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니가 무서워.”
“…왜? 내가 너도 죽일까봐?”
“아니, 내가 널 죽일까봐.”
느릿하게 발걸음을 뗀 이수가 내게로 걸어왔다. 빗속을 뚫고 내게 다가온 이수의 몸에서 차가운 연기가 났다. 쓰고 있는 우산을 씌워주고 싶었지만, 이수는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진 않았다. 차가운 눈동자가 꿰뚫을 듯 나를 응시했다.
그것은 처음부터 정해진 사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 전쟁과도 같았던 감정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어린 소년과 그를 바라보는 소녀. 서로를 향한 뜻 모를 감정들은 그들에게 크나큰 열병을 안겨주었다. 이수의 할아버지가 들인 젊은 후처는 고은의 어머니였다.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그녀는 광기 어린 행동들로 이수의 집안을 철저하게 망가트리는데.
고은은 그런 어머니를 대신하여 벌이라도 받듯, 이유 모를 병으로 차가운 얼음의 성에 갇힌 인형처럼 살아가며 늘 죽음을 꿈꾼다. 그리고 고은의 시선 끝엔 늘 이수가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동자 속엔 늘 죄책감뿐이었다.
나처럼 사랑이 아닌, 죄책감. 나는 그게 너무나도 슬펐다.
비극의 중심에 있는 소년과 소녀는 늘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지만, 차마 다가설 수 없다.
소년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동자. 소녀를 바라보는 소년의 눈동자. 그 속에는 깊은 슬픔과 순수한 어둠만이 존재할 뿐이다. 벼랑 끝에 선 소년과 소녀. 그들의 위태한 관계는 어떤 결말을 맞이할 것 인가.
벼랑 끝의 사랑 / 독고마리 / 로맨스 / 전2권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