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거리에서 살아가는 동물을 문명적으로 대하는 길을 모색하고 추구한
우리 세대의 기록이다”
-어떤 날은 차도에서, 어떤 날은 인간의 침대 위에서……
집 안팎을 넘나들며 인간과 엇갈리고 마주치는 고양이들
-그런 그들에게 바치는 타이완 국민 작가 주톈신의 근심 어린 서한
-약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난무한 세상을 향해 외치는 포용에의 주문
작은 것들, 단절된 것들, 사라진 것들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글쓰기를 선보여온 주톈신이 오랫동안 품고 안고 먹인 도시의 사냥꾼, 고양이의 생애에 대해 말한다. 주톈신은 소설가이자 각본가인 언니 주톈원, 타이완 최고의 문화비평가이자 전방위 학자로 인정받는 남편 탕누어와 함께 타이완을 대표하는 문학가로, 2012년 소설 『고도』로 국내 독자들을 만났다. 불의한 세태에 대한 치열한 고발정신을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로 표현하는 그는 『사냥꾼들』을 통해 ‘길고양이를 괴롭히지 말라’는 다소 해묵은 주문을 다시금 주목해야 할 낯선 주장으로 새롭게 건져 올린다. 소파 위에서, 식탁 아래서 생생하게 겪어낸 경험을 문장가다운 아름다운 말로 엮어냄으로써.
고양이에 대한, 고양이를 바라보는 마음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묘사
이 책은 고양이를 그려내는 기존의 이미지를 소비하면서도 그것을 거부한다. 주톈신이 소개하는 고양이는 마냥 사랑스럽지 않으며, 심지어 불량하다. 「모든 고양이가 사랑스러운 건 아니다」에서는 고양이의 고약한 면모를 ‘겁쟁이 고양이’ ‘못생긴 고양이’ ‘말하기 좋아하는 고양이’ ‘훔쳐 먹는 고양이’ ‘꽁한 고양이’ ‘집에 붙어 있지 않는 고양이’ ‘독신남 고양이’ ‘불량소녀단’과 같은 항목별로 분류하여 ‘귀엽고 예쁜’ 동물이라는 고양이의 신화에 구태여 흠집을 낸다. 그는 “그가 암암리에 폭력에 가까운 행위로 늙거나 어린 묘족을 괴롭히는 모습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라든가 “한한은 진짜 진짜 못생겼다” “예전에 우리 집에 살았던 커다란 흑백 무늬 수고양이는 추한 생김새 때문에 아추라는 이름이 붙었고, 때때로 히틀러라 불리기도 했다”라고 쓴다.
이로써 얻어지는 건 무엇인가. 그가 ‘비방’하는 목적은 분명하다. “다들 아름다운 인연이 시작되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길고양이를 입양하려는 마음을 먹었을 터. 그러다 보니 나에게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릴 의무가 생겼다”라는 말로 미루어 볼 때 작가는 고양이의 다양한 면모를 알지 못한 채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덥석 입양해 쉽게 파양할 경우를 미연에 방지코자 한다. 동시에 달성되는 또 다른 가치도 있다. 동물이 귀엽지 않아도, 심지어 ‘불량’해도 사랑스럽다는 작가의 자연스러운 태도는 어느새 읽는 이조차도 ‘못생긴 한한’을 자연스레 긍정하고 사랑하게끔 만든다. 대상을 조건 없이, 자연히, 저절로 사랑하기. 주톈신은 자신의 사랑을 통해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의 가능성을 증명해 낸다.
