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여정

전광용 이양하 이태준 이희승 피천득 이무영 양주동 조지훈 설의식 한용운 | 포레스트 위즈덤 | 2024년 03월 04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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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여행은 언제나 즐거운 것이다. 봄은 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그리고 여름은 여름, 겨울은 겨울대로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그대로 다 새로운 즐거움을 가슴 속에 안겨다 주는 청신제라고나 할까. 농촌은 농촌대로 전원의 유장한 목가적인 맛을, 산은 산대로...
<딸깍발이> 수필의 주인공 남산골 샌님은 집안살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언제나 의관을 가지런히 하고 사서오경(四書五經)을 비롯한 유교서적을 읽으며 오직 청렴과 지조를 생활신조로 삼고 살아가는 선비이다. 이들은 날씨에 상관없이 언제나 나막신을 신고 다녀 날씨가 맑은 날에는 ‘딸깍딸깍’ 하는 소리를 유난스럽게 내기 때문에 ‘딸깍발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실생활에는 도무지 재주가 없는 이들은 때가 흐르는 도포나 중치막을 입은 궁색한 차림에 바싹 야윈 얼굴을 하고 있을 망정 심중에는 ‘앙큼한 자존심’과 ‘꼬장꼬장한 고지식’이 똘똘 들어 차 있다. 일제강점기에 한글운동에 앞장서기도 한 작가는 사육신(死六臣)과 삼학사(三學士)를 딸깍발이의 전형으로 보았다. 또 포은(包銀) 정몽주(鄭夢周)와 한말의 순국지사 민영환(閔泳煥)을 비롯해 단발령(斷髮令)에 반대해 목숨걸고 상소한 유림(儒林)과 임진왜란 때 각지에서 봉기한 의병들도 모두 딸깍발이의 꺾이지 않는 기백이 구현된 것으로 보았다.

저자소개

전광용(全光鏞 1919. 3. 1 ~ 1988. 6. 21) 호 백사(白史)
함남 북청(北靑) 출생. 1946년 경성고등상업학교, 1951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국문과, 1953년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일찍이 문학에 심취, 1939년 《동아일보》에 《별나라 공주와 토끼》가 입선되고, 1947년 《시탑(詩塔)》 등 동인으로 활동, 1955년 단편 《흑산도》가 《조선일보》에 당선되고, 논문 〈신소설 연구〉가 《사상계》에 발표되면서 본격적인 문단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동혈인간(凍血人間)》 《충매화(蟲媒花)》 등의 단편을 발표, 현실에 아부하지 않는 건실한 작풍을 보여주었다. 1962년에는 세속적 출세주의자를 풍자한 단편 《꺼삐딴리》로 동인문학상(東仁文學賞)을 받았고, 이어 장편 《태백산맥》 《나신(裸身)》 《창과 벽》, 단편 《세끼미》 등을 발표했다.
한편, 학자로서도 역할이 커, 1955∼1984년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 1972년 문리대 문학부장으로 있으면서, 1973년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동안 소설연구에 착수하여 〈설중매(雪中梅) 연구〉(1955), 〈이인직(李人稙) 연구〉(1957) 등을 비롯하여, 〈한국어문장의 시대적 변천〉 등 평론과 논문을 다수 발표, 한국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또, 사회활동에도 참여, 1974∼1981년 펜클럽한국본부 부회장, 1980∼1985년 한국비교문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1984년부터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세종대학교 초빙교수로 지냈다. 대한민국 문학예술상,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그 밖의 주요 작품에는 《모르모트의 반응》 《G.M.C.》 《편지의 미학》 등이 있다.
 
이양하(李敭河 1904 ~ 1963. 2. 4)
평안남도 강서(江西) 출생. 일본 도쿄 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34년 연희전문학교 영문학 강사를 거쳐 1942년 같은 대학 문학과 교수 및 학과장을 역임했다. 8·15 해방 후 서울대학교 교수로 있다가 1951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교에서 2년간 영문학을 연구했으며, 1953년 예일 대학교로 옮겨 언어학부의 마틴 교수와 함께 《한미사전》을 펴냈다. 그는 주로 생활인의 철학과 사색이 담긴 수필을 썼다. 주요 작품으로는 수필 <신록예찬> · <프루스트의 산문> · <페이터의 산문> 등이 있고, 수필집 《나무》 등이 있다.
 
이태준(李泰俊 1904. 1. 7 ~ ?)
강원도 철원 출생. 1925년 <오몽녀(五夢女)>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했다. 1933년 박태원, 이효석, 정지용 등과 ‘구인회(九人會)’를 조직하면서부터 작품 활동에 전념하여, 일제 말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사상적인 내용보다는 문장의 묘미를 강조하는 등 순수 예술을 지향하면서 현대 소설의 기법적인 바탕을 마련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달밤>, <까마귀>, <영월 영감>, <복덕방>, <해방 전후> 등이 있다. 그리고 문장론에 대해 쓴 《문장강화(文章講話)》가 있다.
 
