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역작!
『백년의 고독』을 뛰어넘어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위대한 상징이 된 작품. _타임스
『염소의 축제』는 20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2000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지식인으로서 그의 역사적, 정치적 문제의식이 돋보이는 대표작이다. 32년간 도미니카 공화국을 지배했던 독재자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의 암살 과정을 재구성한 이 작품에서 바르가스 요사는 광범위한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사실에 입각한 기술을 하면서도, 다양한 인물의 관점을 빌려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며 독재자의 마지막 나날을 새롭게 조명했다. 많은 언론과 비평가들이 바르가스 요사의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를 『염소의 축제』와 연결시켜 언급할 만큼, 『염소의 축제』는 바르가스 요사의 특징적 작품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소설로, 문학과 정치의 관계를 재정립하며 창조적 가치를 구현하는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권력 구조의 지도를 그려내고 개인의 저항, 반역, 좌절을 통렬한 이미지로 포착해냈다.
_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작품
1980년대 초부터 거의 30년 동안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온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드디어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바르가스 요사는 1963년 페루 군사학교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도시와 개들』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은 이래, 『녹색의 집』 『카테드랄 주점에서의 대화』 등 정치, 사회적 문제의식이 드러나는 작품을 선보였고, ‘문학적 유머’의 가능성을 탐구한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와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에로티시즘의 진수를 보여주는 『새엄마 찬양』 등을 발표하며 폭넓은 주제와 다양하고 실험적인 글쓰기 방식, 높은 예술성으로 ‘우리 시대 최고의 스토리텔러’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사실성을 바탕으로 권력과 사회를 비판하고, 유머와 에로티시즘까지 아우르는 바르가스 요사의 작품 세계는 흔히 ‘마술적 사실주의’로 특징지어지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특별한 위상을 차지하며 전 세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초기의 사회 고발적 작품 경향에서 다양한 주제로 눈을 돌렸던 바르가스 요사는 2000년 『염소의 축제』를 발표하며 다시 진지한 주제로 돌아온다. 페루의 독재자 마누엘 오드리아 시절의 사회적, 성적, 정치적 타락을 다룬 1969년 작품 『카테드랄 주점에서의 대화』에 이은 두번째 독재자 소설인 『염소의 축제』에서 작가는 독재 권력의 폭력성이 희생자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 있게 탐구한다.
독재자 소설은 빈곤과 독재정치로 얼룩진 라틴아메리카에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문학 장르이다. 아르헨티나의 독재자 후안 마누엘 로사스의 이야기를 다룬 호세 마르몰의 『아말리아』(1844)를 시작으로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의 『대통령 각하』(194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족장의 겨울』 등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수많은 독재자 소설이 출간되어왔다. 『염소의 축제』는 이러한 라틴아메리카 독재자 소설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역사소설이 흔히 따르는 리얼리즘에 충실하기보다는 내러티브의 혁신을 통해 더욱 풍부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플래시백, 대화, 여러 화자의 등장, 목소리의 중첩 등을 통해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였던 라파엘 트루히요라는 인물을 조명하며, 독재자의 삶에서 중요했던 순간들을 재구성한다. 특히 여러 명의 입을 통해 독재자와 관련된 경험을 증언함으로써 정치적, 사회적 문제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들여다볼 수 있다.
구체적인 사실(史實)을 다룬 소설 작품이 늘 그렇듯, 『염소의 축제』 역시 출간 당시 적지 않은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근거 없는 거짓말로 자신들을 모략하고 있다고 주장한 트루히요주의자들에 대해 바르가스 요사는 ‘그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이 매우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한편 문학평론가들은 이 소설의 정교함과 세세한 장치, 불쾌함을 제거하는 훌륭한 언어 구사 등에 감탄했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바르가스 요사만의 재능’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거장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 독재자의 마지막 나날
1961년 5월 30일 도미니카 공화국의 한 고속도로에서 총성이 울려 퍼진다. 1930년부터 이어진 트루히요의 기나긴 독재가 끝나는 순간이다. 『염소의 축제』는 바로 이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한다.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는 193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래 ‘후진국을 혼란과 무지와 야만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도미니카 공화국을 32년간 통치했고, ‘조국의 아버지’ ‘자선가 ’ ‘수령님’이라는 호칭을 얻으며 무소불위의 지도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조국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개인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하며 수많은 탄압을 자행했고, 국민의 일상생활과 정신까지 완벽하게 지배하고자 했던 독재자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소설의 배경인 1960년은 트루히요 집권기 동안 미국의 지배질서와 반공주의 노선을 지지하며 최우방임을 자처해온 도미니카 공화국이 미국으로부터 ‘폭력 체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었고, 또한 미주기구(OAS)의 제재 조치로 경제적 압박을 받던 시기였다. 설상가상으로 트루히요 체제를 공식적으로 지지해온 가톨릭교회가 이른바 ‘시국선언’을 발표하며 정권을 위협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극심한 혼란 상황에 놓여 있었다.
바르가스 요사는 이러한 사면초가의 상황에 직면한 독재자 트루히요의 마지막 나날을 기술하면서, 통치자로서 그가 벌인 많은 사건을 일별하며 ‘조국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었다’는 독재자의 고뇌를 짜임새 있게 연결시킨다.
