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안녹산과 황소가 칼날을 세우고
밤에는 이백과 두보가 노래를 읊은
피와 시의 시대
“초겨울에 열 고을 양갓집 자제들
죽은 피가 진도 못 속 물을 이뤘네
휑한 들판 맑은 하늘 싸우는 소리도 없는데
사만의 의로운 군사가 같은 날 죽었네”
중국 최고의 고전 해설가 이중톈의 중국사 시리즈 16권. 이번 권에서 이중톈은 당나라 멸망의 진실을 파헤친다. 안사의 난은 한때 세계제국으로 군림했던 당나라가 쇠퇴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시발점이다. 이민족 출신의 변방 장수였던 안녹산은 어떻게 이 거대한 제국에 균열을 냈고, 이 균열은 왜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 이어졌을까? 당나라의 멸망은 양귀비의 뛰어난 미모 때문도, 환관의 폐해나 조정의 붕당, 군벌의 배신, 이민족의 침략 때문도 아니었다. 당나라는 스스로 무너졌다! 무덤으로 가는 길을 안내한 것은 안녹산이었고 무덤을 판 것은 황소였지만 그 길을 걷고 관에 직접 못질을 한 것은 당나라 제국 자신이었다.
당 현종과 양귀비, 안녹산과 황소, 이백과 두보 등 당나라의 흥망을 함께한 다양한 인물 군상과 당나라를 둘러싸고 격동했던 세계정세가 한 편의 역사소설처럼 독자들의 눈앞에 펼쳐진다.
당나라를 망하게 한 사람은 누구인가
황하만큼이나 길고 굽이진 중국사의 줄기를 경쾌하고 유려한 필치로 써내려온 이중톈의 중국사 시리즈 16권. 이번 권에서는 당나라 몰락의 전초가 된 안사의 난을 중심으로 한때 세계제국의 위용을 떨쳤던 당나라가 어떻게 쇠락의 길을 걸었는지 서술한다. 이중톈이 한 편의 역사소설처럼 써내려간 당나라 멸망사에는 황제와 재상, 환관, 신하, 장수, 비빈 등 다양한 인물 군상이 등장한다. 이 중에는 당 현종과 양귀비 그리고 안사의 난의 주인공 안녹산처럼 역사에 이름을 새긴 쟁쟁한 인물도 있으며, 특히 기억해야 할 것은 당나라가 한 발자국씩 차근차근 망국의 길로 들어서고 있던 때에도 이 나라에는 명군과 훌륭한 재상, 어진 신하, 뛰어난 장수가 있었다는 점이다. 일례로 안사의 난 당시 재위에 있었던 당 현종은 무측천이 한 차례 흔들었던 당나라를 다시 굳건하게 다진 명군이었다. 그는 스스로도 명철했을 뿐 아니라 요숭과 송경 같은 명재상을 적재적시에 등용해 당나라의 재부흥을 이끌었다.
그렇다면 당나라를 망하게 한 사람은 누구인가. 여러 사람을 후보로 꼽아볼 수 있을 것이다. 젊을 때는 명군이었으나 집권 말기에 양귀비의 미모에 미혹되고 간신 이임보에게 놀아난 당 현종이 첫째 순위고, 그런 당 현종에게 알랑방귀를 뀌며 군벌들의 난립을 조장한 이임보 또한 혐의를 비껴갈 수 없다. 안녹산은 당 현종 앞에서는 충성을 맹세하고 뒤로 돌아서는 칼을 꽂아 제국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으며, 환관 구사량 등은 나라의 안위보다 자신의 배를 불리는 데 몰두해 제국의 몰락을 가속화했다. 지방의 군벌 이희열 등은 곳곳에서 제국에 반기를 들며 일어나 칭왕, 칭제하면서 당나라를 너덜너덜하게 찢어놓았고, 조정 신하 이덕유 등은 자기들끼리 패거리 짓기에 몰두하면서 나라의 힘을 회복할 기회를 놓쳤다. 아랍 제국의 아바스 왕조는 당나라의 세력권을 침범해 들어오며 그 세계제국으로서의 위신을 크게 꺾었고, 마지막으로 황소는 이미 껍데기만 남은 당나라에 마지막 치명타를 날렸다.
다시 한번 묻자면, 그렇다면 누가 망국의 주범인가. 이중톈은 단 한 명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지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중톈이 분명히 하는 점은 당나라가 스스로 몰락했다는 것이다. 지리멸렬한 내분이 지속되는 가운데 당나라의 유수한 인재들은 허송세월하며 국력을 낭비했고, 분쟁에 휘말린 백성만이 도탄에 빠진 채 고통을 겪었다. 그 결과 “허약하고 쇠락한 왕조는 심지어 자기 무덤을 팔 힘도 없었고 외래 세력에 의지해 관뚜껑을 닫아야 했다”(192쪽).
당나라의 성쇠를 함께한
찬란한 문학사의 별―이백과 두보
‘당시(唐詩)’는 ‘당사(唐史)’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중톈은 당나라의 시로 당나라 역사 서술의 마침표를 찍는다. 당나라에서 시(詩)는 유독 비범한 의미를 가졌고, 시를 읊고 노래하는 것이 당나라 사람들의 생활양식이자 최신 유행, 아이덴티티였다. 당나라에서는 사대부 등 상류계급은 물론 저잣거리의 사람들, 화류계 여성까지 참여해 모두 시를 읊고, 듣고, 즐겼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아직까지도 한시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이야기되는 두 인물 시성(詩仙) 이백과 시성(詩聖) 두보가 등장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백은 구속받지 않는 당나라의 시대정신 그 자체였으며, 두보는 당나라가 가장하는 태평성대 아래 움트던 부패와 고통을 꿰뚫어본 시인 겸 역사가였다. 그래서 이백의 시는 유독 드높고 호방하며 즉흥적이고 자유로우며, 두보의 시에는 연민과 슬픔, 휴머니즘의 정서가 배어 있다. 당나라는 안사의 난 이후로 다시 돌아보지 않고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위대했던 당나라의 기상은 이백과 두보 이외에도 왕유, 잠삼, 두목, 이상은 등 위대한 시인을 배출했으며 이들 모두의 시는 이백과 두보의 시가 그러했듯 그 자체로 당나라의 정신 혹은 역사가 되었다. 당나라는 쇠하여 사라졌으나 이들의 시는 여전히 별처럼 빛나며 그 시대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