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되고 외로운 삶들의 기록자, 로즈 트러메인의 대표작
가족을 떠나 낯선 땅에서 홀로 서야 하는 ‘레브’의 여정
“마음속에 슬픔이 있어요. 웃기도 하고, 키스도 하고,
그러다가 슬픔이 불쑥 찾아와요.”
“알지. 슬픔이 그렇다는 걸.”
“어쩌면 영원히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그 슬픔에서 놓여날 수 있을까요?”
무분별한 벌목으로 더는 자를 나무가 없어진 마을. 제재소에서 일하던 레브는 실직자가 되어 방황하다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 런던으로 떠난다. 고향에 두고 온 노모와 어린 딸, 병으로 죽은 아내를 그리며 마음속에는 늘 뭉근한 슬픔이 고여 있다. 마침내 어느 레스토랑의 설거지 담당이 된 레브. 착실히 돈을 모아 가족에게 돌아가려는 굳은 결심도 매일이 낯선 타지에서는 매번 길을 잃고 마는데…… 그럼에도 소중한 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려는 레브는 과연 꿈꾸던 행복을 만날 수 있을까.
뉴요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을 이 소설은 한 나라에 마음을 두고 다른 나라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 수백만 명의 삶을 탐구한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거칠고 생기 없는 상황에서 본질적인 선함을 발휘하는 캐릭터를 정교하게 만들어내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소외된 이들의 삶에서 소중하고 진실된 순간을 포착하는 작가, 로즈 트러메인
로즈 트러메인은 1976년 장편소설 『새들러의 생일Sadler’s Birthday』로 데뷔한 이래 오십 년 가까이 왕성한 창작활동을 해온 영국의 중견 작가다. 이스트앵글리아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문예창작을 가르쳤고, 2013년 동 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2020년에는 글쓰기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 훈장을 수훈했다. 국내에는 또다른 대표작 『구스타프 소나타』로 알려진 작가다.
로즈 트러메인은 ‘절망과 외로움의 기록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소외된 이들의 삶을 섬세하게 포착해 따뜻하게 그려내는 작가적 재능을 발휘하며 자신만의 확고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스무 종 넘는 작품을 발표하며 부커상, 제임스 테이트 블랙 메모리얼 상, 페미나상, 휫브레드상, 오렌지상 등의 후보자 및 수상자로 호명되었다. 2008년 『집으로 가는 길』로 매년 우수한 영국 여성작가에게 주어지는 오렌지상을 수상했다.
더이상 자를 나무가 없어 문을 닫은 제재소와 쇠락해가는 마을,
상실과 변화라는 물결 앞에 내던져진 인물들의 외로운 여정
동유럽의 한 작은 마을, 주인공 ‘레브’는 자신이 일하던 제재소가 문을 닫고 한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괴로워하다 대도시 런던으로 떠난다. 여전히 마을에 남아 방법을 찾아보려는 이들과 달리 새 도시에 가서 빨리 돈을 벌어 안정적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고자 한다. 다만 고향에 두고 온 노모와 어린 딸,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며 그는 늘 마음속에 뭉근한 슬픔을 품고 있다. 그러다 마침내 한 레스토랑의 설거지 담당이 된 레브는 타고난 성실함과 눈썰미로 셰프에게 인정받으며 자신도 이 타국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고, 한편으론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며 알지 못했던 행복과 함께 쓰라린 슬픔과 혼란도 가슴에 새기게 된다.
그 세상은, 일자리를 찾을 수만 있다면 그가 등골이 휘도록 일할 곳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구석지고 그늘진 곳을 찾아 앉아 담배를 피우며,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자신의 가슴은 고국에 두고 왔다는 것을 입증해 보일 것이다. (12p)
십 파운드짜리 지폐를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을 보니, 오랜 시간 설거지물에 담근 바람에 익히지 않은 순무처럼 살갗이 벌겋게 여기저기 벗겨져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게 사람들에게 비치는 내 모습이다. 지성도 없고 목소리도 없는 순무 같은 모습. (191p)
고된 레스토랑 일을 묵묵히 해나가며 제법 현지의 생활에 적응해가던 어느 날, 레브는 가족과 친구가 살고 있는 고향 마을이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평생 세상에 저항 한번 해본 적 없이 고향에 뿌리를 박고 살아온 노모, 아직 세상의 좋은 경험을 많이 해야 하는 어린 딸, 갈수록 어려워지는 생업과 마을 사정으로 깊은 우울감에 빠진 친구…… 예정된 비극 속에 소중한 이들을 두고 레브는 자기 혼자 이 화려한 도시에서 무얼 쫓고 있는 건지 깊은 혼란에 빠진다. 과연 레브는 자신이 꿈꾸던 일을 이뤄낼 수 있을까.
한 인간의 내면에 고여 결코 녹아 없어지지 않을 근원적 슬픔,
그럼에도 끊임없이 우리를 호출하고 위로하는 관계와 세계
『집으로 가는 길』은 무언가를 꿈꾸고 시도할 수 없는 자신의 고향을 떠나 화려한 대도시 런던에서 홀로 서고자 분투하는 주인공 레브의 여정을 현실적이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는 한편, 인물들 저마다가 내면에 품고 있는 근원적인 슬픔을 이야기하며 인간의 삶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고독과 우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그 필연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 법, 비록 그 어둠이 길고 길지라도 결국 끝이 있다고 믿을 수 힘이란 내 주변의 작은 세계와 소중한 관계 안에서 찾을 수 있음을 레브의 외롭지만 착실한 여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을 이 소설은 한 나라에 마음을 두고 다른 나라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 수백만 명의 삶을 탐구한다”라는 <뉴요커>의 평처럼, 이 소설은 ‘이방인으로서 홀로 서기’라는 경험의 테두리에 속했거나 혹은 그 시기를 살아내고 있는 이들에게 용기와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