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학자가 30년간 연구한 차별과 차별받는 이들의 감정
우리의 감정은 거대하면서도 치밀한 그 차가운 구조와 맞물려 있다
구조와 감정은 하나다
근래 몇 년 사이 젊은 세대에서는 ‘기분부전증’이나 자신의 ‘예민한’ 성격을 언급하며 대인관계와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일이 증가했다. 이들이 느끼는 좌절과 무기력은 대개 차별하는 사회 구조에서 비롯되지만, 그것과의 정확한 연결 고리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인간이 진보시킨 사회에서 배제된 느낌을 받는 것은 불평등에 그 원인이 있다. 그러나 개인들은 끊임없이 재능을 갈고닦아 돌파구를 마련하려 한다.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은 ‘구조’와 ‘감정’을 한 쌍으로 삼는다. 불평등한 구조가 가령 자기혐오나 죽고 싶다는 감정을 불러일으켰으니, 구조를 파헤치며 감정을 살피자고 제안한다. 사회학에서는 감정에도 ‘규칙’이 있다고 본다. 어떤 감정 규칙에 따르면 직원이 고용주나 회사에 화를 내고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다. 다른 감정 규칙에 따르면, 그렇게 할 수 없다. 저자는 우리가 정당한 감정을 느낄 권리를 획득할 때까지 감정 규칙을 바꿔보자고 제안한다. 이를 위해 이 책은 차별을 당연시하며 영속시키는 한국사회의 구조를 살펴보고, 차별받는 사람의 감정 속으로 들어간다.
사실 많은 사람은 자기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데까지 나가지도 못한다. 개인의 감정을 지배하는 환경은 거대하고 치밀해 분석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손쉽게 부정적 감정의 원인을 자신에게 귀착시켜 현재 상태에 만족하거나, 체념하거나, 혹은 나보다 못한 사람을 혐오하는 방식으로 출로를 마련하는 이들이 꽤 있다. 저자는 사회의 거시 구조 자체가 인간의 정서적 역량의 산물이므로, 감정을 통해 차별을 생산/재생산하는 거시 구조의 전면적인 변화를 꾀해보자고 한다.
노동자, 빈부격차 문제를 30여 년간 폭넓게 연구한 저자는 현장에서 노사 간 분쟁과 타결에 이론적·실천적 개입을 해왔을 뿐 아니라, 20년 전 『유리천장 깨뜨리기』를 집필하며 여성 문제에도 일찍이 주목했고, 현장에서 개인들의 구체적인 목소리를 담는 글을 써왔다. 그동안 차별에 대한 학술적 성과는 누적돼왔지만, 차별받은 사람들의 감정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는 부족했다. 이에 따라 저자는 유급 노동자와 무급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단시간 노동자와 장시간 노동자, 대학생과 청소노동자, 유리천장에 거의 다가간 여성과 저임금에 머무는 여성, 직장 여성과 그 여성의 자녀를 돌보는 나이 든 돌보미 여성, 자신의 외모 때문에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 한도를 2000만 원까지 높여둔 신용카드 두 장으로 미래를 대비하는 청년, 자신을 쓸모없는 노인이라 여겨 자살을 고려하는 나이 든 사람의 마음을 다룬다. 그리고 거기에 연루된 구조를 명쾌하게 분석해낸다.
매 순간 세밀하게 조율되는 이들의 감정은 사회 구조만큼이나 깊고 넓다. 구조에 꼼짝없이 붙들린 감정을 직면하고 그것의 찌꺼기들을 하나씩 걷어내야 하는 것은 구조 속에 있는 우리 자신이다. 그 구조의 은폐를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우리는 더 많은 올바른 세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무너지는 마음과 사회적 효율
사회학 분야에서 마이클 해먼드와 앨리 혹실드는 일찍이 감정의 중요성에 주목해왔다. 해먼드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적 자원은 한정돼 있어 정서적으로 연결하는 대상을 계속 확장하면 우리 몸이 거부한다고 한다. 따라서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관계가 많아지고, 불평등한 관계의 취약한 고리인 성별과 연령 등에 따른 차별이 나타날 가능성도 커진다. 여기에 한국의 상황을 대입해보자. 좁은 땅덩어리에서 촘촘한 관계망을 가진 한국인 사이에서는 미세한 차이만 있어도 차별과 불평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혹실드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나 타인에 의해 ‘관리’될 수 있는 것이라고 봤다. 우리는 늘 ‘감정 작업emotion work’을 하는데, 이는 불쾌하고 힘든 감정을 억누르는 것뿐 아니라 느낌 자체를 만들어내고 고양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감정 작업은 특히 개인의 감정이 사회적 상황이 요구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을 때 더 많이 일어난다.
저자는 해먼드나 혹실드의 연구와 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개개인이 겪는 차별을 서사화한다. ‘체념’ ‘적응’ ‘혐오’가 이들의 주요 감정이다. 체념은 현재 가장 첨예한 이슈인 ‘능력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시험 서열주의로 바꿔 부를 수 있는 능력주의는 언뜻 효율적일 것 같지만, 저자는 “극심한 낭비를 초래하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이를 반대한다. 더욱이 능력 있는 이들은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면 생산적인 노력을 하지 않기로 결심할 수 있는데, 요즘 아예 일자리를 갖지 않기로 선택한 청년 비율의 증가가 이를 보여준다.
