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음’, ‘상실’, ‘부재’,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감을 벗어나 다시 새로운 꽃을 싹 틔우는 마법 같은 ‘치유’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 모두의 운명, 언젠가 오고야 말 가까운 사람의 부재,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슬픔. 키티 크라우더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너무 무겁지 않게, 하지만 본질을 외면하지 않고 기억과 상실과 부재에 대한 아프고도 아름다운 그림책으로 탄생시켰다. 그렇게 자연이 가져다주는 마법 같은 치유와 재생의 시간을 아주 섬세하고도 아름답게 그려 낸다.
엄마의 죽음 이후 표면적으로는 덤덤한 일상이 이어지지만 삶의 생명력이 빠져나간 듯 가족의 생활은 생기가 없다. 표정이 없는 아빠는 자신의 슬픔에 빠져 어린 라일라의 소리 없는 비명을 듣지 못한다. 날마다 무거운 고독과 마주하는 라일라. 엄마가 신으라던 장화와 아빠의 웃옷, 유일한 친구 ‘없어’로 지극한 외로움을 견뎌 나가지만 “여기서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라는 한숨에는 무력감이 가득하다.
하지만 상상의 친구 없어는 “그건 아니야.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시작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고 대답한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텅 빈 정원에 흰눈썹울새가 나타난 날, 없어의 말대로 라일라는 작은 씨앗을 땅에 심는다. 흙을 보듬고 하나하나 덮개를 씌워 주며 정성껏 보살핀 시간들…. 마침내 봄이 문턱까지 찾아오고 파란 히말라야푸른양귀비 꽃이 피어난다. 그리고 없어가 돌아온다. 다시 없어와 라일라는 평생 친구가 된다.
드디어 라일라에게도 아주 아름다운 봄이 찾아온다. 마법처럼 아빠의 마음이 돌아와 다시 라일라의 아빠가 된 것이다. 예전에 엄마가 있을 때처럼. 정녕 흰눈썹울새는 멀리 히말라야에서 엄마가 보낸 정령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