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언어 사이의 경계를 걷는 작가 다와다 요코
일본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독일로 떠났고, 독일어와 일본어로 작품을 쓰는 작가 다와다 요코. 그는 독일에 자리잡고 있지만 일 년 중 한 달은 일본에서, 한 달은 미국에서 보낸다. 주로 사용하는 두 언어, 독일어와 일본어를 모두 낯설게 두기 위해서다.
다와다 요코는 모국어로 유창하게 말하는 행위를 비겁함, 무능함으로 해석한다. 익숙한 언어에 종속된 채 성찰 과정 없이 물 흐르듯 쏟아져나오는 말은 결코 본질을 꿰뚫어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모국어 단어로 불러왔던 어떤 개념을 낯선 외국어 명칭으로 부를 때 우리는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연필을 연필이 아니라 독일어 단어 블라이슈티프트(Bleistift)라고 부를 때, 머릿속에서 블라이슈티프트라는 단어와 연필이라는 개념을 연결시키는 과정을 한번 더 거쳐야 한다. 그 순간 느끼는 이질감이 바로 다와다 요코의 문학을 이루는 요소다.
다와다 요코는 작품의 초점을 언어에 둔다. 언어는 인간의 사고와 그 사회의 규범까지도 제약한다. 모국어라는 보호막은 그 밖에 있는 다른 것들을 아예 생각하거나 느끼지도 못하게 차단해버리는 장벽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다와다는 30년 넘게 독일에 살고 있으면서도 독일어를 자신의 새로운 모국어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모국어인 일본어 역시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고 자연스럽게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사람들은 편하고 자연스러울 때는 문제를 느끼지 못하다, 낯선 것을 마주하고 나서야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것들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다와다 요코는 바로 이런 순간이 자기 문학의 시작점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다와다의 작품은 낯설게 느껴지고, 심지어 조금 불편할지도 모른다. 익숙함에 머무르는 한 경계에는 설 수 없기 때문이다. 낯설게 만든 언어로 언어와 언어 사이의 경계를 사유하는 것, 그것이 다와다 요코가 문학에서 추구하는 길이다.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새로운 여행
다와다 요코의 작품에는 열차가 자주 등장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 독일로 떠날 때, 다와다는 비행기가 아닌 열차를 선택했다. 비행기는 목적지에 최대한 빨리 도착하기 위한 교통수단이며 한번 올라타면 목적지를 바꿀 수도, 자리를 옮길 수도 없다. 반면 열차는 느긋하게 여행을 즐기며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여정을 변경할 수도 있으며 여행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는, 불확실한 교통수단이다.
『용의자의 야간열차』에서 ‘당신’은 야간열차를 타고 유럽과 아시아로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은 시기도 배경도 명확하지 않으며 여행자가 누구인지, 목적지가 어디인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그저 시간과 공간의 틀을 넘어 영원히 반복될 뿐이다.
이 소설은 기존의 관념을 뒤흔든다. ‘당신’은 갖고 있던 인식이 계속해서 어긋나는 경험을 한다. 지역 이름을 듣고 자동적으로 떠올린 이미지는 현지에서 매번 무참히 배반당한다.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며 추측한 이야기는 항상 빗나간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잘못된 이야기를 만들어 오해받기도 하고, 전혀 다른 사람의 정체성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이 같은 어긋남과 불확실함은 ‘당신’이라는 대명사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당신’이 등장하면서 독자는 ‘당신’과 ‘당신’을 관찰하는 또다른 화자를 인식하고, 이 흔치 않은 호칭 때문에 소설을 읽는 내내 주인공과 화자 사이의 거리를 느끼게 된다. ‘당신’과 화자의 관계는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
『용의자의 야간열차』는 다와다 요코가 기존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정체성을 넘어서려 시도한 작품이다. 고정관념의 틀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인식이 가져다주는 자유를 맛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낯선 사유가 불러오는 불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이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익숙한 공동체의 규범과 모국어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여행 그 자체와도 닮아 있다.
모든 놀라운 문학은 당신이 어떤 문화, 어떤 장소에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순간에 탄생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특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특별한 상황, 매우 문학적이고 시적인 상황에 처해 있을 뿐이죠. _다와다 요코
나라와 언어에 얽매이지 않는 세대의 문학
이주자 문학은 대부분 사회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은 환경과 상황 탓에 강제로 이주민이 되었고, 그들의 작품은 타향에서 느낀 문화적 괴리감, 차별과 소외감, 그 과정에서 겪은 폭력 등 아픈 경험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다와다 요코는 다른 방향을 향한다. 그는 태어난 일본을 스스로 떠나 독일에 자리잡았다. 모국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살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국적이 더는 큰 의미를 갖지 않게 되면서, 이주자들의 경험과 고민은 개인의 차원으로 넓어지고 있다. 문화와 문화, 언어와 언어가 충돌하고 몸에 익어 있던 사유가 깨져나가면서, 수많은 이주자들은 혼란 속에서 새로운 인식을 마주한다. 다와다의 작품이 이주자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지금은 모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사는 아티스트나 지식인이 무척 많은 시대입니다. 외국어를 혀에 올릴 때의 감촉은 이제는 ‘시대를 대표하는 감촉’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외국어를 말할 때면 구멍이 뚫리거나 꺾이거나 쪼개지거나 부서지거나 휘거나 하는 부분이 생깁니다만, 그런 부분에서야말로 우리가 정말로 알 가치가 있는 속사정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_다와다 요코
이 같은 다와다의 작품 세계는 이미 전 세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1987년 첫 책을 출간한 이래 독일에서 레싱 문학상, 샤미소 상, 괴테 메달 등을, 일본에서 아쿠타가와상, 이즈미 교카 상,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 이토 세이 상, 요미우리 문학상, 무라사키 시키부 상, 노마 분케이 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