, 문학의 자율성을 옹호하며 문학을 더 근원적으로 사유하고자 했다. 즉 문학을 통해 정치를 이야기하기보다는 문학 자체의 잠재력을 극대화시켜 광기의 시대에서 문학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과 나아갈 길을 모색했던 것이다.
피글리아 작품의 대부분은 아르헨티나와 유럽의 다양한 텍스트를 다른 각도에서 읽고 사용함으로써 전혀 다른 의미와 새로운 문학 형식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1975년 출간된 『가명』은 아르헨티나 소설가 로베르토 아를트의 미간행 원고를 둘러싼 문제를 풀어가면서 아를트 문학의 핵심 주제인 돈과 허구의 문제를 드러낸다. 아르헨티나 최대의 문학상인 플라네타상 수상작인 『타버린 돈』(1997)은 그리스 비극의 현대적 의미를 재발견함으로써, 신탁의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밝혀내는 작품이다.
이러한 문학 관점과 경향으로 리카르도 피글리아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충실한 계승자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보르헤스 이후로 한동안 잠잠하던 라틴아메리카 문학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새로운 대표 작가로 등극했다.
폭력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
『인공호흡』은 1977년에서 1979년 사이에 쓰여 198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간되었다. 이 시기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세력이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비도덕적인 인권 탄압 사건인 ‘추악한 전쟁’을 자행하던 때였다. 군사정권은 ‘좌익 게릴라 소탕’이라는 명분 아래 수만 명의 사람들을 소리 소문 없이 납치, 고문, 암살했으며, 정치 세력 탄압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내면에 숨은 저항의식까지 씻어버린다는 의도로 시민들의 정신적 영역까지 침범했다. 이에 따른 문화 말살 정책으로 각종 검열과 검문이 강화되어, 많은 지식인과 작가들은 해외 망명의 길을 택하거나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살벌한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내에 남아 있던 작가들은 목숨을 유지하면서 군부 독재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는데, 기존의 문학 형식과 언어를 해체하고, 과학소설·탐정소설·메타픽션 등 여러 장르를 차용하는 등 다양한 서술전략을 통해 작품 활동을 벌여나갔다. 이 시기에 발표된 『인공호흡』의 복잡하고 파편화된 구조 역시 군부의 혹독한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는 것이 당시 아르헨티나 비평계의 주류적 견해였다. 이 소설은 아르헨티나 작가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훌륭한 10대 소설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역사의 신음, 혹은 패배자들의 목소리
『인공호흡』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제1부는 주인공 에밀리오 렌시(이 사람은 피글리아의 대부분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로, 작가의 ‘알터 에고(alter ego)’의 역할을 한다)가 외삼촌인 마르셀로 마기의 삶에 얽힌 비밀을 소재로 한 첫 소설 『현실의 지루함』(1976)을 출간한 후, 렌시와 마기 사이에 이루어진 서신 교환으로 시작된다. 당시 변방인 콩코르디아에서 은거하던 마기는 19세기의 애국자인 엔리케 오소리오의 모순적인 삶을 재구성함으로써 역사적 진실을 밝혀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엔리케 오소리오는 19세기 아르헨티나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애국자였지만, 역사적 운명 탓에 ‘배신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던 인물이다. 마기는 오소리오의 삶에 “시대의 모든 역사적 진실이 압축”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불행과 오욕으로 점철된 그의 삶이 무엇을 드러내주는지” 포착하기 위해 그의 전기를 쓰고자 한다. 즉 그에게서 시대의 폭력에 저항하다 파멸을 맞은 자유 지식인의 운명을 보고, 그가 남긴 수수께끼 같은 족적을 풀어나감으로써 아르헨티나 역사를 재조명하려는 것이다.
1년 가까이 렌시와 편지를 교환하며 렌시에게 ‘역사적 시선’을 가질 것을 당부하던 마기는 자신의 장인이자 엔리케 오소리오의 손자인 루시아노 오소리오를 만나보라고 렌시에게 부탁한다. 상원의원이었던 루시아노 오소리오 역시 아르헨티나 역사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독립 혁명 기념식장에서 연설을 하던 중 괴한에게 저격을 당해 척추를 다치는 바람에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다. 마기에게 엔리케 오소리오의 원고 등 그가 남긴 족적을 전해주며 역사의 비밀을 밝히라고 한 사람이 바로 루시아노 오소리오이다. 작가는 전신마비 상태로 독방에 갇혀 환각 증세를 보이는 루시아노를 통해 폭력으로 사지가 절단된 아르헨티나의 현재를 암시하면서, 그의 환각적인 독백을 통해 ‘역사적 시선’이 어떤 것인지 드러낸다.
