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사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통해서 그 시대의 시적 특징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서 한국 현대시사라는 큰 산맥의 윤곽을 살펴보기 위한 취지에서 기획된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을 현대시 산책이라고 한 것도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현대시를 만나고 그 속에서 어슬렁거리며 시를 읽어 보자는 뜻에서이다. 한 편의 시를 통해서 그 시인의 시세계를 모두 드러낼 수는 없지마는 달리 보면 시 한 편이 그 시인의 정신세계를 온전히 드러내기도 한다. 비록 시 한 편이라는 작은 창을 통해서 한 시인의 시세계를 들여다보지만 그 작은 창문으로 만나는 정신세계는 또 다른 미적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기에 수록된 시들에 대한 해석방법은 한 편의 시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시를 둘러싸고 있는 시인과 그 시대의 상황을 동시에 이해하고 감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시 한 편에는 그 시인의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그 시인의 전 생애를 관류할 만한 소양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어서 시 한 편이 그 시인을 이해하는 시금석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전체 2권으로 기획되었다. 1권은 현대시의 태동에서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시들을 다루었다. 1부는 한국 현대시의 전체 흐름을 개괄적으로 살펴본 것이다. 시대 구분은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현대시의 변화요인이 많이 일어나는 일들을 중심으로 시대를 구분하였다. 2부는 일제강점기 한국 현대시가 태동하고 활로를 모색하는 시기의 시들이다. 시조나 가사와 같은 정형성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 형식이 나타나고 이에 부응하여 새로운 시 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의 시들이다. 3부는 일제강점기의 체제가 강화되는 1925년 이후의 시들이다. 일제식민지라는 오욕의 시대에 주옥같이 빛나는 시들을 발표했다는 것은 어떠한 억압과 탄압이 있더라도 민족의 정신은 말살할 수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친일 행위를 한 시인들과 일제에 저항했던 시들을 통해서 한국 현대시의 부침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2권은 해방 후부터 산업화가 일어나는 1980년대까지의 시들이다. 해방과 더불어 찾아온 새로운 시대는 혼돈의 시대였다. 그만큼 이 시기는 현실의 상황이 흐르는 방향에 따라 시의 대응 방식도 부침이 심했던 때이기도 하다. 1부는 해방 정국의 혼란 상황 속에서 분출된 시들이다. 억눌린 시대를 벗어나 새로운 기운이 왕성하던 때 또 다른 시대의 화두가 가로놓이게 된다. 이 시기는 분단의 상황에서 어떤 시적 대응전략을 꾀하고 있는지 살필 수 있는 때이다. 2부는 한국전쟁이라는 초유의 민족적 비극이 일어난 뒤에 발표된 시들이다. 이 시기는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회의가 지배하면서 실존의 문제가 고조되고 정신적 황폐함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체감했던 때이다. 3부는 근대화의 몸부림이 거세게 일어났던 시대에 발표된 시들이다. 정치적 혼란과 이념의 문제 자본주의와 경제성장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던 시대에 현대시는 어떤 방식으로 저항하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