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소개되는 신장위구르의 자연문학
지금껏 접해보지 못한 ‘달나라의 감각’
루쉰문학상과 마오둔문학상을 수상한 신장 작가
류량청의 데뷔작이자 대중과 평단을 놀라게 한 걸작
그의 등장은 예사롭지 않았다. 서른 중반인 1998년 『한 사람의 마을一個人的村莊』이라는 첫 산문집을 내고 수십만 부가 팔리며 큰 성공을 거뒀다. 『서유기』에서 현장법사와 손오공이 건너갔던 화염산이 있는 신장위구르 톈산 아래 마을의 시골 청년은 이 성공으로 시인이 되었고, 이어 소설가가 되었으며 걸작 장편들을 쏟아내며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다. 2023년엔 『본파』라는 소설로 마오둔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이름은 류량청劉亮程이다. 이 벽촌의 한 작가가 쏟아낸 문학적 에너지와 메시지가 무엇이었기에 이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가. 그 답은 그의 첫 작품이자 대표작인 『한 사람의 마을』에 전부 드러나 있다. 빽빽한 글자로 550쪽에 달하는 이 책은 산문으로 쓰였지만 사실 시에 가까우며 인간이 속수무책으로 그 안에 녹아 있는 근원적인 자연이 그 모습을 드러낸 세계다.
밤 11시에 해가 지는 마을, 황사량 이야기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은 몇 명 없고 내가 아는 사람도 몇 명 없다. 누가 죽고 누가 아직 살아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해마다 들려오는 벌레 울음소리에서 작은 벌레의 영원함이 느껴진다. 나는 어떤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수십 년을 견뎌내고 있다. 누런 흙을 마주한 채, 아무 소리도 없이.” _ 「벌레와 함께 자다」, 본문 중에서
류량청은 한 인터뷰에서 “20~30대의 가장 외로웠던 시기에 혼란 속에서 읽을 만한 책을 하나 썼습니다. 그때는 바람 소리도 들리고 꽃을 보고 웃을 수도 있었어요. 한 마을의 땅과 하늘 가운데 홀로 놓여 만물의 기운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고, 내가 말을 하면 만물이 듣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한 사람의 마을』은 류량청이라는 한 사람이 보고 듣고 쓴 그가 오래 살아온 마을 이야기인 셈이다. ‘황사량’이라 불리는 이 마을은 톈산산맥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밤 11시에 해가 지고, 해가 지고 나서도 한참은 더 빛이 남아 있어 어둠이 빛을 따라가다가 함께 서서히 저무는 그런 마을이다. 아주 넓은 밀밭이 펼쳐져 있고, 밀을 수확하러 간 사람들이 집이 너무 멀어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 움막을 짓고 수확한 밀을 다 먹고 돌아오는 가없는 평원의 땅이다. 바람이 한 번 불면 하늘 끝까지 솟구치고 사람을 구부리고 구부러진 나무를 곧추세운다. 풍파를 겪은 나무의 몸통을 보면 남풍이 어디를 구부렸는지 북풍이 어디를 밀어냈는지 대략 알 수 있다. 바람은 한 마을에서 오래오래 숙성된 공기, 한 마을의 사람들이 들이쉬고 내쉬며 특별한 냄새를 갖게 된 공기를 다른 머나먼 곳으로 통째로 실어 나른다.
농업기계학교를 다닌 그는 젊은 시절 동네의 고장난 농기계를 손봐주며 시를 읽고 끄적이다가 하릴 없이 삽을 들고 들판으로 나가 얕은 둔덕을 평평하게 만들고 바람에 기울어진 나무를 묶어주며 소일거리를 삼았다. 교외만 나가도 신기하고 며칠 시골에 있을라치면 좀이 쑤셔서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한 사람의 마을의 삶은 짐작도 감각도 불가능한 세계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대에나 있었을 법한 그런 생소한 감각들을 자기 주변의 자연현상과 마을 속의 각종 일들을 통해 글로 펼쳐 보인다.
