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톨스토이(Leo Nikolayevich Tolstoy)
1828~1910. 러시아의 사상가, 소설가. 남러시아의 야스나야 폴랴나 출생. 백작 가문의 4남으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에서 자랐다. 1851년 형의 권유로 군대에 들어가 캅카스에서 사관후보생으로 복무하고, 다음해 처녀작 <유년시대 Detstvo>(1852)를 익명으로 발표하여 네크라소프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소년시대 Otrochestvo>(1854) <세바스토폴 이야기 Sevastopoliskie Rasskazy>(1854∼1856) 등은 군에 복무하면서 집필한 작품들로서 1855년 군에서 제대하고 수도로 올라갈 무렵에는 이미 청년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1862년 궁정 시의(侍醫)의 딸인 소피아와 결혼하고 문학에 전념하여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침입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 사회를 그린 불후의 명작 <전쟁과 평화 Voina i mir>(1864∼1869)를 발표, 이어 <안나 카레니나 Anna Karenina>(1873∼1876)를 완성하였다. 그러나 그 무렵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무상(無常)에 대해 심한 정신적 동요를 일으켜, 과학, 철학, 예술 등에서 그 해답을 구하려 하였으나 얻지 못하고 마침내 종교에 의지하였다. 이때가 그의 전향기로서 <교의신학비판(敎義神學批判)>(1880) <요약 복음서>(1881) <참회록 Ispoved’>(1882) <교회와 국가>(1882) 등을 통하여 그의 사상이 체계화되어 갔다.
1882년 모스크바 빈민굴을 시찰한 후 사회조직의 결함에 깊이 생각이 미치자, 그의 사상적 번민은 종교적, 윤리적 문제에서 사회제도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또 1885년에는 사유재산을 부정하여 이 문제로 부인과 충돌, 그 후 그의 일체의 저작권은 부인이 관리하였다. 그는 러시아 정교회에 속하지 않는 성령부정파교도(聖靈否定派敎徒)와 친교가 있어, 4천 명에 달하는 이교도들을 미국에 이주시키기 위한 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장편소설 <부활 Voskresenie>(1899)을 출간하였다. 이 작품에서 동방정교회에 대해 비판을 가하였다는 이유로 1901년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破門)당하였다.
주요 저서에 <신부(神父) 세르게이>(1898), 희곡 <산송장>(1900), 단편 <무도회의 뒤> <병 속의 아료샤>(1905), 논문 <종교와 도덕>(1894) <톨스토이즘에 대하여>(1898) <현대의 노예제도> <자기완성의 의의>(1900) <유일한 수단>(1901) <세 가지 의문>(1903) <셰익스피어론>(1903) <유년시대의 추억>(1904) <러시아 혁명의 의의>(1906) <마을의 노래>(1909) <인생의 길>(191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