이희승(李熙昇 1897. 4. 28 ~ 1989. 11. 27) 호 일석(一石)
1930년 경성제국대학 조선어학과를 졸업, 1932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가 되고, 같은 해 조선어학회 간사 및 한글학회 이사에 취임하였다. 1940년 일본 도쿄대학[東京大學]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연구하였으며,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관련, 검거되어 일본이 망할 때까지 복역하고 8·15광복 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에 취임하였다. 1952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부원장에 취임하고 1954년 대한민국학술원 종신회원에 선임되었다.
1957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장이 되고, 1960년 정년퇴임 후에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되었으며 1963년 동아일보사 사장에 취임하였다. 1965년 대구대학 대학원장에 취임하였다가 1969년 성균관대학교로 옮겨 교수·대학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8년 학술원 부회장에 선임되고 1971년 단국대학교 동양학 연구소장으로 추대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받았고 학술원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 《국어대사전》 《역대 국문학정화》 《국문학 연구초》 등이 있고, 시집으로 《박꽃》 《심장의 파편》, 수필집에 《벙어리 냉가슴》 《소경의 잠꼬대》 등이 있다.
 
피천득(皮千得 1910. 5 .29 ~ 2007. 5. 25) 호 금아(琴兒)
1910년 5월 29일 서울에서 태어나 중국 상하이[上海] 공보국 중학을 거쳐 1937년 호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일제강점기 때 경성중앙산업학원 교사로 근무했고, 8·15광복 직후인 1945년 경성제국대학 예과교수를 거쳐 1946 ~ 1974년까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1946년 서울대학교에서 영시(英詩) 강의 시작, 1954년 미국 국무성 초청으로 하버드대학교에서 1년간 영문학을 연구하였으며, 1966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학생과장을 역임했다. 2007년 5월 25일에 세상을 떠났다.
1930년 《신동아》에 《서정소곡(抒情小曲)》을 처음으로 발표하고 1932년 《동광》에 시 《소곡(小曲》(1932), 수필 《눈보라 치는 밤의 추억》(1933) 등을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다. 대체로 투명한 서정으로 일관, 사상·관념을 배제한 순수한 정서에 의해 시정(詩情)이 넘치는 생활을 노래하였다. 첫 시집 《서정시집》(1947)에는 그리움을 꿈으로 승화시킨 《꿈》이나 《편지》, 소박하면서도 전통적인 삶의 서정을 노래한 《사랑》 따위의 동심과 자연을 노래한 시가 상당수 실려 있다.
그의 문학세계는 시보다 오히려 수필을 통해 진수가 드러난다. 생활에 얽힌 서정적이고 주관적·명상적인 것을 소재로 삼는 그의 수필은 섬세하고도 다감한 문체로써 서정의 세계를 수필화하고 있다. 대표적 수필로 1933~1934년에 발표한 《눈보라 치는 밤의 추억》 《기다리는 편지》 《은전 한 닢》등이 있다. 그외에도 특히 《수필》은 수필 형식으로 쓴 수필론으로, 은유법을 적절히 구사해서 수필의 본질과 특질을 잘 나타낸 그의 대표적 작품이다.
이밖에도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토머스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의 시구를 부정하면서 봄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봄》, 여성의 미는 생생한 생명력에서 온다는 《여성의 미》, 지휘자보다 무명의 연주자를 택하겠다는 《플루우트 플레이어》, 영국 대사관에서의 엘리자베스 여왕 생일 축하 가든파티에 참석한 소회(所懷)를 쓴 《가든 파아티》, 성모 마리아상과 같은 구원의 여인상을 찾는 《구원의 여인상》 등 수많은 수필 작품이 있다.
수필 이외의 작품으로는 시집 《금아시문선》(1959)과 《산호와 진주》(1969), 번역서 《소네트의 시집》(1976), 평론 《노산시조집을 읽고》(1932)와 《춘원선생》(1961) 등이 있다.
 
이무영(李無影 1908. 1. 14 ~ 1960. 4. 21)
충청북도 음성(陰城)에서 출생하였다. 1925년 도일, 세이죠[成城]중학교에 다니다가 일본작가 가토 다케오[加藤武雄] 문하에서 수업, 1932년 장편 《지축을 돌리는 사람들》을 동아일보(東亞日報)에 연재, 이어 《B녀의 소묘》 《창백한 얼굴》 《오후 영시(零時)》 등의 단편과 희곡 《탈출》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보했다.
1933년 이효석(李孝石) 등과 ‘9인회’ 동인이 되었고 1934년 동아일보사 학예부 기자가 되었으며 1936년부터 문예지 《조선문학》을 주재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농촌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제1과 제1장》 《흙의 노예》 등 우수작들을 발표했다.
일제강점기 말(1942∼1945)에는 《대동아전기(大東亞戰記)》 《개천촌 보고》 등 친일적인 글들을 남겼다. 1951년 해군정훈감(海軍政訓監)이 되고 문총(文總) 최고위원을 역임했으며, 1956년 《농부전초(農夫傳抄)》로 제4회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작품에 《명일의 포도》 《세기의 딸》 《먼동이 틀 때》 《농민》 등이 있고, 단편집 《취향(醉香)》 《산가(山家)》 등이 있다.
 
