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광수 2003년 발간된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에 김진표 재경부 장관과 이헌재 전 재경부 장관이 극찬에 가까운 추천사를 붙이며 그를 ‘한국경제의 숨겨진 보석’이라고 불렀다. 김광수는 1983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하고 서울대대학원에서 ‘파이낸스’를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고 일본 동경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4년 국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을 지냈고, 일본 유학시절 후지쓰(Fujitsu)에서 투자프로그램 개발을 담당한 컴퓨터 전문가이기도 했다. 그후 세계적인 경제연구소인 노무라연구소의 서울지점 연구총괄부장을 지냈다. IMF 당시, 우리 정부는구조조정 관련 컨설팅을 모두 외국계 기업에 맡겼는데, 이는 우리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머리가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에, 김광수의 오기는 발동했고, 그것이 김광수경제연구소가 설립된 큰 계기가 되었다. 김광수는 1997년 12월 ‘김광수 경제보고서’라는 제목으로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원, 산업자원부, 한국은행 등의 과장급 이상 공무원들에게 10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국내 종금사가 무분별한 해외차입을 하면서 외환위기를 불렀다는 보고서 내용은, 경제부처 관료들 사이에서 호평을 이끌어냈다.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 고건 당시 서울 시장 등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한번 놀러 오라’고 제안할 정도로 높은 관심을 표했다. 고건 전 총리의 경제보좌관과 서울시 외자유치 자문위원으로 활약한 것도 이런 인연에서였다. 그후 삼성생명의 고액연봉 스카우트 제의를 물리치고 2000년 5월 자신의 이름을 딴 민간 경제연구소를 설립했다. 출범 당시,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성공을 예견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IMF 이후 국내 컨설팅 시장의‘터줏대감’이 된 외국계 기업들도 확고한 자기영역을 확보하고 있어 신생 업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연구 인력도 김 소장을 포함해 불과 3명. 그나마 박사급 인력은 단 한 명도 없어 해외에서 유학한 고급 인력이 즐비한 다른 연구소와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자본금 5000만 원 규모의 이 연구소가, 기존 강자들에 도전장을 냈다 소리 없이 사라져간 소규모 컨설팅 업체들의 전철을 밟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 후, 김광수경제연구소는 국내 오피니언 리더들을 열혈 팬으로 확보하면서 재벌기업 산하 경제연구소들의 ‘지식패권’을 뒤흔들며, 독자적인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그의 경제보고서는 독특한 분석과 날카로운 미래 예측력을 통하여 이미 많은 국내 경제관련종사자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김광수경제연구소의 보고서는 국민의 정부는 물론 참여 정부의 정책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정부가 한국전력의 송·배전 부문의 민영화를 포기한 것도 지난 2002년 김진표 당시 정책기획수석에게 김광수연구소가 이미 권고했던 내용”이며 “부동산투기 대책, 신용카드 버블 대책 등도 아이디어의 상당 부분을 그에게서 빌려온 것”은 알만한 사람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김광수연구소 보고서의 경제현안 진단과 처방은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가 김광수경제보고서를 두고 “날카로운 통찰과 논리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문제해결의 실용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의 연구소는 2007년 봄 보고서에서 서브프라임론 사태를 예견 경고하면서 다시 한 번 예측력을 빛냈다. 그의 연구소는 정책 연구, 부동산 문제, 세계경제동향, 중국기업분석 등 한국경제 전반에 걸친 컨설팅과 경제 분석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