소설적 상상 또한 이 책의 묘미다. 고양이를 오래 바라보던 작가는 스스로 고양이가 되어 자신에게 고한다. “아이고, 똘똘하고 모든 걸 다 안다 싶은 내 집사도 이 즐거움은 결코 알 수 없겠지. 갖가지 소식을 실은 산들바람이 풀 끝을 스치고, 풀 끝은 가장 예민하고 가느다란 배털을 사박사박 훑고, 그 빛과 그림자는 초 단위로 또는 그보다 더 미세하게 달라지고, 백만 년간 뜨거운 핏속에 응축된 조상들의 목소리에 소환되는 그 순간, 시간은 시간이 아니다.”(42) 문장을 읽고 난 독자는 인간을 벗어나 고양이의 몸이 되어 배털을 스치는 가상의 공기를 체험하게 된다. 주객이 뒤바뀐 상황 속에서 작가는 대상으로 고정되어 있던 고양이에 대한 더 큰 이해에 도달하게 되고, 독자 역시 같은 경험을 통해 고양이와 더욱 가까워진다. 이 책을 읽고 난 우리는 이로써 고양이를 더 잘 알게 되었노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냥꾼이 사냥당하는 도시,
주톈신이 고발하는 타이베이
주톈신이 타이완에서 마주하는 고양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야성이다. 그들 묘족은 인족(주톈신의 표현)을 경계하며, 인족의 “목소리와 몸짓이 아무리 상냥하고 온화해도,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아도” 그들과 가까워질세라 냅다 도망치기 바쁘다. 얼핏 그들은 도시의 질서에 길들지 않은, 문명의 반대말로서의 야성성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 야성성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주톈신은 방어적이고 회피적인 타이완 고양이들을 보며 탄식한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들은 그토록 사람을 경계하며 죽어라 달아나는 걸까? 무엇 때문에 그들은 에게해 작은 섬의 고양이들처럼 우리를 쓱 보고는 기지개를 켜고 단잠을 잘 수 없는 걸까?” 동시에 작가는 묘족이 야성적일 수밖에, 인간에게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한다. “내가 만약 이 섬나라의 묘족이라면, 나 역시 그럴 테니까.”
호기심에 이끌려 고양이에게 다가가는 아이에게 “더러우니까 떨어지라”고 다그치는 부모부터 길고양이에게 끓는 물을 뿌리는 노점상 주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아기 들고양이를 4층 창밖으로 던져버린 교사, 묘족이 지나다니지 못하도록 마당에 울타리를 두르고 철조망까지 친 어느 고급 주택의 집주인까지. 타이베이에서 고양이는 그들에게 붙여진 사냥꾼이란 별명만큼 호령하고 군림하지 못한다. 이 도시의 사냥꾼들은 죽거나 버려진 것만을 ‘사냥’해야 하는 비운을 감내해야 하며, 도처에 도사린 사냥‘당할’ 위험을 감지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 책이 현재의 우리에게 유의미한 이유는 책이 가진 문제의식이 바다 건너 한반도에 그대로 와닿기 때문이다. 책에서 그리는 고양이의 무대는 사적 공간인 집이 아닌 공적 공간인 도시다. 도시인들에게 박해받는 도시 고양이의 비운을 읽는 독자는 비단 그곳에만 머무르지 않고, 내가 사는 이곳 도시 고양이의 삶으로까지 생각을 옮겨오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타이완에서 박해받는 고양이를 상상함과 동시에 당장 내가 앉아 있는 건물 밖에서, 담벼락 사이에서, 주차장 구석에서 울고 있는 이쪽의 고양이 역시 떠올리게 된다. “공공연히 통치자의 이익과 선호에 부합하는 사람만 골라 유권자로 삼으려고 하는데, 하물며 ‘내 종족이 아닌’ 이들의 사정을 봐줄 리가?”라고 묻는 주톈신의 물음 앞에서 우리는 이 책이 애초에 다른 언어로 쓰였던 번역서라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다.
사냥꾼 아닌 사냥꾼을 두고도 주톈신이 책 제목을 『사냥꾼들』이라고 지은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제목은 고양이의 본능을 지켜주고 싶다, 뛰놀도록, 배회하도록, 살아 있는 개체와 섞이도록, 그렇게 내내 진정한 사냥꾼이도록 해주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다. 인간의 생존만이 유일한 과제가 된 도시에서 고양이 애호가는 필연적으로 수호자일 수밖에 없다. “우리 집에는 이미 개 여섯 마리에 토끼 세 마리가 있었고, 고양이는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