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 논객, 이한우 기자가 해박한 인문학적, 역사적 지식으로 21세기 新트렌드 팔로워십에 관한 새로운 제안을 내놓는다! 아첨과 아부, 생활방식과 생존방식의 교묘한 이중주! 우리에게 숙명처럼 내던져지는 적나라한 삶의 모습 자체인 아부, 인간 삶의 대표적인 표현 양식 가운데 하나인 ‘아부’를 철저히 해부한다. 이 책은 우리가 적어도 겉으로는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입에 올리기를 꺼려하는 하나의 인간 현상, 아부를 직시하려고 하는 시도다. 아부를 철저히 해부하여 팔로워십에 관한 새로운 제안을 내놓는다. 아부하라! 아부하라! 자신이 선택한 길이라면 자신 있게 아부하라! 대한민국은 이제 누가 뭐래도 ‘조직’에 바탕을 둔 사회다. 학교, 군대, 각급 단체, 회사 등 이런저런 조직을 거치지 않고 일생을 마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조직사회에는 반드시 권력관계가 있게 마련이다. 권력관계가 있으면 당연히 지배와 종속이 뒤따른다. 조직 구성원 전체가 리더가 될 수는 없다. 이 책에서는 조직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조직원에게 필요한 팔로워십에 관한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 그렇다고 ‘아부’에 관해 좋은 것만 밝히려는 것은 아니다. 인간 삶의 대표적인 표현 양식 가운데 하나인 ‘아부’에 대해 직시해보자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동기다. 우리는 흔히 지도자의 길, 즉 리더십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반면에 부하의 길, 팔로워십에 대한 고민은 등한시한다. 조직은 리더만의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고찰하고자 하는 ‘아부’는 조직의 존속을 위한 팔로워십의 또 다른 이름이다. 아부와 아첨에 대한 오해 - 아부(阿附)란 리더에게 삶을 의탁하는 것이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듯 사람도 의지할 곳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아부를 한자어에 충실하게 풀이하면 리더에게 삶을 의탁하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당부(黨附)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었다.말 그대로 당파를 형성하거나 기존의 당파에 자신을 의탁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는 아부라는 단어와 아첨이라는 단어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한다. 그렇다면 아부와 아첨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 아부와 아첨의 용례를 보면 “아부하는 것은 나쁜 짓이고 아부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는 결국 아부나 아첨은 인간관계의 핵심 중 하나인 권력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 책 제1장에서는 아부라는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살펴본다. 아부하는 사람, 아부 받는 사람, 아부하는 사람의 동료로 구성된 3가지 현상이 어떻게 아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평가를 일으키는지 알아본다. 그리고 , 소크라테스, 공자의 《논어》에 나타난 아부와 아첨에 대한 경계, 셰익스피어가 말하는 아부와 아첨의 정의,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속내를 비친 아부론,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를 통해 권력과 아부의 문제를 바라봄으로써 위선과 가식의 명제를 깨트리려는 시도를 한다. 도덕주의와의 결별 - 도덕주의란 아부 못지않은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하나의 경향이다 우리는 종종 무의식중에 자신은 옳고 선하며 자신과 맞서는 자는 그르고 악하다는 생각에 빠져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러한 도덕주의의 희생물이 다름 아닌 아부다. 도덕주의가 아부하고만 대립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도덕주의는 무엇인가? 도덕주의라는 말은 다소 긍정적이다. 도덕주의를 실천하며 일관되게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간디 같은 성인으로 불린다. 도덕주의는 중립적 의미를 지닌다. 칸트의 윤리학을 중립적 의미의 도덕주의라 부르기도 한다. 도덕주의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런 도덕주의자는 무엇보다 남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헛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제2장 도덕주의와의 결별에서는 ‘도덕과 윤리를 지향했던 현실주의자’ 공자를 언급하여 도덕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간과 사회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의 면모를 드러낸다. 