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는 총 5개의 대륙섬이 존재합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세계섬인 유라시아 위에서 우리 인류는 이동과 정착을 반복했고, 이동의 과정에서 나 아닌 존재와 어우러지거나 생존을 위한 경쟁을 통해 하나가 되거나 혹은 통합과 복속의 과정을 거치며 다시 머무는 과정을 반복해왔습니다.
이 거대한 세계섬의 역사를 유라시아사라는 범주로 규정한다면, 유라시아사의 본질은 한마디로 끊임없는 연속성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 어떠한 부족과 문명도 고립과 독자적 발전이란 있을 수 없고, 서로 간의 교류와 경쟁, 투쟁의 지난한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생존과 발전을 거듭해온 것이 유라시아사 그 자체입니다.
이 역사를 문자로 기록되어 드러난 것으로 한정한다면 우리가 이 세계섬 위에서 겪은 생존의 과정은 기껏해야 3~4천 년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의 위대한 여정을 밝히는 데 있어 턱없이 짧은 기간입니다. 인류의 위대함은 끝없는 호기심, 즉 지적 욕구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역사의 편년을 조금씩 끌어올립니다.
2021년 9월에 펴낸 졸고 유라시안 엔드게임 2: 지상 최대의 퍼즐 에서는 고착성이 강한 지명에 근거한 음운론과 더불어, 고대인의 관념 체계가 반영된 신화에 드러난 상징체계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새 토템인 수리 eagle 로 상징되는 수리부엉이 Eurasian Eagle-owl 와 솔개 Black kite 가 각각 유라시아의 북방과 남방에 서식하는 지역을 살핀 바 있습니다. 강성운, 《유라시아 엔드게임 - 지상 최대의 퍼즐》, 퍼플: 2021, p.217.
실제로 신화와 지명에 반영된 두 새의 서식 지역이 중국 중남부 지역과 요하 지역을 거쳐 한반도 전역에 걸쳐 겹치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를 토대로 한국인의 원류는 북방에서 남하한 이들과 남방에서 북상한 이들 간의 야합 이후 동쪽으로 이동하였을 것이라는 가정이 집필의 강력한 동기 중 하나였지만, 처음에는 확신까지 이르지는 못하였습니다.
확신에 이르게 된 계기는 일본의 신화체계 분석을 마친 후 내린 결론에 있었습니다. 특히 신무 神武 신화에 드러난 상징기호에 의거, 황하 중류 일대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이르기까지 놀랍도록 일관된 신화체계가 이어진 것입니다. 유라시아사의 본질이 비단 문화뿐 아니라 관념의 체계적으로도 연속성에 있다는 방증입니다.
전편 출간 직후인 2021년 11월 네이처 Nature 에 게재된 한 논문 Robbeets, M., Bouckaert, R., Conte, M. et al., 《Triangulation supports agricultural spread of the Transeurasian languages》 Nature 599, 2021. p.616–p.621 https://doi.org/10.1038/s41586-021-04108-8
은 졸저의 논지를 뒷받침하는 것이어서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동 논문에는 고대 한국어와 일본어의 기원이 내몽골 부근 요하 일대라는 주장과 함께 이곳에서 남하한 후 동쪽으로 길게 이동한 영역이 도표로써 제시되었습니다. 이는 졸저의 논지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종의 고립적인 언어로 존재해왔던 한국어의 분포지역이 남방의 솔개와 북방의 수리부엉이 서식지가 겹치는 지역과 일치한다는 사실은 고대인의 신화체계 속에 드러난 동식물에 의한 기호적 상징은 물론, 지명과 칭호에 드러난 음운적 상징이 고대사 연구에 있어 얼마나 유용한 보조적 분석 도구가 되는지 실증한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유전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한국인과 가장 가까운 부족은 몽골족과 만주족이라는 신앙과도 같은 믿음에 대하여, 고대 신화에 드러난 상징체계 분석을 통해 이 두 부족은 의외로 한국인과 거리감이 있다고 단언했던 대목입니다. 두 부족의 상징체계 속에는 흔히 /아르/卵 라는 음운 기호로 표출되는 이른바 남방적 요소가 결여가 됩니다.
금번에 펴내는 졸고에서는 /아르/卵 역시 이른바 천손 출신이라는 고대 북방 부족의 신념을 음운으로 표출한 것임을 밝혔습니다. 천손 신화를 가진 몽골족과 만주족 신화의 경우 남방을 경유해서 드러나는 이러한 음운적 상징이 반영되지 않습니다. 이는 고대 한국어 화자 집단의 남하 이전의 단계에 두 부족이 북방에 잔류했거나 분리되었음을 뜻합니다.
졸고에서는 음운적 고찰을 통해 그동안 밝힐 수 없었거나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유라시아 고대사의 실타래를 풀어보았습니다. 이 과정 중에 문무왕과 신라의 보물 만파식적의 소재지를 알 수 있었고, 그동안 난제로 여겨졌던 서수 체계 해독에 최초로 성공하였습니다. 공개키는 일연의 삼국유사와 상서, 그리고 사마천의 사기 속에 간직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졸렬한 재능을 아끼지 않고 음운 기호와 문자 기호에 이르기까지 분석의 범위를 넓혀 졸고를 펴내게 되었습니다. 전편과 같은 거창한 명분보다는, 단지 세상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자식에게 있어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 역시 감출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선배 제형의 편달과 뜻있는 후학의 가필을 고대합니다.
인생은 삶의 가치를 찾는 짧은 여정입니다. 오직 중력만이 중력중심을 향한 절대적 지향성을 갖듯, 그 가치가 무엇이든 누구나 자신만의 지향성을 갈구합니다. 누군가 당신의 지향성은 무엇인가 묻는다면, 졸고를 통해 인류와 필자가 속한 커뮤니티에 대한 일말의 기여라 답하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 난 의미를 집필의 과정에서 찾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