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의 집결된 힘은 역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
현대사회는 정부나 기업뿐만 아니라 언론과 시민·사회단체들까지도 대중들의 여론을 무시하고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는 세상이다. 사소하게는 행정관청에서 지역에 시설물 하나 놓는 것부터 크게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후보를 결정할 때도 여론조사 결과를 크게 중요시한다. 이처럼 대중들은 단순히 의견을 내는 것으로도 사회의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대중들의 집결된 힘은 역사를 변화시키는 큰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우리 현대사만 보더라도,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1987년 6월항쟁, 2008년 광우병 사태, 2017년 촛불혁명 등은 모두 대중들의 집결된 힘으로 독재에 저항하여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여 더 나은 민주주의를 실현한 것이었다.
이런 군중에 관한 최초의 탐구를 담은 책이 바로 《군중심리》이다. 19세기 말, 프랑스혁명 이후,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이 한창 격화되던 시기, 강력한 힘을 지닌 ‘군중’의 심리와 행동에 관해 최초의 주목하게 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19세기 말 군중과 현대 군중의 개념이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사회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주요한 도구로서 여전히 유효하다.
‘군중’ 집단의 위력과 존재에 주목한 귀스타브 르 봉
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이렇게 모인 군중이 집단의 힘으로 자신의 정치적 요구를 관철하는 행위는 근대에 시작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17세기 영국의 명예혁명과 18세기 프랑스혁명이 바로 그 대표적 사례가 되겠는데, 이러한 군중 집단의 위력과 존재에 대해 일찍부터 주목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프랑스 출신의 의사이자 학자인 귀스타브 르 봉이다. 프랑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귀스타브 르 봉은 파리 의과대학을 나와 의사가 되었지만, 현장 의료보다는 연구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일찍이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기 때문인지 젊어서부터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을 수시로 여행하였고, 이런 경험과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역사, 민속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 활동을 진행했다. 1870년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일어났을 때 군의관으로 참전하기도 했던 르 봉은, 파리코뮌과 제3공화국의 혼란을 겪으면서 새롭게 등장한 군중 집단의 위력을 경험하게 된다. 르 봉은 바야흐로 ‘군중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예감하며, 프랑스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중 집단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1895년 출간한 《군중심리》이다.
‘군중’ 집단의 심리와 행동에 관한 최초의 연구서
《군중심리》는 혁명과 쿠데타, 왕정복고와 전쟁이 교차하던 19세기 프랑스에서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해 역사적 격변을 만들어 낸 ‘군중’ 집단의 심리와 행동에 관한 최초의 연구 보고서이다. 의사이자 사회사상가인 귀스타브 르 봉은 파리코뮌 등을 겪으며 군중이 지닌 엄청난 힘을 보았고,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직감했다. 르 봉은 생명체를 구성하는 세포들이 모여 각각 단독으로 가지고 있던 성질과는 전혀 다른 성질을 보이듯, 개인들이 모여 구성한 군중은 개인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특성을 띤다고 보았다. 르봉은 ‘군중’이 왜 개인들이 가진 특성과는 전혀 다른 특성을 보이는지, ‘군중’이 왜 이성보다는 비합리성에, 의식보다는 무의식에 더 좌우되는지, 이러한 군중의 행동을 지배하는 원리는 무엇이며, 어떠한 리더십에 반응하는지 등을 냉철하게 고찰하였다. 이런 이유로 《군중심리》는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이해하는 데 초석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