먼저 가볼 곳은 저자의 유년 시절이다. 원래는 간쑤성 진타金塔현에 살던 그의 가족은 굶주림을 피해 신장위구르 지역으로 야반도주했다. 그곳에서 땅집을 짓고 살았는데 모래에 굴을 파고 그 위에 지붕을 얹은 집이다. 비가 오면 물바다가 되고, 눈이 오면 문이 막히는 집이다. 문이 막히면 천창을 뚫고 나가야 했다. 땅집을 파면서 사람 허벅지만한 느릅나무 뿌리를 베어냈는데나무가 쉬지 않고 떨었다고 아버지가 말해주었다. 하도 떨어서 잎이 잔뜩 떨어졌다. 시간이 지나자 나무뿌리가 자꾸만 벽을 뚫고 땅집으로 들어왔다. 봄에는 벽에 하얀 털뿌리가 한 겹 생겨나 며칠 만에 한 뼘씩 자랐다. 그 나무뿌리가 또 움직였다고 할머니가 말하면 새로운 봄이 찾아왔다. 구들 밑을 지나는 굵은 뿌리가 앞으로 뻗어나가자 바닥의 흙이 부슬부슬 올라왔다. 저자의 집 바닥에서 유일하게 단단한 곳은 그 굵은 뿌리 위였다. 언제나 그곳에서 장작을 팼다. 밤이 되면 수많은 동물이 굴을 파는 소리가 들려왔다. 팔구 년을 그곳에서 살면서 저자는 나무가 내는 모든 소리를 들었고, 나무뿌리 또한 집에서 나는 모든 소리를 들었다. 저자는 나무가 비밀을 지켜주리라 믿으며 자신이 들은 나무의 소리를 아무에게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 나무들은 한 그루도 남아 있지 않다.
한 사람의 일생에 내리는 눈을 전부 볼 수는 없다
「차디찬 바람이 지독하게 불다」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자. 어릴 때 저자는 냉해를 입었다. 소달구지를 몰고 땔나무를 하러 가다가 날이 저물었다. 사막에서 자라는 싹사울나무를 주워올 참이었다. 소달구지가 마을을 벗어나자 사방팔방에서 추위가 몰려들어 한 줌의 온기도 남겨놓지 않았다. 그날 밤이 여느 밤보다 더 추운 건 아니었다. 다만 소달구지가 여러 대가 아니라 한 대뿐이었다. 바람이 한 사람에게만 쏟아졌다. 양가죽 외투를 여미고 달구지에 붙어 엎드렸지만 너무 추웠다. 추위에 들킬까봐 소리쳐 소를 몰지도 못했다. 동이 트자 소달구지가 드디어 땔나무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간신히 걸을 수 있었지만 다리의 뼈 하나가 쑤셨는데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바늘이 뼈를 꿰뚫고 골수까지 파고드는 듯했다. 해가 기울 무렵 땔나무 반 수레를 싣고 돌아오자 아버지가 대뜸 물었다. 어째 요것뿐이냐, 이틀도 못 때겠다. 이후 겨울은 해를 거듭할수록 사람을 춥게 만들었다. 이제 성인이 된 저자는 어느 추운 날 온몸에 서리를 맞은 행인을 집으로 들여 뜨거운 차 한 잔을 따라주었다. 그가 난롯가에 앉자 난롯불이 삽시간에 창백해졌다. 그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고, 나는 그의 말이 얼어붙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반시간쯤 앉아 있다가 일어나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열고 나갔다. 저자는 그가 따뜻해졌으리라 여겼다. 이튿날 오후, 마을 서쪽에 얼어 죽은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달려가 보니 그 노인이 길가에 누워 있었다. 얼굴 절반이 눈에 파묻힌 채. 그의 생명에는 분명 약간의 온기가 숨어 있었을 것이다. 그가 무슨 수로 자기 몸에 조금의 온기나마 붙잡아두었겠나. 게다가 뼈에 사무치는 추위가 얼마나 많은 겨울 동안 쌓이고 쌓였을까. 한 사람의 일생에 내리는 눈을 우리가 전부 보지는 못한다.
