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애도 나를 좋아했을까...?”
첫사랑의 기억을 어루만지는 몽글몽글 감성 에세이툰
“걔는 햇빛을 보면 재채기를 해.
그런 애를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니?”
“서로를 향해 팔을 길게 뻗으면
손바닥 한 뼘 정도가 모자란, 우리 사이의 거리는 그 정도였다.”
“여기를 단숨에 오르게 되면, 걔한테 말을 걸어봐야지.”
모든 게 서툴고 순수했던 그 시절의 우리들,
닿을 수 없어서 더 애틋했던 저마다의 마음속 풍경
지나간 시간과 추억이 밀려드는 계절 가을, 독자들을 단번에 한 시절로 데려다줄 그림 에세이 『소년, 소녀를 만나다』가 출간되었다. 2019년부터 그림작가 이영환의 인스타그램(@leeyounghwan)에 #소년소녀를만나다 #Boymeetsgirl 해시태그를 달고 업로드되던 만화들은 섬세한 감정 묘사로 눈길을 끌며 팔로워들의 댓글 러시를 이루었고, 마침내 책으로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음의 정체를 몰라 미열을 앓던 십대 시절의 에피소드를 담은 20편의 만화와 그때를 돌아본 작가의 글들은 누구나의 마음속에 있는 풋사랑을, 또 그애를 향했던 순도 100%의 빛나는 마음을 환기한다. 진심을 들킬까봐 부끄러워서, 무슨 말을 꺼낼지 몰라서 서툴기만 했던 기억 속의 날들이 햇살 아래, 빗속에 한 편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한 영화의 카피처럼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고 그 기억은 이 계절을 새롭게 쓰게 할 것이다.
“그 우산이 언제부터 신발장 안에 있었는지 너는 아니?”
“글쎄…?”
“누군가가 좋아지는 것도 그런 거 같아.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 _본문 중에서
소녀와 관련한 나의 기억에서 그날의 장면은 언제나 가장 먼 곳에 자리잡고 있다. (...) 그 장면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는 소년은 내가 이 그림들을 통해 담고자 했던 이미지이기도 했다. 담고 싶고 닮고 싶은 그 어떤 것. _「제일 먼 곳에 있는 아이」 에서
한 장 한 장 그림을 넘기면 밀려오는 첫사랑의 풋풋함
상상 속에서 그애에게 건넨 말들은
내 주변에 떠나지 않고 남아 있었다
20편의 만화는 인물도, 에피소드도 달라 전체적으로 옴니버스 형식을 띠지만 공통점이 있다. 인물들이 오가는 배경은 운동장과 골목, 가게 등 하나같이 등굣길 하굣길에 지나던 정감 있는 공간들로 독자들의 추억과도 포개진다는 점이다. 또 그곳에서 움직이는 소년들은 진지하지만 감정을 전하는 데 서투르며, 때론 허세를 부리거나 엉뚱한 면모를 보여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응답하라 1998>의 만옥이를 짝사랑하던 순정의 정봉이(안재홍 분)가 시간을 돌려 과거로 돌아간다면 책 속의 소년들과 닮지 않았을까. 작가가 일상적 공간에서 섬세한 눈으로 채집한, 뭉툭한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들은 독자들의 공감 버튼을 부르기에 충분하다.
언덕길에서의 재회 이후 한동안 그애 생각이 났다. 부러 의식하지 않아도 그애의 잔상과 기억이 난데없이 튀어나왔다가 슬쩍 사라지곤 했다. 특히 그 완만한 언덕을 오를 때 그랬다. 그 언덕길에서, 그애는 때론 교복을 입은 모습으로 때론 사복을 입은 모습으로 겹쳐지며 내 앞에 나타났다. 그때마다 난 그애를 다시 마주치면 어떻게 할지를 상상했다. 또 모르는 체할까, 손만 들어서 인사할까, 메롱을 한번 해볼까, 이럴까, 저럴까. 나는 그애와 더는 마주치는 일이 없었으면 싶었다. 그러면서도 늘 또 한번의 만남을 상상하곤 했다. _「친구를 마주치기 좋은 언덕」에서
『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서정을 만드는 또다른 장치는 이야기를 풍성하게 움직이게 하는 그림이다. 곁눈질하는 눈동자, 발그레해진 볼, 한쪽만 삐져나온 교복 남방 같은 외양의 디테일과 컷마다 달라지는 인물의 동세, 향수 가득한 풍경 컷들의 표현은 어떤가.
한 시절을 지그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우리가 통과한 순간들의 서정을 환기하고 그 시절에만이 품을 수 있던 순정한 마음을 헤아리게 할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풍광이나 한없이 편지를 썼다 지웠다 했던 시간 같은 것들을, 다시는 되돌릴 수도 가질 수도 없는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