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실 각오를 하라!
이 책을 읽는 순간 당신 눈에 보이는 컬러는
더 이상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영국 해변 최남단에 위치한 콘월의 한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저자는 그곳에서 엑서터대학의 지역 지질학자인 로빈 셰일을 만나 골짜기들을 탐험한다. 색채에 관해 책을 쓰려는 이가 가장 먼저 지질학자를 만나는 이유는 바로 광물이 색을 만들어내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콘월에서는 지하의 화강암이 마그마 속으로 녹아들었다가 위로 떠올랐고, 이것이 굳어지며 균열이 발생했다. 여기서 광맥이 형성됐고, 광부들이 광물을 캐러 다니면서 이 지역은 부유해졌을 뿐 아니라 과학기술의 중심지가 됐다. 그런데 콘월의 흙 속에는 광물 카올리나이트, 즉 중국 도자기의 핵심 재료가 되는 고령석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었다. 여기서 바로 1791년 윌리엄 그리거가 티타늄을 발견했고, 저자 또한 색을 만들어내는 물질인 티타늄이 풍부한 이곳에서 책의 서두를 연다.
우리는 색으로 가득 찬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 몸에 걸친 옷, 손에 쥔 기기, 매일 타는 자동차, 음식 포장지, 화면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 등 모든 것이 컬러로 가득하다. 우리가 알아차리든 못 알아차리든 우리는 생생한 색채에 둘러싸여 있다. 사실 이런 색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들 색채의 생산과 그것이 지니는 의미는 우리가 흔히 아는 것보다 인류 역사에서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풀 스펙트럼』은 복잡하지만 본질적인 색채와의 관계를 집약해내는 여러 측면을 탐구한다. 수십 년 동안 색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여온 저자는 이 책에서 최초의 안료 발견부터 오늘날 색채의 경계를 넓히고 있는 기술까지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 독자를 색의 여정으로 이끈다. 색에 대한 상호작용과 경험은 우리의 정신이 자연과 만나는 기본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색채의 과학, 우리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색채
이 책은 색의 과학적(우리가 색을 보는 방법과 다양한 파장의 빛이 무지개 색을 만드는 방법), 문화적(고대 그리스가 이집션 블루로 가장 유명한 것처럼 문화마다 공통된 색에 대한 단어가 없는 경우가 많음), 산업적(색을 생산하는 새로운 방법과 관련된 수많은 과학 및 기술 발전이 있었으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 측면을 모두 아우른다. 저자는 색상이 현대 생활에 얼마나 필수적인 요소인지 입증하며, 이따금 새로운 색상 하나를 발명하는 것만으로도 제조 공정 소유자에게 수백만 달러의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이 극히 일부만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파동과 입자, 지구 자기장과 전기장의 변동, 전자기 스펙트럼을 저자는 날카롭게 바라보며 자연계가 무한한 색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주변 사물들의 용도를 변경해왔는데, 이를테면 화학물질을 이용해 색을 내는 공학을 연구해왔다. 이러한 색은 우리 눈의 광수용체에 의해 포착된 후 처리된다.
저자는 우리의 신경생리학적, 정신생리학적 인상이 어떻게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논의하면서 지식으로서의 색(음식을 찾을 수 있는 좋은 장소 발견), 상업으로서의 색(욕망, 희귀성, 거래), 기호학으로서의 색(색을 적용하면 다른 사람이 그 색을 어떻게 볼 것인지 알기 위한)을 살펴본다.
이 책은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아랍과 중국의 물리학, 라스코동굴에 이르기까지 공예 전문 지식이 광학의 발전과 함께 혁명으로 꽃을 피우면서 색채의 역사와 색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점점 더 확장되고 있음을 조명한다. 저자는 특히 독성이 강한 것부터 불투명하고 밝은 것까지 염료와 안료의 진화를 탐구하는 데는 능숙함을 보인다. 저자는 또한 색의 보편성(“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다른 색을 볼 수 있는가?”)을 파악하기 위해 용감한 시도를 하며, 모든 과학적 개념을 통해 이 주제에 대한 분명한 열정을 드러낸다. 즉 이 책은 색에 관한 물리학과 사고방식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진행된다.
색과 빛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우리가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과학으로 여기는 상대성 이론, 양자물리학 등 많은 것의 뿌리가 되었다. 한 가지 아이디어만 꼽자면 빛과 전자기 스펙트럼의 세계를 눈과 뇌의 신경해부학과 현상학적으로 연결한 토머스 영과 헤르만 폰 헬름홀츠가 눈의 세 가지 수용체가 색각의 전체 범위를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몸이 외부 세계의 신호를 내부 세계의 정신적 버전으로 변환하는 방식의 한 가지 핵심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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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색과 관련해 기존에 많이 연구된 색채심리학과 같은 내용에는 지면을 많이 할애하지 않는다. 그런 견해에서는 과학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 견해로 보자면 반론할 것투성이기 때문이다. 그럴듯하게 포장돼온 색의 ‘의미’는 문화마다, 시대마다, 개인마다 다 다르다. 저자는 인류와 색의 관계에는 상당한 오해의 역사가 있음을 밝히며 독자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이 책을 읽어주길 기대한다.
수천 년 동안 철학자, 예술가, 과학자들은 사물의 모양이 색보다 더 중요한지를 놓고 논쟁을 벌여왔다. 저자는 색-형태 우위론을 둘러싼 이 논쟁이 잘못된 선택이라고 본다. 모든 표면의 색과 어둠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즉 색이냐 형태냐의 싸움은 성립될 수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색이 곧 형태이며, 우리 우주의 형태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