羅貫中 (1330? ~ 1400) 나관중은 삼국지연의의 저자로 유명한 작가로 자가 관중이고 호는 호해산인(湖海散人). 본명 본(本). 일명 나본 선생 . 나관중의 출생시기에 대해 흔히 원말명초라고 하지만 사실상 원말은 그가 유소년기 잘해봐야 청년기 초반일때 정도이며 실제로 나관중이 성인이 되어 살아간 시대는 명초이다. 명나라가 1368년에 건국되었기 때문에 이 사이의 간격이 무려 32년씩이나 된다. 출생지에 대해 흔히 조운이 태어난 상산이나 관우가 태어난 하동 등으로 추정하지만 소설 삼국지통속연의에 보이는 북방지리에 대한 오류로 미루어 볼때 남쪽 지역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일설에는 동부에 있는 산서성 여릉 출신이라고도 한다.그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 친구이자 머나먼 친척인 주서(周敍)와 같이 과거 시험을 응시했는데 주서는 합격했지만 나관중은 탈락했다. 그래도 나관중은 다시 과거를 응시했으나 또다시 탈락했다. 이런 일이 수차례 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나관중은 끝내 과거에 합격하지 못했다.그래서 할 수 없이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산서성 태원 일대에서 가문의 생업인 소금장사를 하게 되었으나 나관중은 천성이 게을렀는지라 소금장사도 흐지부지 상태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살던 곳의 근처 찻집에 드나들면서 하루하루를 놀고 먹으면서 가문의 재산을 까먹고 살고 있었다. 이 당시 그 찻집에서는 삼국지를 바탕으로 한 삼국희곡(三國戱曲)을 매일같이 공연해 나관중은 이 삼국희곡을 즐겨 들었으며 나관중은 삼국희곡을 어찌나 많이 들었는지 이를 외우는 수준까지 도달해 이를 토대로 해서 삼국지연의를 집필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가문에서 쫓겨나 족보에도 나관중의 이름이 지워져 둘째 아들을 외지로 보냈다는 기록만 남았다고 하며 연구자들은 정부에 항거한 이들이 많이 나오는 작품인 수호전을 지은 것 때문으로 추측하고 있다.그의 생존시기는 원말-명초이며 사망한 년도는 확실히 1400년. 탄생한 년도만 불분명할 뿐이다. 삼국지연의 이외에도 여러 작품의 저자로 추측되고 있지만 과거에 탈락하고 한량처럼 살았다는 점 이외에는 밝혀진 바가 많지 않아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게으르고 실력이 없어서 관직에 탈락했을 뿐이지 나관중이 관직에 오르지 못한것은 원나라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 명나라가 1368년에 건국됐는데 명나라가 건국되고 32년씩이나 지나서야 나관중이 죽었기 때문이다. 출처 엔하위키와 미러