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하니 둘은 뗄 내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한다. 또한 세상의 모든 이치가 책 속에서 빠져 나온다고 하여 사람의 삶에 일부라도 도움을 줄까 하여 필을 잡았다. 사실 우리가 밥 먹듯 보는 TV드라마도 책 속에 있는 것을 빼내 깎아내고 덧붙이고 또 굴리고 다듬어서 엮은 것이 많다. 역사를 통하여 어느 시대나 가끔 엉뚱한 인물이 역사 한 가운데 등장해 역사를 창조하는 일을 우리는 왕왕 보나 옷은 새 옷이 좋고 사람은 옛사람이 좋다고 그렇게 싫증은 안 난다. 인생은 평초(萍草) 즉 뿌리 없는 개구리밥이라고 하더니 지금은 비록 시간 속으로 사라져버렸으나 난데없는 ‘고려가 아니 하늘이 일천 팔백 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칸발리크의 원나라 황실에 내린 선물’로 맑은 눈에 총기가 가득한 농염(濃艶)한 천하일색이 혜성같이 나타나 찬란한 속살을 활짝 드러내고 조공녀로 바쳐진 가련한 운명에서 뛰어난 미모와 지략으로 마침내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을 움켜쥔 여인 잊혀진 역사의 뒤편에서 홀연히 나타난 고려여인이 펼쳐 보이는 파란만장한 일생은 감동 없이는 볼 수 없는 장엄한 한편의 서사시이다. 신라시대 말기처럼 황제가 고속으로 바뀌던 문란한 원나라 말기 황실을 끝까지 지켜낸 여인이 있었으니 고려의 딸 기황후였다. 그러나 하늘도 울릴만한 인물인 기황후는 소설 속의 인물이 아니라 고려국 지금의 전라북도에서 1316년경 태어난 인물로 그녀는 고려가 내동댕이친 가련한 여자였다. 그렇지만 세상만사 새옹지마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하더니 기황후는 극에 달한 사치와 방탕으로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원제국을 몰락으로 이끌고 가는 황상 순제의 인생스승이 되어 황위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하여 세 번씩이나 멎어가는 그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해준 세계적인 인물로 거듭났다. 그러나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고 기황후의 오라버니들은 기황후를 등에 업고 천지분간을 못하여 하늘 두려운 줄 모르고 세상이 다 자기 발 밑에 있는 것처럼 함부로 행하며 다녔다. 주막거리도 아닌데 그 곳을 주구장창 갈지자로 누비면서 거들먹대고 입은 살아서 나불나불 왕실을 깔아뭉개니 왕실과 백성들은 심사가 뒤틀려도 침묵으로 따가운 시선을 보내며 마음속으로 어깃장을 놓고 있었다. 이렇듯 기황후의 오라버니들로 인해서 기황후는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었지만 ‘역사란 강자의 이야기’라 정사에 적어 놓은 대로 모두 믿을 수는 없다. 원사 후비열전을 통하여 행간을 읽다보면 기황후는 현대로 말하면 영국의 대처 수상을 능가한 철의 여인이었다. 오히려 대처 수상이 북방민족을 호령한 기황후를 롤 모델(role model)로 삼았어야 옳다는 생각도 든다. 기황후는 공녀로 끌려와서 처음에는 말도 글도 통하지 않는 구중궁궐에 갇힌 채 자기 한 몸 추스르지 못하던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원나라 황후까지 된 여자이다. 역사란 밝고 자랑스러운 역사만 부각시키는 것만이 올바른 역사 인식이라고 할 수 없다. 공녀와 같이 어둡고 부끄러운 역사도 엄연히 우리 조상들의 삶의 자취이니 역사에 눈을 감으면 절대로 안 된다. 공녀는 우리 민족을 대신하여 금수 같은 공녀 사냥꾼들의 마수에 걸려 희생된 자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픔을 보듬어야 할 유산이다. 병은 자랑해야 고친다는 말이 있다. 상처도 역시 감춘다고 낫는 것이 아니며 떳떳하게 드러내 놓고 치료할 때 힐링의 길이 열린다고 본다. 이 책을 읽어 내려가다보면 너무 지루할 까봐 짬이 날 때 마다 흔히 회자(膾炙) 되는 값진 고전 이야기도 끼워 넣었으며 심지어는 음담패설도 톺아서 적고 미꾸라지가 짝짓기 하다 미끄러지듯 빠져 나갔음을 용서해주시기 바라고 독자의 가슴과 마음을 때리는 글귀를 적어 넣으려고 애를 썼으나 도움이 될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이 책은 사실에 근거하여 썼음을 밝히기 위하여 원사나 고려사에서 핵심이 되는 내용의 원문을 일부 끌어내서 밝혔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그려내는데 까다로운 중국 고전 자료를 어렵게 찾아내서 수집하여 주고 최종 마무리를 하는데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준 강서 미즈메디에 근무하는 가돈(家豚)의 도움이 컸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