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커는 순간의 틈을 노리고 찾아와요.
경찰을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피해자의 공포와 가해자의 심리를 치밀한 서사로 그려낸
스토킹 범죄 소설의 압도적 걸작
“헤어지고 싶어”라는 나의 한마디 말이
그에게는 스토커로 돌변해 날아오를 활주로가 되었다.
내 남자친구에서 이제 섬뜩한 스토커가 된 그는
마치 ‘지지 않는 달’처럼 늘 내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가 언뜻 강압적인 모습을 보였을 때
하루라도 빨리 헤어져야 했을까?
사람들은 내게 잘못이 없다고 하지만
매일 그 두려움을 견디는 건 나의 몫이다.
아무리 어둠으로 도망쳐도 돌아보면 달은 늘 그곳에 있다.
도무지 헤어나올 길이 보이지 않는 이 악몽에서
어떻게 나는 벗어날 수 있을까……
젊은 세대의 삶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선보이는 하타노 도모미
현대인의 ‘생존과 행복’의 핵심을 꿰뚫어보는 작가
하타노 도모미는 젊은 세대와 여성의 삶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선보이는 작가다. 도시 여성들의 고단한 일상을 섬세하게 그린 『감정8호선』의 드라마화로 주목받았고, 작가로서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기까지 십 년 넘게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활고를 겪었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 홈리스의 이야기를 그린 『신을 기다리고 있어』로 일본 사회에 반향을 일으켰다.
『지지 않는 달』은 하루아침에 스토킹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되어버린 한 연인의 이야기를 통해 피해자의 공포와 가해자의 심리를 치밀하게 그려낸 하타노 도모미의 대표작이다. 총 10장 구성의 이 소설은 홀수 장을 피해자인 여성 주인공의 시점으로, 짝수 장을 가해자인 남성 주인공의 시점으로 그린다. 이는 동일한 사건을 정반대의 시각으로 거듭 교차시켜 보여줌으로써 매우 공포스럽고 섬뜩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인식 차이를 예리하게 드러낸다. 책 말미에 수록된 해설은, 일본에서 스토커 500명 이상을 카운슬링한 스토킹 범죄 전문가 고바야카와 아키코의 실질적인 조언들을 담고 있다.
꿈같은 연애의 장면이 순식간에 사고의 현장으로
그는 왜 스토커가 되었을까?
가와구치 사쿠라(여, 28세)
사람들의 피로를 풀어주고 아픈 곳을 치유해주는 직업적 보람에 매력을 느껴 마사지사가 되었다. 고향을 떠나 도쿄의 한 마사지숍에서 일하고 있다. 차분하고 온화한 성격으로, 언젠가 고향에 돌아가 자신의 마사지숍을 여는 것을 꿈꾸고 있다. 출퇴근을 반복하며 늘 똑같은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자신의 단골 고객 ‘마쓰바라’로부터 사귀고 싶다는 고백을 받는다.
마쓰바라 요시후미(남, 31세)
큰 키에 호감 가는 외모, 미식을 즐기는 등 세련된 취향을 지녔다. 직장인 출판사의 일이 적성에 맞진 않지만 그럭저럭 버텨내고 있다. 엄격한 집안의 외아들이고, 인간관계가 넓은 편은 아니다. 과로로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다니는 마사지숍에서 밝고 다정한 사쿠라에게 반해 먼저 고백을 한다.
평범해 보이는 두 사람의 연애는 “헤어지고 싶어”라는 사쿠라의 말 한마디로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이별 통보를 납득할 수 없는 마쓰바라의 집착적 행각은 하루에 1~2백 건에 달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시작해, 몰래 미행하거나 감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전 여자친구의 직장이나 지인에게까지 위해를 가하는 지경에 이른다.
일을 그만두고 증발하듯 조용히 부모님의 집으로 피신한 사쿠라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고 가족과 함께 안전을 위한 대비책을 세운다. 하지만 이제 스토커가 된 전 남자친구는 마치 어딘가에 늘 떠 있는 ‘지지 않는 달’, 이 상황은 결국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끝나는 악몽’일 거라는 생각 역시 지울 수 없다.
