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잘생겼던데?"
"……."
"순간 연예인인줄 알았어. 턱선이며 콧대며 꽤 잘빠졌더라."
연호가 유정을 끌고 나가던 그 잠깐 동안 참 자세히도 봤다. 유정도 같은 생각인지 반박하지 않고 말없이 젓가락으로 김치전을 찔렀다. 그런 유정의 반응에 미희가 더욱 큰 관심을 내보였다.
"뭐하는 사람이야? 진짜 연예인인거 아냐?"
계속되는 미희의 질문에 유정이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으로 술 한 모금 삼키고 대답한다.
"백수."
"문 열어주면 안 잡아먹지!"
스물 셋 여대생 한유정, 그녀의 옆집에는 수상한 백수가 살고 있다!?
헝클어진 머리에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한가롭게 담배를 태우고 있는 한 남자. 척 봐도 ‘백수’인 그는 유정의 옆집에 살고 있는 ‘신연호’이다. 휴학생인 유정은 그런 연호를 보고 그와 같은 백수는 되지 않기를 다짐한다. 그런 유정의 생각을 읽어내기라도 한 듯, 어느 날 갑자기 유정의 집을 찾은 연호. “문 열어주면 안 잡아먹지!” 엉뚱한 모습으로 유정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연호는 그 후 시시때때로 유정과 얽히며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를 말들로 유정을 헷갈리게 만든다.
"이 그림의 제목은 '곧 잡힐 토끼'야."
잡힐 듯 말 듯, 도망가는 토끼를 잡기 위한 호랑이의 사냥놀이.
연호는 깡총하고 뛰어다닐 것만 같은 귀여운 유정이 마음에 든다. 그녀의 양갈래 머리와 하얗고 말랑말랑해 보이는 통통한 볼. 그리고 맑은 눈동자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애교가 넘쳐흐를 것만 같은 외모와는 달리 그녀는 무심한 말투로 연호를 안달 나게 만든다. 그럴수록 연호는 유정이 욕심난다. 갖고 싶고, 만지고 싶어진다.
그다지 배고프지 않지만 마음에 드는 토끼를 발견한 호랑이는 도망가는 토끼가 들으라는 듯 어흥어흥 거린다. 호랑이에게 사냥놀이란 토끼를 놀릴수록 재밌어지는 법이다. 토끼는 역시 잡힐 듯 말듯 약 올리며 도망을 잘 친다. 생각보다 쉬운 사냥이 아니다.
토끼는 알고 있을까. 자신이 호랑이에게 잡히면 산채로 뜯겨 먹히는 것이 아니라, 호랑이의 등허리에 올라타 온 산을 누비며 지낼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