양주동(梁柱東 1903. 6. 24 ~ 1977) 호 무애(无涯)
1928년 일본 와세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으며, 그 이전 1923년 시지(詩誌) 《금성(金星)》을 발간하였다. 1928년 평양 숭실전문(崇實專門) 교수에 취임하고, 1929년 《문예공론(文藝公論)》을 발간, 1940년 경신중학(儆新中學) 교사로 취임했다. 1945년 동국대학교 교수가 되고, 1954년 대한민국학술원 종신회원에 선임되었다. 1958년 연세대학교 교수에 취임하여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고, 1962년 다시 동국대학교 교수가 되어 동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대한민국학술원상을 수상하고 정부로부터 문화훈장·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수여되었으며, 신라 향가(鄕歌) 등 한국 고가(古歌)를 연구하여 초기 국어학계에 큰 업적을 남겼다.
저서로 《조선고가연구(朝鮮古歌硏究)》 《여요전주(麗謠箋注)》 《국학연구논고(國學硏究論考)》 《국문학고전독본(國文學古典讀本)》 등이 있고 시집으로 《조선의 맥박》, 에세이집으로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 《인생잡기(人生雜記)》 등이 있다. 역서로 《T.S.엘리엇 전집》 《영시백선(英詩百選)》 《세계기문선(世界奇文選)》 등이 있다.
 
조지훈(趙芝薰 1920. 12. 3 ~ 1968. 5. 17)
경상북도 영양(英陽)에서 출생하였다. 엄격한 가풍 속에서 한학을 배우고 독학으로 중학과정을 마쳤으며, 혜화전문학교(惠化專門學校, 현 동국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39년 《고풍의상(古風衣裳)》이 《문장(文章)》에 추천되면서 등단하였다. 같은 해 《승무(僧舞)》, 1940년 《봉황수(鳳凰愁)》를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 후, 고전적 풍물을 소재로 하여 우아하고 섬세하게 민족정서를 노래한 시풍으로 기대를 모았고, 박두진(朴斗鎭) ·박목월(朴木月)과 함께 1946년 시집 《청록집(靑鹿集)》을 간행하여 ‘청록파’라 불리게 되었다. 이후 경기여고 교사를 지내다가 고려대학교 문리과(文理科)대학 조교수로 취임하여 교수에 이르렀다.
1952년에 시집 《풀잎 단장(斷章)》, 1956년 《조지훈시선(趙芝薰詩選)》을 간행했으나 자유당 정권 말기에는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되어 민권수호국민총연맹, 공명선거추진위원회 등에 적극 참여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조지훈의 시풍의 전환을 맞게 되었다. 그 이전의 시가 자연과 무속 등을 주제로 한 서정적인 동양적인 미를 추구하는 것이었다면, 이 시기에 발표한 시집 《역사(歷史) 앞에서》이후에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표출하였다. 《지조론(志操論)》은 이 무렵에 쓰인 것들로 민족적인 색채가 강하게 드러난다. 1962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소장에 취임하여 《한국문화사대계(韓國文化史大系)》를 기획, 《한국문화사서설(韓國文化史序說)》 《신라가요연구논고(新羅歌謠硏究論考)》 《한국민족운동사(韓國民族運動史)》 등의 논저를 남겼으나 그 방대한 기획을 완성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서울 남산에 조지훈 시비(詩碑)가 있다.
 
설의식(薛義植 1900 ~ 1954) 호 소오(小悟)
함경남도 서천 출생. 일본 니혼대학교[日本大學校] 사학과를 졸업하고 1922년 《동아일보》 사회부기자로 입사, 주일(駐日) 특파원·편집국장을 지내다가 1936년 일장기말살사건(日章旗抹消事件)으로 사퇴하였다. 1945년 8·15광복을 맞아 다시 입사하여 주필 겸 부사장을 역임하고, 1947년 순간(旬刊) 《새한민보》를 창간하여 그 사장에 취임하였다.
 
한용운(韓龍雲 1879. 8. 29 ~ 1944. 6. 29)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겸 시인. 본관은 청주이고 호는 만해이다.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한용운은 일제 시대 때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문학으로써 일제에 저항하는 데 앞장섰다. 또한 불교를 통하여 조선 청년 운동을 강화하였고,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종교로서의 현실 참여를 주장했다. 작품으로는 장편 소설인 《흑풍(黑風)》, 《박명》이 있고, 저서로는 시집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조선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 《불교대전》, 《불교와 고려제왕》 등이 있다.

목차소개

가을의 여정/ 나의 고향/ 신록 예찬/ 나무/ 수목/ 성(城)/ 딸깍발이/ 청추 수제/ 유순이/ 인연/ 구원의 여상/ 술
수필/ 낙엽과 문학/ 질화로/ 돌의 미학/ 헐려 짓는 광화문/ 돼지의 대덕/ 수천석두
번민과 고통/ 최후의 오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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