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흘러가는 청소년들의 일상이 의미와 추억으로 가득한 세상으로 바뀐다.
소심소녀 첫사랑에 빠지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세린의 질주하는 비일상!
쉬는 시간, 교실로 방송반 남자 선배들이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해 입성한다. 선배들은 짧은 시간동안이지만 자신들의 끼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세린은 학교 행사나 축제, 공연 등을 할 때 방송반 선배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은 철휘 오빠에게 그만 반해 버린다.
'당신의 끼를 보여주세요!' 신입생을 모으는 방송반 포스터. 그러나 경쟁율은 어마어마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세린은 보여줄 게 없다. 그러나 세린은 철휘 선배 때문에 관심도 없었던 방송반에 들어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을 하는데...
-출판사평-
무심코 흘러가는 고등학생 청소년들의 일상을 의미 있게 잡아내는 작가의 능력이 탁월하며 섬세하다. 친우과 이성, 학교생활에 대한 고민 등, 학창시절의 여고생이라면 한 번 쯤 해봤을 고민들을, 세린이를 통해 솔직하고 대담하게 묘사하면서 또래 청소년들과의 소통을 모색하고 있다.
-차례-
1장~18장
-본문-
거울 앞에 선 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어본다.
입 안 가득 공기를 불어넣고, 얼굴을 좌우로 돌린다. 계란형이라고 하기엔 원형에 가까운 얼굴, 동글동글한 코, 그에 반해 눈은 얇고 길다.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여자의 생김새와 어딘가 닮아 있다. 나는 조선시대에서 환생한 여자일지 모르겠다. 교과서에 실린 사진들을 볼 때면, 나는 숨죽여 주변을 살핀다. 혹시 눈치 빠른 누군가 “이거 코코 닮았어.” 라고 말할까 두려운 것이다. 다행히 학교에서 어느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도 마음이 무겁다.
거울에 비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치맛단을 접어본다. 무릎 위로 올라온 체크무늬의 교복치마, 어떻게 해도 촌스럽다. 너풀거리는 치마폭이 문제인 것이다. 과감하게 치마폭을 줄이고 싶지만, 소심한 나는 그럴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선생님들 눈 밖에 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
나는 얼굴이 더욱 붉게 타올랐다.
“남자랑 자면 어떤 기분이 들어?”
말하고는 얼굴을 베개로 파묻었다. 가능하면 푹신한 베개가 내 귀까지 덮어주길 바랬다. 묻자마자 질문의 답을 듣기 싫어졌다.
“푸핫.”
언니는 마시던 맥주를 뿜어냈다. 그리곤 한참을 실없이 웃었다. 거실로 언니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갈까 조마조마했다. 엄마와 아빠는 무슨 재미난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방 문을 열고 들어올지 모른다. 그럼 그야말로 절벽에 매달린 신세나 다름없어진다.
“그만 웃어.”
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가 웃음을 멈추지 않는 바람에 벌떡 일어나 언니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알았어. 알았어.”
막고 있는 손 사이로 말이 새어 나온다. 맥주를 먹은 탓인지 언니의 시원한 입김이 손바닥으로 전해진다.
“왜? 남자랑 자고 싶니?”
하고 언니는 물었다.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궁금해서. 나도 곧 성인이고.”
제법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 전, 방 너머로 들려온 엄마와 언니의 대화에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직 완벽히 마음의 준비가 된 것은 아니지만, 차츰 준비한다면 언젠가 그날이 왔을 때 조금은 편하게 내게 남은 마지막 소녀를 해방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학교 성교육 시간에 보여주는 영상들은 어처구니가 없다. 성에 대해 너무도 비판적으로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성관계를 마치 어린나이에 경험하면 큰 죄를 짓는 마냥 떠들어 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학생은 안 되고, 졸업하면 된다는 편협한 사고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런 예고 없이 불현듯 찾아오지만, 관계만은 준비된 상태에서 하고 싶다.
“남자랑 관계를 맺는 건, 여자로서 사랑받는다고 느껴지는 행복한 순간이야.”
언니는 입술을 살짝 일그러뜨리고는 기분 좋은 미소를 만든다.
“너 아직이지?”
당연한 질문을 하는 바람에 나는 대답할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