내가 다시 사귀겠다고 말할 때까지 마쓰바라 씨는 나를 따라올 것이다. 경찰을 찾아가도 헛수고일 것이다.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찾아왔으니까. 누군가가 나를 항상 지켜봐줄 것도 아니고, 공격에 대비한 요새에 살 수도 없다. 마쓰바라 씨가 체포되어 감옥에 갈 만한 짓을 저질렀다고 한들, 몇 년만 지나면 나온다. 마쓰바라 씨나 나,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이 생활은 계속될 것이다. 설령 마쓰바라 씨가 찾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두려움은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본문 319p)
작가는 다각적이고 심층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완성한 치밀한 서사 위에 피해자 사쿠라가 느끼는 공포를 여실히 그려내는 한편, 가해자 마쓰바라의 자기합리화와 모순적인 심리 전개를 섬뜩할 정도로 세밀히 보여준다. 그 분열적 행보의 끝에는 마쓰바라의 분노와 집착이 진정으로 향한 대상이 누구였는지, 그 처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스토커와 연을 맺지 않기 위해, 혹은 스토커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누구에게 공감하는가?
사쿠라는 경찰에 찾아가 전 남자친구의 스토킹 행위를 신고하지만 ‘하루에 수백 건씩 메시지를 보내와도 살인이나 협박을 암시하는 내용이 없기 때문에’ ‘요즘은 스토킹 행위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정식 사건으로 접수하기 어렵다거나, 법적·제도적 장치가 부족해서 적극적인 보호 조치가 어렵다는 답변을 들을 뿐이다. 다들 그녀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위로하지만, 매 순간 스토킹의 공포를 견디는 건 그녀의 몫이다. 매우 치밀하게 준비해서 자신을 감시하는 스토커보다 훨씬 더 노력해서 스스로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밖에 없다.
“상대를 만나서 자신의 분노를 터뜨리기 위해 스토커는 노력합니다. 경찰보다, 피해자보다 더 많이 노력해요. 운은 평등해서 노력하는 자의 편을 들어줍니다. 설령 그것이 그릇된 노력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경고를 받아도 멈추지 않는 스토커는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지 않아요. 자신이 옳다고 믿고, 주위에서 만류해도 계속 무시해요. 그러는 동안 주변에는 자기편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됩니다.” (…) 세타가야 경찰서에 갔을 때 야마나카 씨는 이렇게 말했다. “스토커는 순간의 틈을 노리고 찾아와요.” 그 틈을 만드는 것이 바로 스토커의 유일한 아군인 ‘운’일 것이다. (본문 중에서)
일본의 스토킹 범죄 전문가 고바야카와 아키코는 해설에서 스토킹 피해자가 취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처법을 안내한다. 작중에서 사쿠라가 잘 대처한 일과 그러지 못한 일을 설명하고, 마쓰바라의 심리를 분석하면서, 소설이기에 더 생생하고 선명하게 실감할 수 있었던 스토킹 범죄의 현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소설에는 두 주인공 외에도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중 자신이 누구에게 공감하고 누구의 심리에 동의하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이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스토커는 교제중에 상대가 자신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자유를 빼앗고 그것이 정당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떠나면 “돌아와주기만 하면 모든 게 잘 해결될 것이고, 그것이 그 사람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강렬한 욕구를 무의식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비뚤어진 사고를 한다. 아무리 오래 말로 설득해도 스토커의 생각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고 싶다고 하지만, 막상 만나면 마지막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대화는 15분 안에 끝낸다. (…) 하지만 그렇게 해서 스토킹 행위가 멈췄더라도 안심해선 안 된다. 스토커에게 ‘풍화’는 없다. 스토커가 자취를 감췄을 때야말로 위험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카운슬링이나 치료를 받지 않는 한, 스토커가 욕구를 포기하거나 줄이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다,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상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