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화
경북 군위에서 출생하여 경북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 같은 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대만 중국문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80년 이후 안동대학교 사학과에 재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中韓近代史學硏究>(1994)가 있다. 역서로는 <宋季元明理學通錄>(공역, 1994), <전목 선생의 사학명저강의>(<中國史學名著>, 2006), <중국과 일본의 역사가들(Historians of China and Japan)>(공역, 2007)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從<宋書>史論看沈約的天命觀與處世觀', '王夫之(1619~1692)의 晉·宋 교체기 이해', '<讀通鑑論>-三國?條 史論에 대하여' 등이 있다. 위진수당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2012년 현재 중국사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중국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서 1년간(1993~1994) 연구한 적이 있다.
포기룡
자가 이전(二田)이고 만년에는 스스로를 삼산창부(三山?父)라 불렀다. 청 강희(康熙) 18년(1679) 무석현(無錫縣)의 전간촌(前澗村)에서 태어나 건륭(乾隆) 27년(1762) 83세의 나이로 죽었다. 과거에 낙방한 후 저술에 뜻을 두고 10여 년의 노력 끝에 두보(杜甫)의 시작(詩作)에 대한 연구서라 할 수 있는 <독두심해(讀杜心解)>를 완성하고, 옹정(雍正) 8년(1730) 51세의 나이로 진사에 합격한 이후 곤명(昆明)의 오화서원(五華書院) 산장(山長), 소주부학(蘇州府學)의 교수를 지내면서 <좌전>·<국어> 등 고적의 역대 평주(評注)에 교감과 자신의 평주를 더하여 <고문미전(古文眉銓)> 79권을 완성하였다. 건륭 10년(1745)에 관직을 물러난 후 건륭 4년(1739)이래 관심을 가졌던 <사통> 주석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건륭 12년에 그 초고를 완성하고, 다시 5년 동안의 보완과 수정을 거쳐 건륭 17년(1752)에 정식으로 <사통통석(史通通釋)>을 간행하였다.
<사통통석> 권6
<사통통석> 권7
<사통통석> 권8
<사통통석> 권9
<사통통석> 권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