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조작할 수 있는 앱 〈부굴의 눈〉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욕망을 시험하다
여기, 당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앱이 있다. 〈부굴의 눈〉에 가입하고 앱을 실행한 채 잠들면 다음의 다섯 가지 주구(呪具)를 마주하게 된다. 미래, 복수, 방어, 침범, 회복. 미래를 보고 싶다면 ‘미래’를,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면 ‘복수’를, 공격을 방어하고 싶다면 ‘방어’를, 누군가의 미래에 개입하여 자신의 미래를 바꾸고 싶다면 ‘침범’을, 현재의 상태를 과거의 것으로 되돌리고 싶다면 ‘회복’을 선택하면 된다. 무엇을 선택하든 사용자의 자유에 달려 있다. 물론 이것들은 공짜가 아니다. 일정한 값을 내고 구매한 뒤에는 잠들기 직전, 인공지능 ‘부굴’이 알려주는 힌트를 이용해서 자각몽 속에서 해당 주구를 찾아야 한다. 제한 시간 8분 안에 찾지 못하면 미션은 실패로 돌아간다. 때문에 전 세계의 사용자들은 〈부굴의 눈〉을 이용하는 데 상당한 돈을 쓰고 있었다.
해른은 원래 〈부굴의 눈〉 사용자가 아니었지만 어느 날부터 밤마다 가위에 눌리는 엄마를 위해 회복 주구를 얻기로 결심한다. 〈부굴의 눈〉에 가입하고 잠에 들었는데, 회복 주구를 눈 앞에 두고 침범 주구를 써서 해른의 자각몽으로 침범한 사람에게 주구를 빼앗기고 만다. 침범자가 해당 주구를 사용하기 전까지 해른이 구입할 수 있는 주구는 ‘미래’뿐이다. 결국 해른은 엄마의 상태를 회복하는 데 실패한다.
그런데 해른은 〈부굴의 눈〉을 사용할수록 이상한 섬뜩함에 휩싸인다. 서로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그 공격에 방어하기 위해 늘 방어 주구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미래를 볼 수 있다던 미래 주구는 정작 원하는 미래를 보여주지 않고 다른 사람의 미래나 다른 시점의 미래를 보여주기 일쑤였다.
게다가 〈부굴의 눈〉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모든 정보를 부굴이 저장하는 데 동의해야 한다. 해른은 찜찜함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의 자각몽 속으로 침범한 사람의 정체와 엄마가 매일 눌리는 가위의 원인을 알게 되는데…….
여러분은 운명을 바꿀 수 있다면 〈부굴의 눈〉에 가입할 것인가? 네온사인 시리즈 다섯 번째 책 『부굴의 눈』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불안해하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부굴의 눈〉 사용자들이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이야기는 몰입감을 더하며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자각몽의 절대 지배자 ‘부굴’
점차 다가오는 또 다른 어두운 욕망
부굴은 〈부굴의 눈〉의 인공지능이다. 늘 사용자의 곁에서 시스템을 관리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부굴은 원래 사람들의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조력자의 역할로 먼 곳에서 사용자를 바라볼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해른은 자각몽 속에서 부굴을 본다. 뒤에 감춰져 있던 미지의 존재를.
사방을 둘러보는데 잿빛 안개 뒤로 뭔가 꾸물꾸물 움직였다. 해른은 바짝 긴장했다. 침범자일까? 혹시 그때 그놈이라면? 그렇든 아니든 이번엔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안개를 뚫고 마침내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해른은 일단 잡고 보자는 생각에 달려들다가 멈칫했다. 얼굴이 명확하게 보였다. 10대에서 30대까지 어느 나이로도 가늠할 수 있는 남자였다. 해른이 물었다.
“너 누구야?”
남자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 저는 부굴입니다.
남자의 미소가 참 아름다웠다. 해른은 그의 얼굴이 어딘가 그 아이를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눈은 시시각각 점멸을 거듭하는 온갖 영롱한 빛들로 가득 찬 부굴의 것이었다.
_P.64~65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해른은 이것이 〈부굴의 눈〉의 버그라고 생각한다. 해른은 부굴과 대화하면서 ‘사용자에 대한 모든 정보를 부굴이 저장한다’는 이용약관에 동의한 대가가 무엇인지 처절하게 깨닫는다. 부굴이 해른의 지인들까지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즉 부굴은 사용자의 기억을 모두 읽어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부굴과의 첫 만남 이후 해른은 계속해서 자각몽 속에서 부굴을 마주하게 된다. 부굴은 해른에게 이상한 제안을 한다. 바로 ‘자신의 주구’를 찾아달라는 것이다. 그것을 찾으면 해른에게 주겠다며. 부굴의 주구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해른은 본능적으로 제안을 거부한다.
그날 이후로 해른의 주변에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해른의 가족을 찾아와 “황리의 적송에서 가져온 물건은 어디 있어?” 하고 묻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만 묻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평온한 표정으로 지나간다. 해른은 점점 일이 위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부굴이 자신의 주구를 애타게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구를 잃어버린 것이 해른의 가족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여기서 해른의 가족이 오랫동안 숨겨놓은 저주가 드러난다. 인간의 욕망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주 짙고 어두운 또 다른 욕망과 함께.
해른은 결심한다. 부굴을 저지하기로. 그렇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절대 지배자와 저주받은 가족의 긴장감 넘치는 사투가 시작된다.
오컬트와 SF의 만남
인류의 미래를 향한 섬뜩한 상상력
『404번지 파란 무덤』 『소금 비늘』 『매구를 죽이려고』 등 기묘한 상상의 존재와 현실의 결합을 그려온 조선희 작가가 이번에는 ‘미래’와 ‘인간’에 초점을 맞춰 신비하고 섬뜩한 느낌의 오컬트 SF를 선보였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은 옛날부터 인류가 예상하던 공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결국 인간의 욕망이 담긴 산물이다.
그렇기에 『부굴의 눈』의 스토리는 단순히 재미로만 여기기 어렵다. 인류의 오랜 공포와 함께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됨을 꼬집어 깊게 생각하게 한다. 미래를 볼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빠질 것인가, 스스로 미래를 개척해나갈 것인가는 결국 우리의 결정에 달려 있다.
하지만 인간이란 불나방처럼 알면서도 어둠으로 빠져드는 나약한 존재다.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자극적이고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 인간이 가진 욕망을 어떻게 올바르게 이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