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 함께하는 시간이 마치 마법처럼
서로 매우 다른 사람들을 연결하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나는 향긋한 차를 마시며 저자와 함께
런던, 파리, 뉴욕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 책은 각자의 서툰 인생 속 작은 여정들을 찻잔 안에 펼쳐놓고
돌봄의 소중함을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독자들 또한 찻상이 삶에 선사하는
작은 행복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브라운즈’ 대표 임승택
○ 작은 찻상이, 작고 외로운 인간을 변화시킨 순간
차보다 찻상에 먼저 반해 차의 세계로 들어온 티소믈리에이자 플루티스트인 연희 작가의 첫 에세이. 20여 년간 저자는 여러 나라에서 플루트를 연주하거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오랜 방랑의 생활을 이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한곳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방인의 삶에 피로를 느꼈고, 이 넓디넓은 세상에서 자신은 유독 미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인 것 같아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2013년 여름, 저자는 파리 체류 중 작은 연주회를 가진 뒤 화려한 방돔 광장 골목에 자리한 일본 다실 ‘토라야’를 방문하게 되었다. 5백 년 전통을 가진 교토 토라야의 소박한 분점이었다. 토라야의 차분한 다실로 들어가 따뜻한 차 앞에 앉은 순간, 지쳐 있던 몸과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낀 저자는 스스로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곰곰이 들여다본다. 그리고 의식 저편에 잠재해 있던 어린 시절 기억을 끄집어올린다. 그것은 가까운 이의 상실을 겪은 자신 곁에 줄곧 있어준 친척 언니와의 추억의 찻상놀이였다.
토라야에서의 자각을 계기로 저자는 찻상이 만들어내는 어떤 사랑의 세계에 애착을 품고 이를 탐구해나간다. 런던, 파리, 뉴욕, 교토 등에서 찻상을 통해 서로 매우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자신을 더 깊게 이해하고 스스로의 마음과 천천히 걸어가는 법을 배운다. 하루에 단 몇 분 동안만이라도 차분히 차를 마시는 문화는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변화시킬까? 우리가 함께 앉아 있는 테이블은 작아도 공유하는 사랑은 크다.
○ 각 도시의 단골다방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돌봄의 공간을 탐구하다
《돌봄의 찻상》에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가 자신의 단골다방들을 비롯해 유명한 차점 등을 탐방하며 찻상 세계를 탐구한 이야기와 찻상 앞에서 스스로에게든 무엇인가에게든 돌봄을 받은 이야기가 각 에피소드에 녹아들어 있다.
거리에 가스등이 남아 있고 아직 휴대전화 사용이 대중적으로 퍼지지 않은, 아날로그 시대의 런던에서 유학하던 저자의 초라한 책상 위에는 늘 밀크티 한 잔과 다이제스티브가 올라 있었다. 기숙사의 고독한 한국인 학생들은 이 별것 아닌 단출한 찻상 앞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외국 생활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 파리에서 저자는 1911년 문을 연 뒤 피카소, 헤밍웨이 등의 예술가들이 자주 찾은 로톤드 다방을 자신만의 단골다방으로 삼아 일상을 보낸다. 런던에서는 유명한 차점들을 돌아다니며 맛과 향의 세계를 탐구하고 애프터눈티를 비롯한 영국 찻상들 차리는 법을 배운다.
통영에서는 매서운 추위에 코를 훌쩍이면서도 근현대 살롱문화의 흔적을 좇고, 뉴욕 하이엔드 호텔 칼라일에서는 이웃들로부터 따뜻한 위로의 티타임을 선물받는다. 갑상선암이 의심된다는 건강 진단을 받고 전전긍긍하느라 지친 마음이 훈기에 휩싸인 순간이었다.
마침내 복잡한 대도시 순례 생활을 접고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 햄프턴으로 이주한 저자는, 매일 풍부한 자연에 둘러싸여 다람쥐와 사슴 무리가 함께하는 다회를 연다. 찻잔을 비우면서 쓸모없는 고민과 후회를 함께 비우고, 그 비워진 공간에 다시 윤택한 감정과 오늘의 삶이 차오르는 것을 지켜본다.
○ 차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찻상.
차 앞에서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돌보게 된다
찻상을 둘러싼 긴 여정 속에서 저자는 다양한 국적의 수많은 타인과 만나 짧거나 긴 인연을 맺는다. 서로의 아픔과 외로움에 공감하며 위로를 주고받고, 작은 행운의 징표를 선사하거나 예상치 못한 격려의 말을 건네기도 한다. 저자는 이렇게 찻상 앞에서 돌봄을 받거나 누군가를 돌본다. 그리고 그 돌봄이 곱절의 사랑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경험한다.
저자는 차를 마주하고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찻상이라고 생각하며, 런던에 유학한 스무 살 적, 오래된 교회의 오케스트라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연주하며 대가로 받은 조촐한 밀크티와 딸기잼 쿠키 찻상을 지금도 인생 최고의 영국 찻상이라고 여긴다. 그에게 찻상은 딱딱한 매너와 에티켓이 요구되는 공간이 아니라, 단 몇 분이라도 의식의 흐름을 조용히 관찰하고 내면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곳이다. 그리고 자신 또는 상대방과 명랑한 교감을 나누는 곳이다.
매사 ‘시심비’를 따지며 1분 1초를 아쉬워하는 요즘 시대에 느긋한 시간의 미학을 필요로 하는 찻상은 언뜻 몰가치하고 허황된 세계의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여전히 작고 연약하며, 사랑과 공감에 목마름을 느끼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찻상문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