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핵무기 배치에서 비핵화의 길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에 핵무기가 처음 배치된 것은 1953년 휴전 이후 공산권이 휴전협정 제13조 D항, 즉 “한반도에 국경 외부로부터 추가적인 무기 반입 금지” 조항을 지키지 않으면서부터다. 한반도 유사시 공산권의 무력을 격퇴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이 주한 미군에 핵무기를 배치하기 시작한 것이 1967년에는 무려 949개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아시아에서 자국 방위의 1차적 책임은 각국 스스로가 져야 한다”는 ‘닉슨 독트린 (Nixon Doctrine) ’을 선언하면서 아시아권 핵무기를 철회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주한 미군 병력을 크게 줄이고 배치된 핵무기를 다수 철수시키자 국가 안보에 위협을 느낀 한국은 1970년대 이래 ‘자주국방 (自主國防) ’의 기치 아래 적극적으로 독자적인 방위력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원자력 발전소 착공에 들어간 한국은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에도 착수하여 1975년 핵탄두의 설계까지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미국에 발각되는 바람에 미국의 다각적인 압력으로 1976년 한국의 독자적 핵무기 개발은 중단되었다. 1991년 소련 공산권이 해체되고 냉전의 완전한 종식이 현실화되면서 조지 허버트 부시 미국 대통령은 해외 기지에 배치된 모든 지상 및 해상 배치형 단거리 핵무기를 자발적으로 철수・해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같은 해 11월 8일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에 관한 선언」, 즉 “핵에너지를 평화적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하며 핵무기를 제조, 보유, 저장, 배치,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천명했다. 이후「핵무기 부재 (不在) 선언」을 발표하여 주한 미군의 핵무기 철수가 완료되었음을 확인했다. 이로써 한국은 33년 동안 계속되었던 주한 미군 핵무기 배치를 마감하고, 공식적으로 비핵화의 길을 걸어왔다.
한국의 핵무장 공론화로 들끓다
1991년 한국의 비핵화 선언 이후 북한에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그래도 한국은 핵무장 유무에 대해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2000년대 후반부터 계속되고 있는 북한의 정치적・군사적 도발이 급기야 2017년에는 핵무기급 장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4,15 등이 시험 발사에 성공하면서 한국 안보의 위기의식과 불안심리가 팽창했다. 북한의 이런 도발을 앞에 두고 미국의 핵우산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데 실패한 ‘찢어진 우산’이 아니겠냐며, 한국의 핵무장론이 상승 곡선을 타고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한 직후인 2017년 9월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0퍼센트가 핵무장에 찬성했고, 35퍼센트가 반대했다. 이는 북한의 핵무장 위협이 심화, 지속되면서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핵무장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낮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 주목되는 현상은 그동안 핵무장을 금기시해왔던 한국 내부의 ‘여론 주도층’, 즉 유력 언론과 학자, 정치인 사이에서 핵무장의 공개적인 언급과 지지를 더 이상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공론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핵무장을 전제하고, 그렇다면 한국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할 것인가, 미군의 핵무기를 재배치할 것인가로까지 의견을 공론화하여 피력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자체 핵무기 개발론’에 대해서는 NPT와 IAEA의 ‘안전조치협정(Safeguards Agreement)’에 의거한 상시적인 감시․감독을 받고 있는 상황과 핵무기 개발・확보에 필요한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능력을 갖추지 못한 점을 들어 현실적․물리적으로 불가함을 강조한다. 또한 ‘미군 핵무기 재배치’에 대해서는 미군 핵무기를 한국 영토에 재배치하는 것은 ‘한국에도 핵무기가 있다’는 식의 심리적인 만족이나 안정은 줄 수 있겠지만, 한미 양국 정부가 견지하고 있는 비핵화 정책 노선과 어긋난다는 점을 지적한다.
비핵화 없이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도 없다.
저자는 ‘한국의 핵무장은 곧 영구 분단으로 가는 길이다’라는 강한 신념을 갖고 어떤 방식이든 한국의 핵무장에 반대한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위한 4가지의 정책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한국은 북한의 핵무장 위협에 맞서기 위한 독자적인 대안으로서 비핵(非核) 전략무기의 확충과 발전을 더 가속화해야 한다. 이들은 북한 핵무기의 지휘 통제 및 관리 시설과 탑재・발사 수단을 감시・추적하는 광역 정보수집자산, 북한의 핵무장 능력을 파괴・제거하는 장거리 정밀유도무기, 그리고 북한의 핵 공격을 요격하는 고도화된 방공 전력 등으로 구성된다
둘째, 핵우산의 ‘대북 선제 불사용(NFU: No-First-Use)’ 선언이다. “적보다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군사전략상 원칙 또는 방침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한미 양국은 한반도에서 핵우산의 실행 조건을 ‘북한의 핵 공격에 대한 반격’으로만 한정시키는 선제 불사용 원칙이 연합 핵전략의 근간임을 공식화해야 한다.
셋째, ‘조건부 비핵화(conditional denuclearization)’ 노선의 채택이다. 북한의 핵무장 위협이 지속・악화되는 현실 속에서 이러한 무조건적 비핵화 노선으로는 더 이상 국민들의 안보 불안 인식을 해소하기 어렵다.조건부 비핵화는 다음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미국은 핵우산 제공 공약을 유지하고 그 실효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적・물리적 장치를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이 요구하는 공식적인 핵보유국 지위를 절대 인정해서는 안 된다. 또 하나, 한반도 주변 지역에서 새로이 핵무기를 개발・보유하려는 국가가 등장하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 주변의 또 다른 국가(특히 일본)가 핵무장을 추구한다면 한국은 스스로의 안전을 위한 최후 수단으로 핵무장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
넷째, 핵 재처리, 농축 능력 확보의 전략적 활용이다. 한국은 북한 핵무장을 좌절시키려는 미국의 정책적 의지가 강화된 현시점에서 북한 핵무장 위협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미 한국은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 국산 탄도미사일의 탄두 중량 제한을 없애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여기에 한국은 그동안 자발적으로 포기해왔던 핵연료의 재처리, 우라늄 농축 능력을 독자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미국의 동의와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세계적 질서와 요구를 지키면서 핵무장이 아니 그에 준하는 대비책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할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북한 비핵화의 성공 여부에 따라 한민족의 장래, 그리고 아시아・태평양과 세계의 평화가 결정지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