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 실종 77년 만에 공개된 연서,
『어린 왕자』를 꽃피운 세기의 사랑을 만나다
전 세계인이 사랑한 『어린 왕자』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이 작품의 주요한 모티프인 장미는 누구를 가리킬까? 『생텍쥐페리와 콘수엘로, 사랑의 편지』에 수록된, 생텍쥐페리가 그의 아내 콘수엘로와 주고받은 168통의 편지는 독자들의 궁금증에 한 가지 답을 준다. 1930년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시점부터 생텍쥐페리가 비행중 실종된 1944년까지, 15년간 서로에게 부친 편지들이 작가의 내면과 창작의 이면을 생생히 드러낸 덕분이다. 비행사였던 생텍쥐페리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어머니, 동료들에게도 많은 편지를 남겼지만, 그 글들과 달리 연인이자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는 때론 격정적이고, 때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관계의 편린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이 책은 그간 베일에 가려진 콘수엘로의 삶과 이들 부부의 관계뿐 아니라 앙투안의 창작의 순간을 재생하며, 결국 그 장미는 다름 아닌 콘수엘로였음을 보여준다. ‘생텍쥐페리 재단’과 갈리마르 출판사의 협업을 통해 168통의 편지, 앙투안과 콘수엘로가 직접 그린 그림과 육필원고, 보도사진 등 72점의 이미지를 촘촘히 수록한 이 책은 명작을 탄생시키기까지 두 작가의 불꽃 같은 사랑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나의 모든 것, 난 당신에게 충실해. 나는 당신을 세계 곳곳으로 데려갈 거고, 우리는 별들을 길들일 거야.”
_「앙투안이 콘수엘로에게」
“당신에게는 빛이 있어. 당신은 그 빛을 어디서 얻었지? 그 빛을 어떻게 돌려줘? 자기 행성을 떠난 어린 왕자들이 노래하게 만드는, 그 왕자들을 소생시키는 달빛은 어디로 스며들지?”
_「콘수엘로가 앙투안에게」
“편지를 써줘…… 편지가 오면 내 마음에도 봄이 와”
생텍쥐페리와 그의 아내 콘수엘로,
그들의 열정적이고도 파란만장했던 운명 속으로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운명의 여인 콘수엘로를 만난 것은 1930년 9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프랑스 문학을 주제로 한 강연장에서였다. 생텍쥐페리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콘수엘로에게서 시적이고 창조적인 분신을 발견하고 첫눈에 매료되었고, 석 달간의 동거 끝에 1931년 결혼식을 올린다. 앙투안은 콘수엘로를 ‘황금 깃털’ ‘병아리’ ‘오이풀’ 등의 애칭으로, 콘수엘로는 앙투안을 ‘파푸’ ‘토니오’ 등의 애칭으로 부르며 그들만의 “몽상적 영토”(갈리마르 편집자, 알방 스리지에)를 공유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첫 만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앙투안이 보낸 편지에서 자신을 ‘보물을 품지 못하는 우울한 아이’에 빗댄 것처럼, 둘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북아프리카부터 남아메리카까지 세계의 상공을 누비던 그의 불안정한 생활 탓도 있지만, 두 사람의 기질 차이도 한몫을 했다. 엘살바도르 출신으로 자주 고립감을 느꼈던 콘수엘로는 친구들과 자유로운 교류를 원한 반면, 긴 비행에 지친 앙투안은 그녀가 안정적인 보금자리 역할을 해주길 바란 것이다. 때로 이런 갈등은 격화되어 앙투안은 『어린 왕자』를 인용해가며 “‘꽃은 언제나 어린 왕자 탓을 했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떠났다!’ 이게 바로 내가 불평하는 이유야”(204쪽)라고 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는 유일한 안식처였으며―“앙투안은 용암처럼 들끓는 알제에서 외롭고, 콘수엘로는 밀림 같은 뉴욕에서 외롭다. 세상천지에 오로지 둘뿐이다”(생텍쥐페리의 증손자 올리비에 다게, 22쪽)― 서로의 창작 활동을 독려하는 동반자 관계였다. 비행으로 평탄치 못한 일상을 보내는 남편에게 콘수엘로는 끊임없이 글쓰기를 독려하고, 전작들의 반응을 전하며 심정적 지지를 놓지 않는다.
“토니오. 소설 열심히 써서, 아주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해봐. 우리의 이별, 절망, 우리 사랑이 흘린 눈물이 당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물들의 신비를 꿰뚫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_「콘수엘로가 앙투안에게」
“계속해야 해. 허튼 생각 하면 안 돼, 남편. 난 당신이 그 책을 끝내야 한다고 굳게 믿어. 책이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전투야. 글을 써, 절대 피하지 말고. 가능하면 지금 있는 곳에서, 안전하게 있다면(나는 신경쓰지 마) 꼭 쓰도록 해.”