저자는 사회 전체적으로 교육과 시험에 들이는 엄청난 자원의 낭비를 하지 않고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빠져나와 다 같이 사교육을 자제한다면 서열 맨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부모의 노후 자금과 자녀의 행복을 소모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고정관념과 달리, 이 관점에서는 평등이 불평등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사회 전체의 효율은 다른 사안에서도 핵심 잣대가 될 수 있다. 저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효율’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둘러싸고 대립되는 두 의견이 모두 ‘공정’을 이유로 내세울 때 저자는 전체의 효율과 사회의 가치에 비춰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인천공항에서 수백 시간의 교육을 이수하고 다년간의 경력을 보유한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되는 것은 새 인력 충원에 드는 비용보다 더 효율적일 수 있고, 사회 전체적으로 불필요한 경쟁 완화를 원하고 있다면 방향성도 올바른 것이라 할 수 있다(물론 동시에 공개 채용 원칙을 어기게 된 것에 대한 양해와 대안은 모색되어야 한다).
두 가지 권리가 부딪치는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2022년 여름 연세대 학생들은 청소·경비노동자의 학내 집회를 학습권 침해 사유로 형사소송에 이어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대법원은 노동권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노동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는데, 저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간 시야를 제시한다. 즉 생애 기간 전체로 확대해서 보면, 학습권은 대학 재학 때 한정해서 학생의 미래를 보호해주지만, 노동권은 이후 전 생애에 걸쳐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다. 따라서 이 사안에 관한 한 우리 대부분은 학생의 권리보다는 노동자의 권리를 우선해서 볼 여지가 있다.
이 책은 찬반을 낳는 현재 이슈들을 단순히 이념적 차원에서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실용적이고도 현실적인 차원에서 분석하면서 우리가 흔히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대안(주 4일제, 기본소득 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이 강점이다.
자학과 죽음으로 연결되는 차별 서사
이 책엔 사회학자로서 필드워크를 수행한 저자의 오랜 연구들이 담겨 있는데, 거기서 낮은 지위에 머물며 차별당하는 이들의 마음 풍경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한 예로 팬데믹 기간에 배달 일을 했던 스물한 살의 민석태씨(가명)를 보자. 임대아파트에 네 가족이 살고 있는 그는 기본소득에 반대하고, 국가의 개입도 불신하며, 정치에도 관심이 없다. 저자는 그와 20대 대선 직전에 인터뷰를 했는데, 그는 윤석열이 누군지 모르고, 이재명은 담뱃값을 올린다고 해서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는 정당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한나라당’을 찍겠다고 했는데, 그건 ‘이명박 선생님’을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저자가 민석태씨와의 심층 면접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파악한 특징은 진술의 비일관성이었다. 그는 수혜적 복지나 기본소득에 모두 반대하지만, 자신이 받았던 청년수당에 대해서는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청년수당으로 휴대폰비 내고, 그걸로 밥 먹고, 그러니까 너무 행복한 거예요. 다시 하고 싶어요.” 즉 정책 지지 발언과 본인의 생활에서의 경험 및 감정은 일치하지 않았다.
60대 여성 이영신씨(가명)와 한 인터뷰도 살펴보자. 그녀는 고졸이며, 가정주부였다가 IMF 이후 형편이 어려워져 식당과 마트 일을 거쳐 지금은 아이돌보미를 7년째 하고 있다. 하루 12시간 일하도록 돼 있지만, 아기 엄마의 퇴근이 늦어지면 자연스레 더 일하게 된다. 그에 따른 추가 수당은 주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힘들 줄 몰랐지. 힘들어요. 눈이 빙빙 돌고. 차라리 밖에서, 마트 같은 데서 나이 먹은 사람도 할 수 있는 걸 누구 배경 있는 사람 도움으로 들어갔으면 하는데 그게 안 되네. 긴장해서 월화수목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토요일에 집에서 쉬면 온몸이 다 아프지.”
나이 듦이 쓸모없음으로 인식되는 우리 사회에서 그녀는 최저임금 노동자이자 고령으로 소수자 지위에 있다. 하지만 저자가 수행한 연구의 조사 대상자들은 최저임금 위반이나 일터의 부당한 처우를 모두 불가피한 것으로 수용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가령 “최저임금보다 낮게 받지만 내가 요구할 수는 없고” 고용주와는 법보다는 인간적으로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저자는 낮은 임금과 나쁜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스스로 이런 조건이 정당치 못하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곧장 자신의 말을 뒤집어 의문을 표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인식과 현실 사이에서 선후관계를 명확하게 그을 수 없다는 것은 저자가 수행한 수도권 내 서비스업 종사자 90명과의 심층 면접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저자는 저임금 서비스 노동자의 노동 실태와 노동권에 대한 인식을 탐구하기 위해 연구를 수행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노동자들은 문제 제기를 했을 때의 불이익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결코 공정하지 못했던 구제 절차와 기관에 대한 불신에 더해, “구조적이며 상시적인 제약 조건 아래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적응 전략을 발전시켜나간다. 불안정 노동자는 지배적 사고로부터 벗어날 경우 위험 비용이 다른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크다. 따라서 좋은 인간관계의 중요성, 근면한 노동의 가치와 보람, 직장에 대한 충성심, 투쟁적인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반감 등을 내면화해 현실의 어려움을 묻어두고자 할 수 있다”.
즉 아주 취약한 위치에 놓이면 지배적인 사고로부터 구조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차별을 온전히 인지하는 것이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첫 단계이며, 저자는 이를 위해 세밀한 감정들을 들여다보며 그들에게 숨겨진 구조를 드러내 보인다. 그 가운데 주요 사회학적 이론과 담론뿐 아니라 문학작품들도 적실하게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