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대에 투르게네프는 니꼴라이 고골리의 영향을 받아 시와 비평과 단편소설을 썼다. 단편 연작소설인 ‘스포츠맨의 스케치(1852)’로 그는 명성을 얻긴 했지만, 그의 견해로 말미암아 성 페테스부르크에 한달 동안 구금되고, 18개월 동안 가택연금을 당해야했다. 1855년과 1862년 사이에 뚜르게네프의 소설은 예술적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고, 이 시기에 그의 가장 훌륭한 소설과 소품 몇 점이 쓰여졌다. 그의 여섯 편의 소설 중 4편은 ‘Rudin(1856), Dvorianskoe Gnedo(1859), Nakanue (1860), Ottsyi Deti(1862)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적대적 반응 때문에 투르게네프는 결국 1856년에 러시아를 떠나게된다. 그는 처음에 독일에서 살다가 런던으로 이사하여, 이곳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게된다. 그리고 마침내 파리에 정착하여, 이곳에서 1871년에서 죽을 때까지 비아르도 부부와 함께 지낸다. 1860년에 왕립 과학원의 객원이 되었고, 1879년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민법학 박사가 되었다.
투르게네프는 1883년 9월 3일 파리근교 Bougival에서 죽었다. 그의 후기 작품에는 소품인 ‘초원의 리어왕(A King Lear of the Steppes, 1870)과 ’봄의 급류(Spring Torrents)'가 포함되는데, 이것들은 첫사랑(First Love, 1860)과 함께 이 장르에서 그가 쓴 최고 작품으로 평가된다. 마지막으로 출판된 작품은 ‘산문시(Poems in Prose, 1883)'란 제목의 명상과 일화를 모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