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격려와 용기를 주었던, 내가 사랑하는 모든 당신들에게 출간 배경 재작년 겨울 어느 날, 최불암은 편집장과 인터뷰를 마치고 술을 한 잔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는 아무래도 그의 지나온 날들이 화제가 되었는데 최불암은 연기자의 길을 걸어온 40년 동안, TV나 연극, 영화를 통해 보여줄 수 없었던 숨겨둔 이야기들을 자연스레 풀어놓았다. “선생님, 그런 화면 밖 이야기들을 독자들이 궁금해 할 겁니다.” 엉겁결에 출간 제의를 받고 최불암은 며칠 동안 고민에 빠졌다. 배우의 인생을 글로 쓴다? “파~”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안방극장의 대명사가 된 그는 한때 저 유명한 ‘최불암 시리즈’를 통해 변함없는 가치도, 인정할 만한 권위도 없는 세태를 반어적으로 표현한 한 시대의 코드가 되기도 했다. 오래전에 개인적인 신변잡기를 모은 글이 있었지만 정색을 하고 최불암을 말한 책은 없었다. 연기자란 평생 다른 사람의 삶을 대리하는 것이니 책으로 묶을 ‘자신의 이야기’가 따로 있겠냐고, 오히려 꿈 깨듯 독자들의 실망이 더 클 거라는 걱정이 앞섰다. 그런 그가 마침내 책을 내기로 결심한 데는 연기자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그와 함께해 준 관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픈 속뜻이 담겨 있다. 오늘의 최불암이 있기까지 소리 없는 격려와 용기를 주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와 위로를 전하는 마음으로. 고향의 느티나무 같은 아버지 하루에만도 수많은 별들이 뜨고 지는 이즈음 연예계의 현실에서 최불암은 연기라는 한 자리에서 40여 년을 한결같이 빛을 발산하는 현재진행형의 큰 별(Star)이다. ‘최불암’이라는 연기자는 수많은 연기자 중 한 사람이 아니다. 최불암만큼 세대마다 다양하게, 다층적으로 읽히는 연기자는 없을 것이며, 동시에 최불암만큼 세대를 아우르며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눈길을 주는 연기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불암은 중앙고 2학년 때부터 연극을 시작해 1958년 서라벌예대에 연출 전공으로 입학했다. 그런데 연기 전공 학생들이 노역을 꺼리다 보니 그가 직접 노인 역을 맡게 되었다. 오늘의 국민배우 최불암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인기와 무관한 연기자의 삶을 지향했다. 한 작품에는 ‘신성일’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조연도 있어야 하고 단역, 노역도 있어야 한다. 최불암은 작품의 완성도를 위한 것이면 그것이 조연이든 노역이든 기꺼이 응했다. 국립극단에서 연기생활을 하던 중 KBS 텔레비전 연기자로 데뷔한 1967년 에서도 그는 김종서 역으로 노역을 맡았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이로부터 40년, 그의 연기 역정에는 한국 드라마사에 기념비적인 작품이 적지 않다. (1980~2002), 수사반장(1971~1989), (1997~1998)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한편 최불암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단어가 ‘아버지’다. 에서 김 회장으로 대변되는 아버지 상像은 우리가 지켜야 할 한국적 정서가 녹아 있는 사랑과 희생의 아버지다.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언제 찾아가도 변함없이 맞아주는 고향의 느티나무 같은 아버지가 바로 최불암이 구현한 아버지 상이다. 최불암의 실제 생활도 드라마 속에서 구현해 냈던 아버지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집에 자신만이 머물 수 있는 ‘아버지의 자리’를 만들어 놓고 그 자리에는 아내나 아이들이 앉지 못하게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버지의 자리가 흔들리면 가족의 중심이 사라지고 사회, 국가도 흔들린다고 최불암은 생각한다. 2007년 초 어린 후배 연기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최불암은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다. 그리고 그는 대중매체를 통해 진정으로 호소했다. 삶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며, 힘든 상황을 견디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거라고 가슴으로 아버지의 십넝으로 호소한 것이다. 이렇듯 연기자로서도, 자연인으로서도 최선을 다하는 최불암은 한국 대중문화사의 중요한 자산이다. 그런 그가 오랫동안 시청자와 관객의 곁을 지켜주었으면 한다. 최불암, 그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우리 대중문화의 지평은 확대되고 우리는 감동과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_ ‘최불암 깊이 읽기’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그리운 남자, 캡틴 박 를 준비할 때이다. 시놉시스를 건네받은 최불암 선생께서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이해할 만 했다. 이미 의 김 회장 역을 10년 넘게 하면서 모범적 가장으로, 마을의 정신적 지주로 안팎으로 존경 받으며 살아왔는데, 일시에 늙은 바람둥이라니. 듣기만 해도 무안한 듯 최 선생님은 얼른 얼굴을 돌려버리셨다. 그리고 끝내 거절하시면 어떡하지 했는데 어쨌거나 박 선장이 되어주셨고, 일단 시작하자 역할에 대한 그의 사랑은 감동적일만큼 각별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누구 앞에서라도 무릎 꿇을 수 있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보낼 수도 있는 투박하지만 진한 부정(父情)을 가진 아버지. 흠 많은 인간이면서도 끝내 사람의 얼굴을 잃지 않은 한 남자를 그리고 싶었던 내 의도는 충족되었고 그래서 캡틴 박은 양촌리 김 회장과 더불어 내게 지금도 그리운 남자이다. _ ‘내가 본 최불암’ (김정수, 방송작가 )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 함께 선 벗들에게 지난 40년 연기자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사람들은 나를 반겨주었다. 이번에는 내가 그들에게 갈채와 성원을 보낼 차례다. 그들은 스스로를 관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이미 나와 같은 무대 위에서 주연과 조연과 단역의 구분 없이 적역適役을 맡아 열연을 펼치는 생生의 배우들이다. 나를 위해 수고한 모든 것들을 위로하듯이, 지금껏 나를 지탱해 준 그들에게 불쑥 고마운 마음을 전하듯이 이 책을 낸다. 어쩌면 나는 지금 인생은 연극이고 인간은 배우라는 오래된 대사를 읊조리고 있는지 모른다. _ ‘머리말’ 에서 텔레세이(Telessay)에 대하여 텔레비전Television과 에세이Essay의 합성어. 시청자의 눈을 바라보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듯 배우 최불암의 지나온 시간과 지금의 생각을 글로 표현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은 ‘멀리에서 보기’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고, 에세이는 수상隨想 즉, 생각을 좇는 일이니 한 발자국 떨어져서 우리 사는 모습을 들여다본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