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독보적 유머리스트 이반지하 신작 에세이
차별과 억압을 뚫고 나온 천재적 광대
퀴어 아티스트 이반지하의 위험하고 놀라운 농담
사람들은 이반지하를 보고 웃는다.
이반지하는 사람들을 보고 더 크게 웃는다.
2023년 5월 17일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앞두고 독보적 퀴어 아티스트이자 유머리스트인 이반지하의 신작 에세이가 출간된다. 이반지하의 작가명은 퀴어의 한국말 ‘이반’과 작가의 위태로운 생활공간이자 작업공간을 상징하는 ‘반지하’를 결합한 이름이다. 첫 책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에서 제목에 ‘퀴어’를 내걸고, 퀴어이자 생존자로서의 자신의 삶의 이력을 써내려갔던 이반지하는 데뷔작으로 ‘알라딘 올해의 책’, 대한출판문화협회 ‘올해의 청소년교양도서’ 등에 잇달아 꼽히며, 현대미술가, 뮤지션, 애니메이션 감독에 이어 에세이스트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깊게 각인시켰다.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는 이반지하의 두번째 에세이이자 세상을 향한 농담집이다. 성적 지향이라 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부분을 두고 ‘차별씩이나’ 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반지하가 옆구리 쿡 찌르며 건네는 웃음보따리이자, 서늘한 질문이다. 이토록 따뜻하고 상냥한 혐오의 세계에서 종횡무진 그리고 쓰고 농담하고 노래하는 광대, 이반지하. 2004년부터 퀴어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이반지하가 메인스트림에 등장했을 때 놀란 헤테로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재밌는 걸 그동안 퀴어들만 보고 있었단 말이에요?”
사람들은 이반지하를 보고 웃는다. 이반지하는 사람들을 보고 더 크게 웃는다.
이것은 독보적 유머리스트 이반지하가 열어젖힌 새로운 유머의 세계이다.
메인스트림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 한 해였다. 소수자성이 메인스트림에서 유통되고 소화된다는 것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그러니까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버텨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번듯함, 경력, 이름값을 얻는다는 것, 그것이 허락하는 달콤함, 하지만 여전히 너무 같거나 달라서는 안 되는 위태로운 생존 방식, 따뜻하고 상냥한 혐오에 계속해서 찔리게 되는 나의 맨살 같은 것.
앞으로도 계속 웃기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삶의 근본이고 라이프스타일이며 젠더이고 섹슈얼리티이자 커뮤니티이다.
_에필로그에서
“인생은 개망신과 수치심의 연속이다”
이반지하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제목에서부터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라는 오직 이반지하만이 당당하게 간판으로 내걸 수 있을 듯한 파격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반지하는 책장을 넘기면, 이내 서두에서부터 자신이 웃긴 이유에 대한 힌트를 짐짓 알려준다.
그가 웃긴 이유는 사람들은 저마다 그의 삶과 예술이 너무 웃기다고 박수치지만, 아무도 이반지하처럼 살고 말하고 싶어하진 않기 때문이다. 아무도 닮고 싶어하거나 되고 싶어하지는 않는 웃기는 삶. 멀리서 호기심으로 힐끗 바라보고 웃고 응원하다가 슬쩍 지나치고 재빨리 묻어두는 삶. 그의 퀴어 친구들은 늙기도 전에 ‘흔하게’ 죽어가고, 그는 장례식장에 앉아 수시로 찾아오는 ‘퀴어 죽음’을 바라본다.
“아 제발 쫌 죽지 말고 늙기만 하세요!!!”
라고 외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오늘만은 나보다 한 살이라도 많은 이들을 모조리 찾아내 되도 않는 애교와 어리광을 권력처럼 부려대고 싶어진다. 당신들의 죽음은 영원히 이르다며, 해준 것도 없는 주제 특유의 뻔뻔한 어깃장을 놓고 싶어진다.
그리고 또다른 건넛상에서 울음소리로 성별을 가늠할 수 없는, 피자가 살려낸 이들을 본다. 피자가 있어 피자의 장례에 올 만큼 늙어낸 사람들을 본다.