뒤이어 마기가 가지고 있는 엔리케 오소리오의 일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독재자인 로사스의 개인 비서로서 일하면서 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비밀 조직에 가담해 활동하다가 발각되어 망명길에 올랐던 엔리케는 뉴욕에 정착하여 ‘유토피아’에 관한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한다. 그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미지의 공간이 아니다. 그저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아득한 미래의 어느 날, 즉 1979년(이 시기는 렌시와 마기가 편지를 교환하는 시점과 일치한다)의 아르헨티나와 만나는 것이 올바른 유토피아적인 관점이라고 말한다. 그가 미래에 집착하는 것은 과거를 부정당하고 현재의 모든 가능성이 차단된 상황에서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유토피아 소설을 통해 그는 미래로 자신의 열망을 보내 미래를 재구성하려고 한다.
계속해서 신분을 알 수 없는 미래 시대의 사람들이 주고받은, 맥락이 닿지 않는 편지들이 모자이크 방식으로 이어진다. 가슴에 송신장치가 박혀 있어 계속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광경을 본다고 주장하는 여인의 편지, 오빠의 박사 학위 취득을 축하하는 여학생의 편지, 미사 도중에 강도를 당한 남자의 하소연, 엔리케 오소리오가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등이 나열된다. 여기에는 상원의원에게 조카가 찾아갈 거라고 알리는 마르셀로의 편지와 외삼촌에게 곧 찾아갈 것을 약속하는 렌시의 편지도 포함된다. 그러나 여기에 검열관으로 추정되는 아로세나라는 인물이 개입해 편지에 숨겨진 비밀 메시지를 판독해내려고 노력한다. 그의 등장은 세대를 거듭하도록 시대의 폭력(독재 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아르헨티나의 현실을 보여준다.
광기의 시대, 폭력의 사회를 향한 인공호흡
제1부를 통해 ‘역사적 시선’을 제시했다면, 작가는 제2부에서 ‘문학적 시선’으로 초점을 이동하여 현실과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는 문학의 잠재력을 이야기한다. 2부는 렌시가 마기를 만나기 위해 콩코르디아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외삼촌은 ‘부재’ 상태이며,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폴란드 망명자인 타르뎁스키가 마기를 대신하여 렌시를 맞는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아르헨티나 문학 전통과 유럽주의(유럽의 모델을 따라 아르헨티나 사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에 관해 긴 대화를 나눈다. 아르헨티나 작가 도밍고 사르미엔토의 『파쿤도』에서부터 시작되어 1880년대 ‘정통 유럽의 관점’을 표방하며 아르헨티나 문화계를 쥐락펴락했던 폴 그루사크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출발부터 잘못된 유럽주의가 아르헨티나 문학을 심각한 병폐에 빠뜨렸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올 것이라고 했던 마기가 도착하지 않는 가운데, 렌시와 타르뎁스키는 밤늦도록 대화를 나누는데, 타르뎁스키는 자신이 아르헨티나로 망명하는 계기가 되었던 우연한 발견, 즉 아돌프 히틀러와 카프카의 (가상적) 만남에 대해 이야기한다. 타르뎁스키는 케임브리지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총애를 받는 전도유망한 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도서관에서 사서의 착오로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받게 되었고 그 책의 주석을 통해 무명 화가이자 병역기피자였던 히틀러가 프라하에 숨어 있을 당시 아르코스 카페에 자주 들렀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 카페가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에도 언급된 것을 떠올린 타르뎁스키는 두 사람이 1910년 1월 프라하에서 조우했음을 알게 된다. 카프카는 당시 가진 것이라고는 ‘말과 계획’밖에 없던 히틀러에게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 하인들, 노예들의 절대적 주인, 즉 총통으로 군림하는 모습을 희미하게 엿볼 수 있었다고 일기에 고백했다.
타르뎁스키는 카프카의 『소송』에서 그려지는 공포의 세계가 아르코스 카페에서 만난 무명 화가 히틀러가 장차 하고자 했던 바를 그보다 앞서 예측한 것이라고 말하며, 카프카의 『소송』과 히틀러의 나치즘, 그리고 폭력에 신음하는 아르헨티나의 상황이 하나의 선 위에 놓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이는 카프카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던진 질문이기도 하고, 상원의원 루시아노 오소리오가 렌시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기도 하고, ‘추악한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아르헨티나인들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말이기도 하다. 작가 리카르도 피글리아 역시 작품을 통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렌시가 기다리는 외삼촌 마르셀로 마기는 결국 돌아오지 않은 채 ‘실종’되고, 마기가 하고자 했던 엔리케 오소리오에 대한 연구는 렌시의 몫으로 남겨진다. 엔리케 오소리오, 루시아노 오소리오, 마르셀로 마기는 ‘침묵’의 세계로 들어가는 한편,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기’, 즉 역사의 재구성을 통해 전신불수의 상태인 아르헨티나에 생명을 부여하는 ‘인공호흡’은 렌시에 의해 계속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