작품 안에서 고속도로에서 독재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7명의 암살자들 역시 모두 실존 인물이다. 이들은 각각 사연은 다르지만 트루히요 정권에 의해 삶 전체가 파멸당한 사람들로, 이들이 독재의 참혹한 폭력을 겪은 후 보냈던 고통의 나날과 암살자가 되기까지의 번민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제목 ‘염소의 축제’의 이중적 의미
제목에 등장하는 ‘염소(el Chivo)’는 도미니카 국민들이 트루히요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던 별명이다. 염소는 번식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동물이며, 악마주의의 육욕적 관점을 내포한다. 트루히요는 과도한 성욕과 남성적 능력을 자랑하는 인물로, 자신의 정력과 국가의 건강을 동일시한다. 그는 각료의 아내와 딸을 비롯하여 많은 여자들을 성적으로 정복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이 공고함을 확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염소의 축제’는 독재자가 권력을 영속시키기 위해 벌이는 방탕한 희생제의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체제의 전복을 꿈꾸는 일단의 암살자들에게 독재자 ‘염소’의 죽음은 곧 축제를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독재자가 벌이는 ‘염소의 축제’는 실패로 끝나고, 독재자의 피를 요구하는 ‘염소의 축제’만이 성공을 거둔다.
독재자의 마지막 삶을 재구성하는 세 가지 이야기
소설은 세 개의 이야기가 서로 중첩되며 전개된다. 관점과 시간, 공간이 각각 다르지만, 모두 트루히요의 독재 시절을 재구성하고 있다.
첫번째는 우라니아 카브랄의 이야기다. 열네 살의 소녀였던 우라니아는 트루히요가 암살되기 며칠 전 갑자기 미국으로 떠났다가 3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녀의 아버지 아구스틴 카브랄은 30년간 트루히요 체제에 봉사했으나 영문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총애를 잃어버린 각료였다. 우라니아는 뇌출혈로 쓰러져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아버지와 해후하지만, 그녀의 깊은 상처와 아버지를 향한 35년간의 증오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라니아의 갑작스러운 도피와 그 후 집안의 몰락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던 고모와 사촌들은 그녀를 추궁한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마침내 우라니아는 입을 열고, 35년간 간직해온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두번째는 트루히요의 이야기다. 독재자는 꿰뚫어보는 시선과 카리스마로 상대를 제압하고 사람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심어주며 그의 앞에 선 사람들을 마비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정력을 과시하고, 빳빳이 다린 제복을 흐트러짐 하나 없이 갖춰 입는 그는 뛰어난 연극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국민들의 위대한 수령이자 조국의 아버지, 자선가로 군림하면서도, 소변이 새는 것을 통제하지 못하고 전립선 문제로 고생하는 일흔 살의 노인네이다. 독자는 교활하고 비도덕적인 폭군을 따라 그의 욕망과 분노, 우스꽝스러운 독재자 가족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그의 마지막 날을 혐오감과 공포심을 안고 지켜보게 된다.
세번째 이야기는 1961년 5월 30일, 독재자가 살해되던 그날 밤으로 돌아간다. 그곳에는 7명의 암살자들이 트루히요의 차를 기다리며 고속도로에 대기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 각기 다른 이유로 음모에 가담했지만, 추구하는 바는 단 하나이다. 자유의지를 빼앗고 일상의 소박한 행복을 짓밟으며, 개인의 삶을 철저히 파괴한 독재자를 응징하는 것.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고, 도처에서 들려오는 실종과 살인 소식에 분노하는 그들은 모든 개인의 비극과 수치심과 패배의식의 근원은 바로 트루히요라고 결론 내린다. 암살자들의 회상을 통해 고문과 실종, 납치와 살해 등 폭력으로 얼룩진 도미니카의 독재 시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제에 대한 고발
이 책은 독재를 비판하는 동시에 라틴아메리카의 뿌리 깊은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제를 고발하는데, 이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이 바로 우라니아이다. 우라니아는 추잡한 정치적 거래의 희생자이자, 국가의 아버지와 가정의 아버지가 공모한 ‘축제’의 제물이었다. 남성 권력이 극대화된 가부장제에 굳건하게 바탕을 둔 독재 정권은 여성을 남성의(큰 틀에서는 국가의) 소유로 여기고, 그들을 성적으로 유린하며 권력을 영속시켜나간다. 우라니아는 트루히요 집권기에 성적 결정권을 빼앗기고 침묵을 지켜야만 했던 탄압받은 모든 여자들을 상징함과 동시에 독재자에게 치욕당하고 타락해야만 했던 도미니카 국민 전체를 대표하기도 한다.
국가의 아버지와 가정의 아버지가 공모한 ‘축제’에서 독재자는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지 못하는 괴로움에 눈물을 흘리지만, 축제의 희생제물이었던 우라니아는 35년간 혼자 억누르고 있던 비밀을 털어놓고 난 후 오히려 허탈감을 느낀다. 이는 전통적인 남녀의 성역할이 전도되었음을 의미하며, 라틴아메리카 사회를 지배해온 남성 중심주의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능동적인 여성 인물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