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일 것이다. 어느 날부터인지 모르지만 낯선 여자의 향기는 부부의 침실에도, 서재에도 침투해 들어왔다.
새벽녘에 옆에 있어야 할 남자는 어디로 갔는지 없었다. 그를 찾아 거실로, 서재로 갔을 때는 다정다감한 목소리와 함께 가장 인간적인 웃음소리가 났다. 뭐가 저렇게 좋은 것일까. 무엇이 저 남자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일까.
완전히 닫히지 않은 틈 사이로 보이는 남자의 옆모습에서는 남편이 아닌, 누군가를 향해 자신의 마음을 다 드러내며 사랑에 빠진 다른 남자의 모습만이 보였다. 남편도 아닌, 아빠도 아닌, 윤인혁이란 남자만이 있었다.
그 남자와 함께 있으면 행복했다. 그것만이 전부였다.
하지만 수백 번의 사랑도 한 번의 이별에 무너지고 만다.
사랑에 모든 것을 걸어버린 여자. 여자란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시간과 함께 엄마라는 자리, 아내라는 자리, 며느리만 있을 뿐 이름 자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남편으로부터 사랑받고 싶었지만 거절당한 수치심과 모욕을 이혼으로 복수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세 딸의 엄마라는 이름이 너무나 강했으며 윤리, 규율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었다. 이 세상에 사랑보다 강한 것은 없으니까. 사랑만이 전부였으니까. 영원하리라 믿었다. 변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한 사랑인데……. 그러나 야속하게도 사랑은 색이 바랬고, 누군가의 인생을 닮아가고 있었다.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알고서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혼을 할 것인가, 참고 인내하면서 엄마라는 자리를 지킬 것인가.
세 딸의 엄마인 지영과 그녀의 딸 연수, 은수, 혜수. 그녀들의 살아가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