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 영국의 시인, 청교도 사상가. 런던 출생.
대서사시 <실낙원 Paradise Lost>의 저자로,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대시인으로 평가된다. 신흥 중산계급인 공증인, 금융업자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는 로마 가톨릭교도로 자영농민이었는데, 아버지가 신교로 개종(改宗)하였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는 절연(絶緣)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밀턴은 작곡에 재능이 있던 아버지로부터 청교도적인 강렬한 기질과 음악 애호의 소질을 이어받고 문예부흥적인 교양을 몸에 익혔다. 7세에 성 바울 학원에 입학하여 라틴어, 그리스어, 헤브라이어를 배웠고, 청교도 신학자 T.영으로부터 신학(神學) 지도를 받았다. 이러한 환경에서 인문주의(人文主義)와 청교도주의(淸敎徒主義)가 밀턴의 생애와 사상의 틀이 되었던 것이다.
1625년 케임브리지대학 크라이스트 칼리지에 입학했는데, 이미 이때의 밀턴의 라틴어 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밀턴은 라틴어가 존숭(尊崇)되던 시기에 자신의 민족언어인 영어를 소중하게 여겼다. 최초로 영어로 쓴 걸작시 <그리스도 강탄의 아침에>(1629)는 종교적 주제나 기교가 원숙(圓熟)하였으며, 그의 장래의 방향을 선언한 작품이었다. 대학 졸업 후 1632∼1638년의 약 6년간 런던 서쪽 교외의 호튼에서 전원생활을 하면서 가면극 <코머스 Comus>(1634)와, 불의의 해난사고로 죽은 친구를 추도한 시 <리시다스 Lycidas>(1637)를 발표하였다. 1637년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1639년 귀국하여 청교도들의 종교적 신념을 가혹한 형벌로 탄압하던 영국국교회에 대항하여, 성서주의, 주교제 반대 등이 특징인 청교도주의를 받들고 올리버 크롬웰을 지지하였다. 또한 간통을 이혼사유로 여기던 영국사회의 전통을 깨고, 부부간의 기질과 사상이 맞지 않는다면 이혼할 수 있다고 주장한 ‘이혼의 자유’에 대한 글은 밀턴에게 ‘난봉꾼’이라는 별명이 붙여질만큼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왕과 위정자의 재임>(1649)과 <우상파괴자 Eikonoklastes>(1649), <영국 국민을 위해 변호하는 서(書)>(2편, 1651, 1654) 등으로 그의 이름은 전유럽에 알려졌으며, 그 외 저서에 이단(異端)의 신학을 포함한 <그리스도교 교의론(敎義論)>(1658∼1660), 미완성의 <영국사 History of Britain>(1670), <간이 라틴어 문법>(1669)과 <논리학>(1672), <사신집(私信集) Epistolae Familiares>과 <연설집 Prolusiones Oratoriae>(합본, 1674) <모스크바 소사(小史) A Brief History of Moscovia>(168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