촘촘히 벽에 붙어가는 검은 리본의 행렬, 그리고 거기에 적힌 정의로운 이름들을 보며 나와 같은 상에서 밥을 먹는 이들과 절대로 위대해지지 말자는 다짐을 나누고 난 후, 나는 이 모든 사람들 틈에서 언제쯤 죽어도 될지 눈치 게임을 시작해본다. (「피자」, 46~47쪽)
1부 ‘이반지하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남들과는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이반지하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너무 이른 나이에 죽어가는 친구들, 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시청에서, 광장에서 ‘여기 우리가 있다! 차별하지 말고 혐오하지 말라’고 외쳐왔지만, 자꾸만 과거로 역행하는 이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소수자로서, 예술가로서 끊임없이 세상과의 접점을 찾아다녔지만, 세상과 이반지하의 시간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는 일생에서 몇 번 정도 세상과 닿아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한다. 횟수가 아니라 면적이라면 어느 만큼일까 생각도 해본다. 다른 삶들을 끊임없이 마주치고 있을지는 몰라도 내가, 나의 예술이 그들과 정말로 만나고 있나 생각해본다. 접촉면은 사실 기대보다 넓지 않을 수도, 양쪽 다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아주 잠깐일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삶의 시간 대부분을, 연결되지 못한 채 열렬히 닿고 싶어하는 그 애매하고 서투른, 벤자민 버튼식의 부적절한 상태로 보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반지하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30쪽)
못다 뱉은 말, 퀴어! 꿈엔들 잊힐 리야, 성소수!
2부 「이반지하의 섭섭 세상」은 자꾸만 퀴어들에게 섭섭하게 구는 세상을 향해 이반지하가 날리는 돌직구이다. 이중 「부치의 자궁」이라는 글은 어디서도 보기 힘든 레즈비언, 그중에서도 남자 역할을 하는 부치들이 달고 태어난 자궁의 안녕과 건강을 묻는 이반지하의 탐사르포다. 살면서 딱히 ‘아들 낳는’ 자궁을 쓸 일이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자궁이란 것을 달고 태어난 레즈비언들은 자신의 몸에 달린 자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전자궁절제술’을 받은 부치와 자신의 자궁과도 제법 친하게 지내는 부치 등 이반지하가 취재한 다종다양한 ‘퀴어와 몸’에 대한 이야기가 반전의 웃음과 함께 펼쳐진다.
또한 선거 정국이나 방송사들에서 퀴어를 언급하긴 해야 하지만, 대놓고 말하긴 ‘쫌 그럴 때’, 이성애 사회가 대응하는 방식을 놀려주는 유머도 호쾌하다.
‘성소수’ ‘퀴어’ ‘젠더’ 이런 사회적 합의가 안 된 애들 얘기를 대놓고 쓰기는 좀 그러셨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른 척 싹 들어내자니 또 좀 그렇고 정말 얼마나 고민이 많으셨을까. 제작진들은 어떻게든 ‘그 거시기’를 추상적으로 버무려줄 어휘를 찾아 헤매었을 것이다.
별종. 초겨울 기상이변 속 모기물림 같은 이 말이 방송 자막에 등장했을 때, 나는 위기에 내몰린 제작진들이 발휘해낸 번뜩이는 재치와 어휘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이성애 사회는 얼마나 기발해질 수 있는가. 역시 방송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하며 무릎이 절로 탁 쳐졌다.
맞네, 저런 말이 있었지.
나는 김빠진 탄식을 했다. ‘별종’, 정말로 잘 찾아낸 말이었다. 웬만한 젠더 부산물들을 퉁칠 수 있을 만한 제법 영리한 이성애적 돌파구로 보였다. 오늘날 매스미디어에서 심사숙고하여 내린 다양성에 대한 합의점은 ‘별종’까지인가보다 싶었다. 못다 뱉은 말, 퀴어. 꿈엔들 잊힐 리야, 성소수. 그래, 이 말을 하기가 많이 어려우셨겠다. (「섭섭 세상」, 155~156쪽)
어디에 부딪치든 딱 그만큼 탱탱하게 튕겨올라와
자꾸만 거슬리게 하는 작고 꽉 찬 싸구려 형광색 공,
나는 이반지하다!
3부 「이반지하의 바깥세상」은 이반지하가 뉴욕과 토론토의 전시 협업에 초청받아 출국했을 때 보고 겪은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레지던시 입주작가로 활동하며 현대미술가로서도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간 이반지하는 뉴욕과 토론토에서 다양한 퀴어 예술가들을 만나고 예술적인 자극을 받으며 바깥세상을 날아다닌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동양에서 온 퀴어 이방인’으로서 겪지 말아야 할 은근한 차별과 혐오의 순간들을 겪고 절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멈추지 않고 찌그러지지 않는다. ‘어디에 부딪치든 탱탱하게 튕겨올라와 자꾸만 거슬리게 하는 형광색 공’처럼 그는 다시 세상 속으로 날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