도덕주의가 어떠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지, 퍼트리샤 브로진스키와 제임스 깁슨이라는 사회심리학자가 쓴 《위선과 착각》을 해부함으로써, 현실(철학에서는 실재)이라는 단어의 철학용어사전을 분석함으로써, 현재 사용되고 있는 현실과 현실적이라는 용어를 분석하고 예제를 분석하여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도덕주의적인 양분법을 낳고 있는 현실을 해부한다. “선하기만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신 아니면 위선자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을 통해 도덕주의가 갖는 위선과 병폐를 열거한다. 본능과 욕망으로서의 아부 - 욕망, 권력욕과 출세욕으로서의 아부는 경계가 필요하다 인간세계뿐만이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도 아부와 아첨은 권력관계와 밀접하다. 문제는 우리 인간들이 늘 본능에 대해서 이중적 태도를 취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생존본능으로서 아부와 아첨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아부는 존재방식, 아첨은 행동방식이다. 다시 말하면 아부는 전략, 아첨은 전술의 문제다. 어찌 보면 조직사회에서의 아부란 생존본능과 무관치 않다. 그렇다면 그릇된 아부 중 배신의 문제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우리는 배신의 문제를 통해 거꾸로 ‘아부’에 담겨 있는 신뢰의 문제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아부의 핵심요소 중 하나가 신뢰이기 때문이다. 아부는 생물학적, 사회적 생존을 위한 불가결한 요소다. 제3장 본능과 욕망으로서의 아부에서는 신분상승욕을 갖는 아부와 아첨이 어떻게 인간의 공통된 욕망으로 자리매김하는지 분석한다. 이 장에서는 아첨은 안 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아첨을 가장 잘하는 ‘직업군’의 하나로 믿고 있던 내시(환관)의 삶을 살펴보면서 그들이 어떻게 충신으로서, 일관된 아부를 행한 것인지 살펴본다. 또한 아부는 노예근성의 발로라는 비난에 대하여, 세파와 나이에 따른 아부와 아첨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도 논의해본다. 전통사회에서 아부의 문제 - 군주제 사회라고 해도 아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조선 건국 과정을 통해 관련 인물을 분석하여 이들과 얽혀있는 아부와 독립, 실리와 명분, 배신의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룬다. 아부에 능하지 못했던 황희 정승은 어떻게 탁월한 지도자와의 만남을 통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보전하게 되었는지도 확인한다. 세조 초 영의정까지 지낸 정인지, 이와 대비되는 인물인 신숙주가 어떻게 다른지 아부의 정도를 파악하고 두 인물과 대비를 이루는 인물군인 사육신을 살펴봄으로써 이들이 지녔던 도덕적 부채의식이 전통사회에서 생사의 문제를 낳은 아부라는 현상을 펼쳤는지 확인한다. 제4장에서는 조선이 건국되고 태조, 태종, 세종을 거쳐 세조대에 이르기까지 막강했던 절대왕권과 아부의 문제를 살펴보고 군자와 소인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한 사례를 제시한다. 군자와 소인의 차이는 무엇인지 《논어》를 다시 살펴보면서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고 있다. 성종 때의 군자 소인 논쟁이 어떻게 첨예하게 대립되었는지 그리고 군자, 소인 그리고 아첨과 아부의 문제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충신과 간신은 어떻게 아첨과 아부의 문제와 연결되는지 현석규, 유자광, 성종, 중종의 예를 통해 살펴본다. 설총의 에 나타난 아첨의 경계문구를 탐독하는 기회도 제공한다. 현대 한국사회와 아부 - “신분에서 계약으로” 현대사회에서 아부는 계약행위다 현대사회에서는 아부나 아첨은 해서도 안 되지만 할 필요도 없다고 사고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어려서부터 부모에 의해서긴 하지만 이런저런 형태의 아부가 자신의 삶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제 아부는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숙고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이기심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은 경멸의 대상이었다. 성리학적 도덕주의가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도 이기심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제5장에서는 이기심의 긍정을 통해 아부와 아첨, 자유, 그리고 개인의 책임 문제까지 고찰한다. 이방원이 거병을 했을 때 생사의 갈림길에서 아부와 아첨, 배신의 문제를 어떻게 대처했는지 현대 정치권에서의 부침(浮沈)과 줄서기의 해부를 통해 살펴본다. 그리고 체면사회 대한민국에서의 아부와 아첨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각종 속담과 외국인 교수의 흥미로운 주장을 통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분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