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인권을 기록한 서로 다른 세 시선
2023 시버트상
2023 전미어린이도서관협회 주목할 만한 책
2023 볼로냐 라가치상 특별 부문
2023 화이트레이븐스 리스트 선정작
『지운, 지워지지 않는』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서 일본계 미국인 12만 명 이상이 강제 수용되었던, 미국 역사에서 지워진 사건을 통해 전쟁과 인권, 기록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책이다. 세 사진작가의 기록 사진과 생생한 글, 아름다운 그림이 놀랍도록 절묘하게 결합된 이 책은 2023년 권위 있는 도서 상과 우수 도서 목록에 거듭 선정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한반도 역시 그 자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요즘, 이런 비극적인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이 책의 간절한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제2차 세계대전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미국 정부는 서부 해안 지역에 살던 모든 일본계 미국인에게 강제 이주 명령을 내렸다. 이들이 ‘적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유언비어와 혐오가 퍼졌고, 정부는 자국민 보호라는 명분으로 ‘행정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일방적인 통보를 받은 일본계 미국인들은 이름 대신 번호표를 달고, 며칠 만에 정든 일터와 집을 뒤로한 채 철조망이 둘러쳐진 사막의 강제수용소로 가야 했다. 언제 돌아갈지 기약 없는 혹독한 수용소 생활이 3년 넘게 이어졌다.
『지운, 지워지지 않는』은 미국이 지우고 싶어 한 이 역사를 강렬하게 되살린다. 저자 엘리자베스 파트리지는 사진작가 도로시아 랭이 맨재너 강제수용소에서 찍은 순진한 어린 손자와 슬프고 건조한 표정의 할아버지의 사진(55쪽)에서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쓰게 되었다. “당시의 사진들과 그림을 통해 그 시공간 속으로, 지금의 우리처럼 희망을 품고 숨 쉬고 살아갔을 그 사람들의 세계로 우리를 데려가서 그들이 경험한 일상을 들려”(「옮긴이의 말」) 줌으로써 “미국 정부는 왜 노인과 갓난아이를 가두었을까요? 그들이 국가 안보에 어떤 위협이 될까요?”라는 저자의 질문을 독자들의 마음에 메아리치게 한다. 이주 과정의 당혹감과 수용소 생활의 암담함, 그 속에서 삶을 꾸려 가는 사람들의 생명력을 생생하게 표현한 로런 타마키의 아름다운 그림은 기록 사진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깊은 감동을 준다.
『지운, 지워지지 않는』은 전쟁의 참담함을 환기할 뿐 아니라 차별과 인권, 소수자와 민주주의 등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게 해 준다. 같은 곳, 같은 사람들을 촬영한 세 사진작가의 서로 다른 시선은 사료를 읽고 해석하는 눈을 일깨워 줄 것이다. 초등 고학년부터 어른까지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