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바르게 이해하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흔히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초창기를 뒤흔든 6.25전쟁에 대해 바로 알고 올바른 역사관과 국가관을 갖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서(MacArthur)의 해임 후, 6.25전쟁을 진두지휘한 장군 리지웨이.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잊어버린 이 영웅은 중공군이 밀려들어와 자칫 다시 잃어버릴 뻔 했던 대한민국을 구해내고 6.25전쟁의 중후반을 책임진 뛰어난 지휘관이었다. 소설가 복거일은 리지웨이의 시선을 따라 6.25전쟁을 조망하고 있다. 독자들은 잊혀진 전쟁, 6.25의 후반부 양상을 현미경으로 바라보듯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우리 사회엔 6.25전쟁을 다룬 저서들이 그것의 중요성에 비해 너무 적고 일반인들을 위한 저서들은 더욱 드물다. 게다가 그 동안 북한으로 기우는 지식인들은 북한의 침입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감추거나 왜곡하려고 시도해 왔다. 때문에 우리 사회에선 그 전쟁의 과정보다 오히려 기원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이유다. 그렇다고 이 책이 리지웨이의 시선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6.25가 터지기 직전의 국제정세부터 시작해서 북한의 남침과 초창기 국군의 대응, 미군의 참전과 인천상륙작전과 중공군의 개입까지 저자는 생생한 필체로 전쟁의 양상을 그려내고 있다.
리지웨이의 수습
“중공군은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맥아서의 기대는 어긋났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후 절대적 권위를 얻었던 맥아서의 입지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오랜 국공내전으로 다져진 중공군은 물밀듯한 기세로 국군과 미군을 격파하며 진격해 왔다. 서울을 다시 빼앗기고 전선도 끊임없이 밀려 내려오는 상황에서 국군과 미군의 사기 역시 끝없이 떨어져 있었다. 1950년 12월 25일 부임한 리지웨이가 처음 본 것은 전의를 잃은 군인들이었다. 리지웨이가 제일 먼저 착수한 것은 그들에게 ‘싸움의 의지’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리지웨이는 오히려 미군 병사들이 그렇게 어려운 여건 속에서 그렇게 용감하고 끈기 있게 싸운 것을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병사들을 탓하는 대신 용기를 주고 동기 부여를 한 것이다. 또한 그는 지휘관들을 꾸짖었다. 특히 고지들을 버리고 오직 길을 따라 기동하는 관행을 질타했다. 편안하게 싸우려는 태도 때문에 고지들을 버리고 길만 따라가는 것은 보병 선배들을 욕되게 하는 수치스러운 일임을 지적했다.
우리가 잊은 영웅
1951년 봄 리지웨이의 전략이 주효해서 전황이 안정되자 미국은 휴전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인적 자원이 막대하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승리의 가능성은 사라진 터였고 미국 시민들은 이미 전쟁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중국은 처음엔 휴전회담에 부정적이었지만 1951년 5월 마지막 공세가 실패하자 태도를 바꾸었다. 지난한 휴전협상 끝에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에 양쪽이 서명함으로써, 한반도의 총성이 멈췄다.
리지웨이에 대해 “미군의 역사에서 발휘된 가장 큰 개인적 지도력”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만큼 리지웨이는 원만한 성격과 차분한 용기를 가진 뛰어난 지휘관이었다. 그는 사기가 땅에 떨어진 미군과 국군을 추스르고 반격의 기회를 만들어냈다.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함에 있어 맥아서, 백선엽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휘관인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리지웨이를 기억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