개미떼 추방 대작전
다음은 「두 집 개미」라는 글에 나오는 이야기다. 저자의 집엔 개미굴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작고 까만 개미로 부엌 부뚜막 옆 땅 속에 산다. 다른 굴에 사는 개미는 큼지막한 누런 개미로 구들 가장자리에 있는 동쪽 벽 밑에 산다. 구들과 아궁이 근처라 밥을 지으면 개미굴도 뭉근히 데워진다. 개미가 굴에서 나오면 어머니는 개미구멍 옆에 밀기울을 한 줌 뿌렸다. 그런데 어느 해엔 어머니도 개미 먹으라고 주기가 아까울 정도로 흉년이 들었다. 그런 해에 개미는 밀기울을 발견하면 우르르 몰려와 끌어당기고 짊어지고 몇 개씩 쳐들어가며 구멍으로 나른다. 멀리 가 있는 개미도 소리쳐 부른다. 벽을 타던 개미가 껑충 뛰어내린다. 저자는 바늘 끝마냥 조그맣고 반나절을 움직여도 몇 자 못 가는 검은 개미를 좋아했다. 작은 개미가 굴을 떠나 침실을 지나 동쪽 벽까지 갔다가 집의 유일한 궤짝을 거쳐 남동생 취안와의 머리와 여동생 옌쯔의 머리를 지나 집을 한 바퀴 도는 데에 대략 열흘이 걸렸다. 검은 개미는 사람을 물지 않는다. 누런 개미도 사람을 물진 않지만 어느 날 저자는 얘네들이 못마땅해졌다. 사방팔방 정신없이 기어다녀 괜스레 불안해졌다. 어느 해 봄, 이 누런 개미 떼를 몰아내고 싶어졌다. 기막힌 방법이 생각났는데 밀기울로 유인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밀기울 반 대야를 가져와 노란 실처럼 개미굴부터 땅바닥으로, 방풍림과 땔나무 더미를 에돌고, 키 작은 풀이 자라는 평지를 지나고, 구덩이를 하나 건너, 리 씨 집 담벼락 아래 몽땅 쏟고 흙을 한 줌 뿌려 덮었다. 그러고는 도로 집으로 달려와 개미들의 동정을 살폈다. 한가로이 노닐던 한 마리가 밀기울을 발견했다. 하나를 물어 나르다 팽개쳐놓더니 또 다른 것을 물었다. 밀기울이 엄청 많다는 걸 알아챈 녀석은 구멍으로 달려가더니 앞에서 잠깐 멈췄다. 마치 고개를 들이밀고 고함을 지르는 것 같았다. 안에서 아무도 듣지 못했는지 개미는 곧장 구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2초도 안 되어 어마어마한 개미 떼가 누런 물줄기처럼 쏟아져나왔다. 바쁘게 굴로 옮기던 개미들이 점점 범위를 넓혀 방풍림, 땔나무, 풀밭을 지나고 구덩이를 넘어 리씨네 서쪽 벽에 이르렀다. 그곳에 밀기울이 가득 있는 것을 보자 개미는 광분했다. 앞다리 두 개를 높이 쳐들고 껑충껑충 뛰는데 그토록 먼 길을 오고도 조금도 지친 기색 없이 밀기울 더미를 휙휙 돌더니 꼭대기로 기어 올라갔다. 개미는 몸을 뒤집어 이쪽저쪽으로 몇발씩 뛰어다녔다. 밀기울 더미가 얼마느 큰지 팔을 뻗어 재보는 모양새였다. 한참의 북새통을 이룬 뒤 거의 모든 노란 개미떼가 저쪽 담벼락에 다다랐을 때 저자는 삽을 들고 나왔다. 과감하게 움직였다. 개미가 돌아오는 길에 길이 1미터, 폭 20센티미터쯤 되는 깊은 고랑을 팠다. 다 팠을 때, 밀기울을 입에 문 개미 떼가 커다란 구덩이를 건너오고 있었다. 우르르 밀려오던 개미들은 고랑으로 길이 끊긴 것을 보고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몇 마리는 뛰어넘으려다 떨어졌고 한참 만에 일어났지만 밀기울을 물고 넘는 것은 불가능했다. 밑은 넓고 위는 좁았기 때문이다. 개미들이 깡충거렸다. 무슨 일이야. 어떻게 된 거지. 개미들은 똑똑하니까 저 담벼락에 새 집을 지을 것이다. 리 씨네 벽 밑의 땅은 그리 단단하지 않으니 굴을 파기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튿날 아침 댓바람부터 나가보았다. 밀기울 더미는 깡그리 사라져 있었다. 단 한 알도 보이지 않았다. 리 씨네 벽에서부터 텅 빈 개미 길이 뻗어 있었다. 길은 커다란 구덩이를 지나고 내가 판 고랑 가장자리를 따라 북쪽으로 1미터 남짓 나아가 고랑이 끝나는 지점까지 뻗어갔다가, 맞은편에서 돌아와 다시 풀밭을 지나고 땔나무와 방풍림을 지나 우리 벽 아래 뚫린 개미구멍으로 곧장 이어져 있었다. 개미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인상적인 두 편의 글을 소개했지만, 이 책엔 혼자 읽기 아까운 너무나도 신기하고 흥미롭고 광막하고 처절하며 쥐죽은 듯한 고요와 천애의 자연이 메아리치는 소리로 가득하다.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문학은 곧 과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문학은 인류의 과거입니다. 훌륭한 고전 문학을 읽다보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시간이 일정 기간 보존되어 있고, 그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들어가는 것은 과거의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