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대한 것은 오직 깨끗한 공기와 물,
그리고 새로운 삶이었다”
서로 다른 생존을 꿈꾸는
엄마와 딸의 디스토피아 에코 픽션
기후 위기로 세상이 파괴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야생의 땅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모녀의 이야기를 그린 『새로운 야생의 땅』이 출간되었다. 대학에서 소설 창작을 공부하고 미국의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This American Life> 프로듀서로 경력을 시작한 작가 다이앤 쿡은 진실을 전하는 소설의 힘을 절감한 뒤 소설 창작의 세계로 돌아가, 2015년 첫 소설집 『인간 대 자연Man V. Nature』을 발표했다. 이 책으로 가디언 퍼스트 북 어워드, 빌리버 북 어워드 최종후보에 오르며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딘 작가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긴장관계라는 관심사를 한층 더 깊게 파고들어 장편소설 작업에 착수했고, 2020년 『새로운 야생의 땅』을 발표해 출간 즉시 평단과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얻었다. 뒤이어 “우리 시대의 환경 소설. 충격적일 정도의 선견지명이 빛을 발한다”는 평과 함께 그해 부커상 최종후보에 지명되었고, 세번째 부커상 수상에 도전하는 영국의 대표작가 힐러리 맨틀을 제치고 첫 장편소설로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무너져가는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 야생의 땅으로 떠난 모녀의 힘겨운 싸움을 그린 이 이야기는 “인간성에 대한 잔혹하고도 매력적인 우화. 시의적절한 것을 넘어 마치 최근에 재조명받는 고전인 듯 시대를 초월한 탄탄함을 갖췄다”(워싱턴 포스트) 등의 극찬을 받으며 그해 <워싱턴 포스트>와 NPR, 버즈피드 선정 ‘올해의 책’, <가디언> 선정 ‘올해의 SF’에 올랐다. <클로버필드> <혹성탈출> 시리즈의 감독 맷 리브스와 워너브러더스가 공동 제작해 텔레비전 시리즈로 제작된다는 소식이 발표되어 다시 한번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삶을 위해 선택한 새로운 야생의 땅
그곳에서 마주한 투명하고 잔혹한 진실
수많은 땅이 망가지고 인간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거주지인 ‘시티’는 인구 과밀 등으로 심각하게 오염된 근미래. 서서히 죽어가는 다섯 살 난 딸 애그니스를 살리기 위해 비어트리스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다.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곳으로 아이를 데려가는 것. 그러기 위해 비어트리스는 애그니스와 함께 한 가지 실험, 즉 야생의 땅 ‘윌더니스’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모색하는 실험에 참가하기로 한다.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발된 두 사람과 다른 열여덟 명의 참가자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그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떠나기 전 기대했던 삶 이면에 전혀 예기치 못한 난관이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참가자들은 의식주에 필요한 거의 모든 물자를 자연에서 자급자족해야 할 뿐 아니라 한 장소에 일주일 이상 머무를 수 없으며,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는 인간이 생활했던 흔적을 완벽하게 지워야 한다. 출산을 하는 순간조차 문명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누군가 세상을 떠나거나 부상을 당해도 수치의 증감으로 기록될 뿐이며, 사소한 규칙이라도 위반할 경우 그들을 감시하고 감독하는 ‘레인저’에 의해 즉시 제지를 당한다. 피난처로 보였던 윌더니스는 사실 도시와는 다른 의미로 위험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규칙에 따라 원시시대 유목민에 가까운 생활을 이어가며 생존의 기술을 터득해나가는 사이 그들에게서는 도시인의 흔적이 빠르게 사라진다. 위험이 도사리는 야생의 땅에서 목숨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가 된 그들은 무자비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라는 자연의 법칙을 받아들이며 무리의 숫자는 조금씩 줄어간다.
한편 애그니스는 윌더니스에서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을 누구보다 빠르게 체득하고, 거의 야생동물처럼 모든 감각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무리에서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자신의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자라나는 애그니스를 바라보며 비어트리스는 안도감보다는 이질감과 두려움을 느끼고, 이 실험을 통해 애그니스의 목숨을 구한 대신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딸을 잃을 수도 있으리란 예감을 한다. 애그니스는 언제나 엄마의 사랑을 원하지만 묘하게 자신을 멀리하는 듯한 비어트리스의 태도를 보며 갈망과 원망을 동시에 느낀다. 그리고 시티에서의 삶을, 유독한 공기로 오염되어 모든 생명이 죽어가는 그곳에서의 삶을 그리워하는 듯한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 채 이별을 예감한다.
자연과 인간, 엄마와 딸의 관계를 다시 묻는
이 시대에 반드시 읽어야 할 디스토피아 에코 픽션
『새로운 야생의 땅』은 독자를 단숨에 야생지대 한복판으로 초대한다. 취재차 미국 오리건주의 사막지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실제로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땅을 돌아다니고 퓨마나 엘크 등의 야생동물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했던 작가의 경험은 작품의 정교한 무대를 만들어내고 생생함을 더한다. 아름답지만 냉혹한, 삶의 터전으로서의 야생지대와 걷잡을 수 없이 오염되어가는 도시의 묘사에서 우리는 근미래에 대한 놀라운 상상력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닥친 현실을 볼 수 있다. 깨끗하고 안전한 물과 공기가 더이상 당연하지 않은 세상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어쩐지 익숙하고도 섬찟하다. 이곳에서 인물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의 생존을 꿈꾸며, 결국 무겁고도 어려운 질문을 맞이한다.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또 생존을 위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엄마와 딸의 관계가 있다. 반평생을 도시에서 자라 그곳의 참상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으면서도 때때로 그곳을 그리워하는 비어트리스와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야생지대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스스로를 그곳에 사는 동물처럼 여기는 애그니스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주변과 관계를 맺는 방식까지 모든 것이 다르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에 대한 애정과 소유욕을 놓지 못한 채 상대를 끊임없이 밀고 당긴다. 그리고 스스로 다른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어 마침내 비어트리스의 입장에 서게 된 애그니스의 깨달음은 어느 시대, 어느 조건에서도 쉽게 정의내리기 어려운 모성과 모녀관계의 복잡함에 대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완전히 무너진 세계에서 서로 다른 삶을 꿈꾸던 비어트리스와 애그니스 앞에는 과연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새로운 야생의 땅』은 마지막 책장을 덮은 뒤에도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이 시대에 반드시 읽어야 할”(USA 투데이) 디스토피아 에코 픽션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