_「콘수엘로가 앙투안에게」
“『어린 왕자』는 당신의 뜨거운 불길 속에서 태어났지”
길들여진 한 송이 꽃과의 사랑을 담기까지,
서간집으로 만나는 『어린 왕자』의 기원
관계에 대한 시적인 통찰을 담은 책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으로 꼽히는 『어린 왕자』. 놀랍게도 『생텍쥐페리와 콘수엘로, 사랑의 편지』에서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면이 펼쳐진다. 앙투안은 ‘어린 왕자와 길들여진 한 송이 꽃의 사랑’이라는 있을 법하지 않은 사랑을 우수에 찬 마음으로 떠올리면서 콘수엘로와 함께 시를 누렸고, 그 시는 부부를 이어주는 끈이었다. 앙투안이 아직 『어린 왕자』(1943)를 한 줄도 쓰지 않았고 그림 한 점도 그리지 않은 1940년, 콘수엘로가 쓴 편지에는 이미 여인이 장미로 변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콘수엘로와 함께한 초기부터 그녀를 ‘오이풀’이라고 불렀던 앙투안은 이야기 초반에 꽃을 오이풀 모양으로 그린 바 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에서 어린 왕자가 한 그루 나무가 쓰러지듯 서서히 쓰러진 것 역시 콘수엘로가 앙투안을 나무에 비유하곤 했기 때문이다.
다른 데서 날아든 씨앗, 멋 부리는 꽃, 그 꽃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어놓을 어린 왕자, 어린 왕자에게 한마디도 지지 않지만 바람을 무서워하는 꽃, 기침을 하고―콘수엘로에게는 천식이 있었다― 가시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면서 다정함을 감추는 꽃…… 『어린 왕자』 속 왕자와 꽃의 모습은 서간집 속 앙투안과 콘수엘로의 모습과 겹치며, 혼란스러웠던 부부의 삶이 앙투안을 이 이야기로 이끌었으리라 짐작게 한다.
“난 곧 오이풀이 될 거야. (...) 나는 예쁜 오이풀이 될 거야. 오이풀은 길을 잃었어. 죽었어. 그 예쁜 오이풀을 초록 풀밭으로 데려가서 꽃과 노래로 옷을 입혀줘. 더는 누구도 그 오이풀에 상처 주지 못하게. 오이풀은 파푸의 시가 될 거야, 파푸가 흘린 그 많은 피로 쓴 시!
_「콘수엘로가 앙투안에게」
“난 어린 왕자의 세계를 사랑하고, 그 세계 속을 거닐어…… 거기선 아무도 날 건들지 못하지…… 비록 가시는 네 개뿐이지만, 당신이 그 가시를 보아주고, 세어봐주고, 기억해주니까……”
_「콘수엘로가 앙투안에게」
문학 독자들의 허기를 채울 충실한 아카이빙
갈리마르 출판사·생텍쥐페리 재단의 협업으로 작가의 삶과 시대를 복원하다
스타 부부의 가려진 삶과 『어린 왕자』의 탄생 배경을 전하는 것 외에 이 서간집이 가진 미덕은 또 있다. ‘생텍쥐페리 재단’과 갈리마르 출판사의 협업을 통해 육필원고, 작가가 직접 그린 어린 왕자 삽화(434쪽) 등 풍성한 자료를 수록한 것은 물론, 편지가 쓰인 당대의 맥락을 상세한 각주로 복원했기에 생텍쥐페리의 삶과 시대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앙투안이 당대 문화계를 지배한 초현실주의자들(앙드레 브르통, 막스 에른스트 등)과 교류한 점이나 이를 통해 초현실주의 시의 언어유희를 시도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또한 오랜 비행 경력을 자랑하는 그가 상공이나 이국에서의 풍광을 묘사한 부분은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시공간을 경험하게 할 것이다.
“날씨가 나빴어. 쉼없이 바람에 얻어맞았지. 때로 푸른 하늘이 나타나면 3천 피트 고도에 피해 있었어. 먼지 하나 섞이지 않은 바람이 세차게 일면 그 차가운 기운에 땀이 마르지. 그런 바람은 위험하진 않아. 하지만 얼음같이 차가운 공기의 흐름이 너무 세서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지. 그러면 부동의 황금빛 휴식을 멈추고 다시 지상의 무질서와 흔들림과 참을 수 없는 열기 속으로 들어가야 해. 탕헤르, 죽어 있는 작은 도시.”
_「앙투안이 콘수엘로에게」
무엇보다 제2차세계대전시 정찰병으로 참전한 바 있는 그가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도 가감 없이 드러나는데, 당대 전쟁을 둘러싼 지식인들의 입장 가운데 하나로서 참고할 만하다. 실상 앙투안은 비시 정부의 수반 페탱도, 런던에서 ‘자유 프랑스’를 이끌며 독일에 맞선 드골도 지지하지 않았고 이런 태도로 인해 뉴욕에 머물던 시기, 비시 정부 협력자로 비난받았다. 하지만 그는 어느 쪽도 아니었고, 다만 그가 택한 것은 ‘양심’에 충실하기 위해 전쟁터에 출격해 비행을 마다하지 않는 실천이었다. 정치적 외로움과 전쟁의 불안 속에서 앙투안을 위로하는 것은 끝내 그의 다정한 별, 콘수엘로였을 것이다.
“그래도 난 떠나. 서류 작업도 아니고 전투비행을 하러 간다고. 그쪽으로 지원했어. 난 전쟁을 하러 떠나. 나는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없어. 내가 아는 한, 양심에 거리낌 없이 평화로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야. 최대한 고통받는 것. 가능한 한 많은 고통을 찾아 나서는 수밖에 없어.”
_「앙투안이 콘수엘로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