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하는 정치가 좋은 정치입니다!”
◎ 도서 소개
지역과 주민들의 문제를 해결해온 공직자로서의 업적과 다짐
‘정치인 윤준병’이 아닌 ‘해결사 윤준병’
말과 구호가 앞서는 정치인을 주민과 유권자들은 신뢰하지 않는다. 공직에서 36년간 정책을 통해 지역 문제를 해결해온 윤준병은 말이 아니라 실력으로 인정받아 지역구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다시금 해결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야 하는 지금, 주민 앞에서 행동하는 정치인이 될 것을 약속한다.
유년 시절에는 이웃과 마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언제나 앞장서온 부모님의 모습을 되새기며 혼자만 잘사는 어른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사회 진출 후 행정가로 활약해온 그의 경력은 국회의원이 되어 빛을 발했다. 고향이자 소외되기 쉬운 지방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해묵은 농어촌 문제를 줄줄이 해결했고, 초선임에도 두 차례나 국회 의정대상을 받았다.
36년간의 공무원 생활 이후 성공적인 초선 국회의원으로 활동해온 윤준병은 이루고자 하는 지역의 비전과, 스스로 되고자 하는 ‘정치인 상’이 무엇인지를 말이 아니라 본인의 지난 이력을 통해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 책 속으로
“엄니는 말이다. 우리 준병이가 이다음에 이 곡우 같은 사람이 됐으면 헌다. 꼭 필요할 때 내려서 사람덜을 이롭게 하는 이 곡우처럼.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는 그런 큰 사람이 되믄 참말로 좋겄다.”
어머니의 말씀은 그날 내리던 봄비처럼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입암면 산골 소년에게 꿈이 생긴 날이었다.
[곡우 같은 사람 | 22~23쪽]
나는 아버지의 말이 이해가 안 돼 아버지께 되물었다.
“아부지 일이 아니잖아요.”
“왜 내 일이 아니냐, 우리 마을 일인데.”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준병아. 나만 잘사는 것은 다 소용없는 것이다. 다 같이 잘살아야지. 우리 가족은 물론이고 옆집 아저씨부터 준병이네 친구들까지. 아부지가 그 조금 도와줘서 모두가 다 같이 잘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냐.”
[해결사 윤선생 | 28쪽]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장내가 어수선해졌다. 민원인을 앞세워 현장으로 향하자, 문제가 확실히 들어왔다. 역시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좋았다. 현장을 보니 민원인이 말했던 문제가 한눈에 들어왔다. 현장을 둘러보고 면사무소로 돌아가는 길, 내 손을 뿌리쳤던 어르신께서 내게 다가와 말했다.
“얼굴이나 비출라고 온 줄 알았드만! 일할라고 온 것이었고만?”
“일도 하고 어르신도 뵈러 온 것이지요.”
“거 사람 참!
[찾아가는 정치의 시작 ‘토방청담(土訪請談)’ | 44~45쪽]
드디어 해제가 확정되었다. 20년 묵은 숙원과제를 당선 20개월 만에 해결한 것이다. 무엇이든 ‘최초’는 어렵다. 내장저수지의 국립공원 보호구역 해제는 환경을 지키며 지역발전을 꾀하는 좋은 선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을 들여야 운이 온다 | 60쪽]
동우팜투테이블의 고창 산단 유치가 불투명해지자, 일부에서는 당장 대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대안의 제시 없는 반대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불법에 대한 반대’였다. 나아가 우리 지역 옥토에 공해의 알 박기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동우팜투테이블과의 입주 분양계약을 공식적으로 무효화 하지 않으면 앞으로 이를 대체할 혹은 더 좋은 조건의 기업을 유치할 수가 없게 된다. 국정감사 기간에는 지역의 유력한 기업인으로부터 전화를 받기도 했다. “국회의원이 지역 업체를 챙겨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이야기하시길래 “당연히 그래야지요” 하고 답변드렸다. 적법한 인허가를 받고 청정 고창에 부합하는 기업이라면 잘 될 수 있도록 두 팔 걷어 도와드릴 일이라고도 말씀드렸다.
[의로운 닭싸움 끝에 낙이 온다 | 95쪽]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어 정치를 처음 시작하면서 ‘나의 첫 번째 법안’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했다. 정치인으로 첫 발걸음을 내딛는 법안으로 그 자체로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랜 고심 끝에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제도적 보장’하는 법안을 첫 번째 대표 발의 법안으로 정했다. 우리 정읍·고창 인구의 30%가 종사하는 농어업을 발전시키지 않고서는 균형 발전이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농어업 발전을 위해서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법안 | 158~159쪽]
그 당시 여의도에서 만난 한 기자는 말했다. 정치인이 강조하고 싶은 얘기보다는 논란이 될 만한 부분만 크게 강조하는 것이 여의도라고. 아무리 사실관계를 바로잡으려 해도 이미 늦은 것이니 ‘여의도 정치 언어’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기자는 내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여의도 정치 언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해결하는 정치’, ‘책임있는 정치’를 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정치를 시작했다. 진영논리를 위해 프레임에 가두는 ‘말의 정치’는 내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었다.
[정치인과 정치꾼 | 196쪽]
3년 전 약속했다.
정치꾼이 아닌 정치인으로서 정읍·고창의 묵은 숙원과제 해결하고, 정부 예산신장률보다 높은 국비예산을 확보하겠노라고.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그 약속을 지켰다.
이제 정읍·고창 주민 여러분께 해결을 넘어 변화를 약속드리고자 한다. 지난 시간 동안 정읍·고창에 뿌려놓은 좋은 씨앗을 싹을 틔워 좋은 결실을 만들고자 한다. 이 결실을 위해서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맺음말 | 284~2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